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54)- 확대경으로 들여다 본 로마 황제의 비사
수에토니우스(69년?~122년?)의 <12인의 로마황제>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역사는 지나간 일들의 조합이다. 따라서 역사가가 어떤 사건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취사선택되고 기술되는 역사와 그 해석이 달라진다. 아무리 뛰어난 역사가에 의해 서술된 역사라고 하더라도 당대의 사실을 온전하게 담아내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 후대인들이 역사 문헌을 통해 오래된 과거의 사건과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에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과거를 살필 때 여러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절실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정사(正史) 못지않게 야사(野史)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회고되는 역사는 역시 로마의 역사일 것이다. 세계 최대의 제국을 일구었던 로마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원천과 교훈을 풍부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이 성취한 역사는 숱한 역사가들에 의해 기록되고 재해석되어 왔다.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의 <로마제국 흥망사>, 테오도오 몸젠(1817~1903)의 <로마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는 후대 역사가와 대중의 뜨거운 사랑은 받은 책들이다. 이들이 쓴 로마의 역사는 당연히 18세기에서부터 20세기 까지 당대인들이 로마를 바라보는 역사적 관점과 저자의 개인적 해석을 담고 있다.

또 정통 역사서가 아니더라도 숱한 지성들에 의해 로마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자 하는 매력적인 시도가 지속되어 왔다. 마키아벨리(1469~1527)의 <로마사 논고>와 몽테스키외(1689~1755)의 <로마제국의 성공과 실패>는 로마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평설로 대표적인 역저이다.

아무튼 로마의 역사를 조명한 후대의 문헌이 풍부하긴 하지만 로마 시대를 다각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인들이 바라 본 자신들의 역사는 어떠했는지를 살필 필요가 있음을 잊지 말자. 당대에 기록된 역사는 그 시대를 몸으로 겪어낸 이들의 생생한 체험과 공유된 사유가 배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타키투스(55년?~117년)가 쓴 <역사>와 <연대기>, 수에토니우스(69년?~122년?)의 <황제열전>를 먼저 읽는다면 당대인과의 시대적 간극을 최소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수에토니우스(Gaius Suetonius Tranquillus)가 쓴 이 책의 원제는 <카이사르들의 전기 8권(De Vita Caesarum Libri Ⅷ)>이다(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황제정의 토대를 만든 탁월한 장군의 이름이지만 사후 신격화되어 ‘카이사르’는 곧 황제를 의미하는 보통명사처럼 쓰였다). 12명의 로마 황제의 전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보통 <황제열전>으로 불린다.

제1권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제2권은 아우구스투스, 제3권은 티베리우스, 제4권은 칼리굴라, 제5권은 클라우디우스, 제6권은 네로의 전기를 수록했다. 제7권은 내란의 혼란한 시기에 아주 짧게 재임했던 3인의 군인 황제 갈바·오토·비텔리우스가, 제8권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이어 집권한 그의 두 아들 황제 티투스와 도미티아누스 3인의 전기가 수록되었다.

이 책의 번역서 제1권에서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를 각각 상당한 분량으로 다루고 있다. 2권에서는 나머지 9명의 짧은 전기를 한권으로 묶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열전>이 정사(正史)적 기술로 영웅과 왕들의 정돈된 전기라면,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열전>은 야사(野史)에 치중한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로마 황제들의 감추어진 민낯과 당시의 풍속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전거(典據)이다.

수에토니우스는 황제의 가문과 탄생 과정, 성장기, 주요 관직생활의 활동상, 용모와 취미, 성격, 그를 둘러싼 각종 풍문과 악행, 죽음과 관련된 불길한 전조(前兆)를 세세히 기록하고 있다. 황제의 소소한 개인사에 지나치게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황제에게 확대경을 들이대다 보니 당대의 시대적 상황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 당시 정치 사회적 사건들과 황제의 중요한 업적과 행태가 생략되거나 아예 다루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점이 책의 약점이기도 하다.

특히 황제에 대한 다양한 풍문과 악행, 다양한 평가에 대한 전거(典據)가 부족한 편이다. 저자가 황제의 생활상에 대한 많은 정보를 보여주는데 치중한 느낌이다. 결국 ‘믿거나 말거나’ 식의 기술도 적지 않게 섞여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로마 시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가질 우려도 있다.

또 역사적 사실과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풍문 사이에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할 여지도 적지 않다. 수에토니우스는 황제와 관련된 숱한 세평(世評)과 소문, 험담 등을 정열적으로 수집했다. 하지만 그가 채집한 정보들의 진위와 가치를 판별하고 비판적으로 취사선택하기보다 되도록 많은 것을 ‘들은 그대로’ 수록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이 황제에 얽힌 비화를 상당히 많이 채록하여 편찬했다는 것은 저자가 당시 로마인들에게 체험적으로 검증된다는 것을 이미 고려했으리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수에토니우스가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무조건 기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낯선 이야기조차 당대에는 평범한 진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책이 고전이 된 특유의 장점을 무시할 수 없다. 정사(正史)에서 다룰 수 없는 당대의 사회상, 풍습, 황궁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적 행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황궁을 중심으로 커튼 뒤에서 벌어진 암투와 배신, 기이한 에피소드가 풍부하게 기술되고 있다. 게다가 근엄함으로 치장된 황제의 박제된 활동이 아니라 황제의 사생활과 치부까지 거침없이 폭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정통의 역사서에서 볼 수 없는 1차적 자료를 상당히 많이 발견할 수 있다.

