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행 연말까지 전액 면제, 기은 내년 3월말까지 절반 인하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막고 차주들의 금융부담을 덜기 위한 방안으로 은행별 대출 총량규제를 전방위적으로 시행 중인 가운데, 정치권과 당국의 요구로 국책은행들이 '중도상환수수료 면제·감면'을 선언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NH농협은행이 수수료 면제를 선언한 데 이어, IBK기업은행이 수수료 감면카드를 꺼내면서, 주요 시중은행들이 전방위적으로 수수료를 감면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한편으로 정치권이 은행들의 '고객이탈 방어장치'인 중도상환수수료 부과를 '악의적' 요소로 치부함으로써, 기존 고객의 이탈을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농협은행 본점 전경 / 사진=농협은행 제공


2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지난 1일부터 올 연말까지 대출금의 일부 및 전액을 상환하면 중도상환수수료 전액을 면제하기로 했다. 이번 수수료 면제 조치에 따라, 고정금리로 3년 만기 부동산담보대출을 받은 고객은 1년이 경과했을 때 대출금 1억원을 상환하면 약 93만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기은도 수수료 감면에 나선다. 기은은 이달 9일부터 내년 3월31일까지 가계대출 중도상환수수료를 50% 감면한다. 기은에서 받은 모든 가계대출상품을 대상으로 한다.

두 은행 모두 외부 기관과의 별도협약에 따라 중도상환수수료를 부과하는 일부 적격대출 및 양도상품은 수수료 면제대상에서 제외했다.

농협은행은 수수료 면제 배경에 대해 "여윳돈이 생겨도 중도상환수수료 때문에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고객의 불편함을 해소해 상환을 유도하고, 대출 고객들의 실질 이자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차원에서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기은도 "대출상환 고객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는 한편 상환 여력이 있는 고객의 자발적인 상환을 유도해 서민금융을 지원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라며 "기존에도 타 은행에 비해 중도상환수수료를 낮게 운용하고 있지만 이번 추가적인 중도상환수수료 감면을 통해 실수요자와 서민을 위한 대출지원을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 기업은행 본점 전경 / 사진=기업은행 제공


두 은행의 수수료 감면책을 두고 은행권은 조만간 전방위적으로 수수료 감면책을 도입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당장 우리은행도 관련 조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중도상환수수료 감면조치는) 검토는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현재로선) 구체적인 일정이나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비용보다 정부 정책기조에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며 "면제가 일시적인 만큼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치러진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된 중도상환수수료는 차주의 이자부담을 덜어주고 급증한 가계부채를 관리하자는 이유로 급물살을 탔다. 특히 코로나 특수를 계기로 올해 은행들의 순이익이 폭증하면서 여당 의원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과 당국의 요구를 지나칠 수 없게 됐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5대 은행이 중도상환수수료로 징수한 금액은 지난해 2758억원, 올해 상반기 1266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이 중 가계대출 증도상환수수료는 지난해 2286억원으로 나타나 전체의 82.9%를 점유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1013억원으로 전체의 80%를 차지했다. 

지난해 기준 가계대출 중도상환수수료 징수액은 KB국민은행이 621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하나은행 451억원, 우리은행 417억원, 농협은행 399억원, 신한은행 374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지난 8월 "최근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대출 중단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리고 있는데, 대출을 조기 상환하려는 고객에게 제재금 성격의 중도상환수수료를 물리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중도상환수수료 부과를 한시적으로라도 중단해 중도상환을 유도함으로써 가계대출 급증세를 진정시키고 정책의 일관성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김 의원에 이어 이번 국감에서 수수료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같은 당 김병욱 의원은 "기존에 대출받은 사람들이 대출을 조속히 갚을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가계부채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현재 대출받은 사람들이 대출을 조속히 상환한다면 새로이 대출을 원하는 사람에게 그만큼 추가로 내줄 수 있는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만큼, 대대적인 발상의 전환을 정부와 금융권이 함께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당국에 요구했다. 

나아가 "수수료 부과를 궁극적으로 없애는 걸 검토하라"고 요구했고,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그렇게 하겠다"며 동의의 뜻을 내비쳤다. 

정치권에 이어 당국 수장이 수수료 인하에 동의하면서, 은행권으로선 '유구무언(有口無言)' 신세가 됐다. 당장 지난달 28일 농협은행이 수수료 면제를 선언하자, 김 의원은 보도자료로 '환영 의사'를 표하며 잠자코 있던 '기업은행'과 시중은행도 조속히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기은은 전날 배포한 자료에서 "차주들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차원에서 이번 대책을 마련하게 됐음을 밝혔지만, 사실상 표적이 돼버리면서 불가피하게 수수료 감면에 동참한 모습이다. 

은행들도 차주들의 이자부담을 덜어주고 가계부채를 줄이자는 정책 도입의 당위성은 동의한다고 밝혔다. 다만 당·정의 급진적 요구로 은행들이 수수료 인하 과당경쟁에 내몰릴 것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더욱이 여당과 정부의 요구가 은행의 수익사업을 죄악시하는 분위기를 내뿜고 있고, '차주의 이자부담 경감'이라는 정치적 '선의(善意)'와 맞물려 마지못해 한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정책적 목적에 따라 협조를 하는 것이고, 당국이 하라 해서 하는 것인 만큼, (수수료 감면조치가) 은행으로선 전혀 달가워 할 요소가 아니다"라며 "은행이 대출을 줄여서 좋을 건 전혀 없다. 대출을 줄이고 안 할 유일한 요인은 (은행 내부) 리스크나 유동성 관리 외에는 특별히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김병욱 의원이 제기한 수수료 부과 면제는 현실 불가능한 조치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관계자는 "(수수료를 폐지하게 되면) 차주가 예전처럼 근저당권 설정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며 "근저당권 설정 비용이 (은행 부담으로) 없어짐으로써 채무자 부담을 경감해주는 대신 '중도상환해약금'이라는 제도가 나온 것이다"고 강조했다.   

또 수수료 면제가 고객에게 이자부담이 적은 은행으로의 이탈을 부추기는 만큼, 은행들이 자금조달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은행으로선 고객에게 단기나 초장기로 저렴한 대출을 제공하기 위해 사전에 자금계획을 세워야 하는 만큼,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수수료 부과가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은행은 대출이 집행되면 (은행의) 자금계획이 어느정도 짜여지게 되는데 지원한 금액이 금방 회수된다면 계획이 꼬이게 돼 불가피하게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이라며 "수수료가 전혀 없다면 은행 간 이동이 자유로워지니 고객 이탈도 수월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정책대로) 차주가 다른 은행에서 자금을 일으켜 대출을 상환하게 되면, 은행으로선 눈뜨고 고객을 잃게 되는 셈이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누군가(토스뱅크 등)는 이를 프로모션 격으로 면제해줄 수 있다"면서도 "수수료 부과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금융관행 중 하나인데 당국의 의지가 (수수료를 면제) 그렇다면 협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과거 조기상환수수료를 지불했던 차주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기존에 상환했던 사람은 지불했던 비용인데 (이러한 조치로 비용을) 완전 면제하는 것도 형평성 문제가 있다"며 "비용이나 한두 가지 사유로 수수료 감면을 고려하기 보다 여러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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