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장중한 공공의 명분, 대다수 언론·사학인들엔 해당 없어
   
▲ 이원우 기자

한국 사회의 오랜 논쟁 중 하나. 연예인은 과연 공인(公人)인가, 아닌가?

‘연예인 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인기 연예인은 과연 공인에 필적할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영애의 ‘리파캐럿’이 뷰티 업계를 뒤흔들고, 전지현의 '별그대 코트' 한 벌이 패션업계를 좌지우지하며, 이효리의 인생사는 법이 뭇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게 어느덧 일상적 풍경이 됐다. 인기 연예인은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들이다.

진짜 고민은 이제부터다. 그렇다고 해서 이영애 전지현 이효리 등을 포함한 ‘모든’ 연예인들에게 공인으로서의 지위를 정식으로 부여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이를테면 이영애에게 국익우선 의무를 지우고, 전지현에게 지위남용금지 의무를, 이효리에게 겸직금지 의무를 지운다면?

그녀들 정도 되는 연예인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그녀들은 많든 적든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에 대한 대표성을 띠고 있었으니 크게 달라질 것도 없을지 모른다. 허나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고군분투 중인 무명의 예인들에게 이는 너무 가혹한 처사가 되지 않을까. ‘겸직’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그네들의 일상에 공인법(公人法)은 더욱 무거운 굴레가 되어 재능의 만발을 늦출 것이다.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김영란법’은 정확히 위와 유사한 개념의 혼동 속에서 낭비적인 담론을 발생시키고 있다. 언론인이나 사학 관계자들이 중요한 존재라는 것은 누구라도 아는 바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자들과 ‘모든’ 사립학교 교원들에게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을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는 법을 들이대도 되는 걸까.

   
▲ 10일 일명 '김영란 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는 김영란 前 국민권익위원장/사진=연합뉴스TV 화면 캡쳐

공인이라 불려도 좋을 만큼 가치 있는 취재를 반복적으로 하는 언론인이 된다면 가문의 영광이겠으나 그 지위에 합당한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다. 굳이 법까지 만들어서 일반화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나와 같이 언론계 말석에서 먼지 같은 존재감으로 하루하루 숨 쉬고 있을 뿐인 기자(들)에게 김영란법은 별 의미도 없이 무겁기만 한 굴레가 아닐 수 없다. 누군가 나에게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줄 일도 없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국가가 나서서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얹을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어차피 똑같은 상황이라면 간섭이 없는 편이 자유민주주의에 부합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사실을 담담하게 전달할 뿐, 공공(公共)의 이름으로 울려 퍼지는 장중한 BGM은 대다수 언론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법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은 본인들의 삶이 지나치게 화려한 나머지 남들의 인생은 그럭저럭 재미없는 잿빛 패턴으로 간단히 굴러간다고 믿고 있는 건 아닌지? 언론인도 사학 관계자도 공인은 아니다. 법 조항 하나로 간단하게 꿰뚫을 수 있을 만큼 우리 삶의 양태가 단조롭지도 않다.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농담이 있지만 이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또한 현재의 김영란법에 꽤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은 것은 ‘공인계의 진짜 끝판왕’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정도일까. 100만원 아니라 100조원 이상의 금품으로도 쉽게 살 수 없는 게 하나 있다면 1948년 건국과 함께 전해져 내려오는 헌법정신(憲法精神)일 것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