   
▲ 로마 시대 정치활동과 시민들의 생활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의 전경이다. 로마의 일곱 언덕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인 카피톨리노 언덕에 있는 카피톨리노 미술관 내부 지하 통로에서 바라본 황혼의 풍경이다. 숱한 관광 인파가 모두 퇴장한 고즈넉한 분위기가 로마의 영광과 몰락을 잔잔히 보여주는 듯하다. ⓒ박경귀

특히 황제의 포고문이나 서한, 창작한 글이나 시, 황실의 일지 등을 인용한 대목은 누군가 가까이에서 관찰하면서 이렇게 글로 남기지 않았다면 거의 소실되었기 쉬운 자료들이다. 수에토니우스가 황실의 비서역할을 수행했었기에 채록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당대 로마인들의 구체적인 풍습과 생활상을 드러낸 점도 로마인의 일상을 살피는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여러 곳에 걸쳐 미신과 점, 꿈, 성생활, 복장에 대한 묘사도 적지 않다. 황제들이 점치기를 좋아하고 신전의 신탁에 크게 의존했던 것도 당대의 사회문화적 특성의 하나였다.

12명의 황제 중 수에토니우스의 험한 재단(裁斷)의 대상에서 벗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베시파시아누스 황제가 대체로 훌륭한 황제군에 속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반면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네로, 도미티아누스의 경우 잔혹한 행위, 근친상간, 음란한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저열한 품성의 폭군에 속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황제도 인간적 약점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다. 많은 황제들이 재위 초기에는 원로원과 시민들을 존중하며 선정(善政)을 베풀다가, 권력에 도취하면서부터 귀족과 원로원, 시민을 무시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네로와 칼리굴라도 재위 초기에는 성군(聖君)으로 인기를 모았었다. 하지만 점차 권력이 공고화되자 대중들에게 영합하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잔인한 검투 시합과 볼거리, 무상 급식을 제공하면서 국고를 고갈시켰다.

   
▲ 로마 황제들이 대중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검투사 시합, 해전 재현을 벌이던 콜로세움의 모습이다. 로마 시대 최고의 건축술을 입증해주는 건축의 백미이다. ⓒ박경귀

로마 제국에 무절제하고 폭력적 황제가 자주 등장했었던 요인은 뭘까? 우선 로마 황제가 올바른 품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전횡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장치가 적절하게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황제는 명목상으로는 ‘제일 시민(princeps)’으로 공화정을 표방하는 듯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최고집행관이었던 집정관과 원로원 위에 군림하는 전제적 권력자로 행세했다. 황제(Emperor)에게 집정관의 한 사람으로서의 권한 이상을 부여함으로서 실질적으로 종신 독재관의 권력을 안겨 준 셈이 되었다. 그러니 황제의 폭주를 막기가 어려웠다.

두 번째는 로마가 지닌 군사국가적 성격에서 기인한 것 같다. 제국의 방대한 영토를 유지하기 위해선 강력한 군사력이 필요했다. 당연히 장군과 병사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고착되다 보니 변방과 속주의 군사력은 지휘관의 사병이 되기 일쑤였다. 또 군단병들의 이기심과 지휘관의 권력욕이 결부되어 반란과 황제 암살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가 군단병의 군사력을 활용해 반란을 일으켜 일선의 지휘관에서 일약 황제가 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책에 보이는 로마 황제들의 추악한 행태와 어처구니없는 실정(失政)이 로마 황제들의 진면목을 모두 대변한다고 보면 큰 착각이다. 로마 황제 가운데는 선정(善政)으로 세계 최고의 로마 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5현제(五賢帝)가 있었다. 네르바(재위 96∼98), 트라야누스(재위 98∼117), 하드리아누스(재위 117∼138), 안토니누스 피우스(재위 138∼16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재위 161∼180)가 그들이다.

   
▲ 로마의 오현제의 한 사람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진품 기마상이다. 대개 카피톨리노 광장에 서 있는 동상을 진품으로 잘못 알고 있으나 그것은 복제품이다. 진품은 카피톨리노 박물관 내부의 특별 전시실에 소장되어 있다. ⓒ박경귀

이들 훌륭한 황제들이 연이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제위(帝位)를 세습(世襲)하게 하지 않고, 원로원 의원 가운데 가장 유능한 인물을 황제로 지명했기 때문이다. 원로원과 황제, 시민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었기에 현명한 리더의 배출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합리적 제도가 계속 유지되지 못했던 점은 못내 아쉽다. 이로 인해 이후 황제의 난립기를 거쳐 3세기 초기에는 일 년에 5~6명의 황제가 교체되는 등 극심한 위기의 시대를 겪게 된다. 군대의 반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황제 암살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힘이 있는 군단장을 병사들이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하면서 황제로 즉위하는 악폐가 반복되었다.

아무튼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열전>은 1세기 말까지의 초기 황제정 시기의 황제 12명의 재위 중 행적을 당대인의 시각에서 샅샅이 살피고 있다는 점에서 꼭 읽어야할 고전이다. 초기 황제들의 생활상과 당대의 풍속도는 호기심이 많은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운 때론 역겨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 작가적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에게는 이 책에서 갖가지 삽화와 우화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로마 황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로마 제국을 움직인 최고 권력자의 내밀한 생활에 대한 풍부한 영감의 원천임에 틀림없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 추천도서: <풍속으로 본 12인의 로마황제>(제1권, 제2권), 수에토니우스 지음, 박광순 옮김, 풀빛미디어(1998), 제1권 339쪽, 제2권 3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