"기업금융 유지는 '은행업의 폐업' 아냐"…2013년 HSBC 사례 형평성 고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금융위원회는 27일 정례회의에서 소비자금융부문의 단계적 폐지를 발표한 한국씨티은행에 대한 조치명령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또 소비자금융 청산을 금융위 인가사항이라고 주장한 씨티은행 노조의 주장에 대해 "(은행법상) 폐업의 경우 명시적 규정이 없어 일부 폐업은 인가대상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노조의 주장과 배치되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이날 금융위는 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 단계적 폐지 과정에서 금융소비자 불편 및 권익 축소 등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다고 평가하며 조치명령권을 발동했다. 당국은 조치명령권 발동 배경에 대해 "씨티은행이 자체적으로 관리계획을 마련·시행하더라도 그 내용의 충실성 여하에 따라 이러한 문제가 충분히 해소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금융위는 △소비자금융부문 단계적 폐지에 따른 고객 불편 최소화 △소비자 권익 보호 및 건전한 거래 질서 유지를 위한 상세한 계획을 충실히 마련·이행할 것 △단계적 폐지 절차 개시 전 이용자 보호 기본원칙, 상품·서비스별 이용자 보호방안, 영업채널 운영계획, 개인정보 유출 등 방지 계획, 조직·인력·내부통제 등을 포함한 상세 계획을 금융감독원장에게 제출할 것 등을 조치명령으로 내걸었다. 

금감원은 씨티은행의 계획을 제출받아 그 내용을 점검한 후 금융위에 보고하는 한편,  향후 씨티은행의 계획 이행 상황을 모니터링해 필요 시 금융위에 보고할 계획이다.  

금융위 은행과는 지난 22일 금융소비자보호법 제49조제1항의 "금융위원회는 금융소비자의 권익 보호 및 건전한 거래질서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은행 등에게 필요한 조치를 명령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조치명령안을 사전통지한 바 있다. 

   
▲ 지난 26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한국씨티은행지부는 국회 정문 앞에서 가진 '한국씨티은행 소비자금융 졸속 청산(단계적 폐지) 발표' 기자회견에서 노조는 한국씨티은행의 무책임한 소비자금융 졸속 청산 결정을 결사 반대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한 총력투쟁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 사진=류준현 기자


이와 더불어 소비자금융 단계적 폐지 여부가 금융위의 인가사항이라고 주장한 노조 측의 주장에 대해 당국은 "금융위는 오늘 회의에서 그간의 검토 및 논의 결과를 보고받고 씨티은행이 영업대상을 축소(기업고객에 대해서만 영업)해 주요 은행업무를 영위하는 것을 은행법 제55조 상 '은행업의 폐업'에 이른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씨티은행은 대출채권·유가증권·파생상품·신탁 등 주요자산 총액이 68조 6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소비자금융이 20조 8000억원으로 30.4%를 점유하고, 기업금융이 47조 8000억원으로 69.6%에달한다. 
 
합병·해산·폐업의 인가 등의 내용을 담은 은행법 제55조1항은 은행이 관련 절차를 밟을 때 금융위의 인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55조1항은 △분할 또는 합병(분할합병 포함) △해산 또는 은행업의 폐업 △영업의 전부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한 일부의 양도·양수 등을 담고 있다. 금융위 법률자문단과 법령해석심의위원회 위원들은 법률 검토 결과, 모두 인가대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은행법상 일부 폐업은 인가대상으로 예정하지 않은 점 △폐업인가시 불명확한 실익 △과거사례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인가대상 불가론에 대한 입장을 정리했다. 

우선 현행 은행법상 일부 폐업은 인가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영업양도는 중요한 '일부'의 영업양도도 인가대상임을 명시하고 있지만, 폐업은 명시적 규정이 법에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게 금융위의 입장이다. 

특히 입법자의 발의내용을 고려하면 일부 폐업을 인가대상으로 예정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해석했다. 파산 등 법인을 소멸시킬 수준의 해산에 준하는 '영업폐지'만 인가대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 

또 현행법상 일부 폐업에 대한 인가대상 여부를 구분하는 기준이 없는 만큼 이번 사례를 폐업 인가대상으로 볼 경우 미칠 부작용도 우려한 모습이다. 당국은 "해당 사항을 폐업인가 대상으로 볼 경우 향후 다양한 사례들이 인가 대상인지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부연했다. 

더불어 금융소비자 보호 등을 위한 다른 법적수단은 금소법상 조치명령이 존재해 폐업 인가대상을 설정하더라도 실익이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설령 인가대상으로 보더라도 요건을 충족하면 인가해줘야 하는 만큼, 조치명령의 내용을 준수하면 사실상 인가요건을 충족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며 인가불가론을 고수했다. 

과거 HSBC의 소비자금융 폐지 사례와의 형평성도 고려했다고 전했다. HSBC는 2013년 7월 국내 소비자금융 업무 철수 계획을 발표한 후 총 11개 지점 중 10개 지점을 폐쇄하면서 은행법 제58조 제1항에 따른 외은지점 폐쇄인가는 받았다. 하지만 제55조 제1항에 따른 '폐업인가'는 받지 않았다. HSBC 사례를 비춰볼 때 씨티은행만 예외로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이날 정례회의에서 "은행의 영업대상 축소가 인가대상인지가 쟁점이 된 것은 은행의 영업전략 변화 등이 국민생활 및 신용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라며 "현행법 하에서는 영업대상 축소를 인가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불가피하지만, 법 개정을 통해 은행의 자산구성 또는 영업대상 변경 등을 인가대상으로 할 필요는 없는지 검토해 필요 시 제도 정비를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인가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한편 금융위는 향후 은행법 상 인가대상 확대 등 법 제도 정비 필요성에 대해 해외사례 조사, 법률전문가 의견청취 등 심도있는 검토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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