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위주 마초·'프랫 보이' 회사 문화, 여성 폭력 방치" 지적
[미디어펜=박규빈 기자]미국 거대 게임사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오랫동안 지속된 사내 성범죄와 성차별 등 각종 성추문에 휩싸인 가운데 회사 대표이사(CEO)가 직장 내 성폭행 피해자의 호소를 묵살해 논란이 일고 있다.

   
▲ 액티비전 블리자드 로고./사진=액티비전 블리자드 제공

연합뉴스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을 인용해 보비 코틱 블리자드 CEO가 2018년 여직원이 직장상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등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적절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17일 보도했다.

블리자드는 게임 프로젝트별로 여러 스튜디오를 나눠 운영한다. WSJ에 따르면 유명 시리즈 '콜 오브 듀티' 등 개발을 담당해온 '슬레지해머' 스튜디오의 한 여직원은 2018년 변호인을 통해 코틱 대표이사에게 이메일로 2016년과 2017년 직장 상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당시 상사가 사무실에서 술을 억지로 많이 마시도록 해 정신을 잃게 하고나선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측은 문제의 상사에 대해 문책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와 법정 밖에서 합의만 시도하려 했다는 전언이다.

이에 대해 코틱 대표이사는 이사회와 다른 임원들에게 "자신은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몰랐고, 알았다 하더라도 별일 아닌 것으로 알았다"고 항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WSJ는 코틱 대표이사가 회사 내에서 일어난 일들을 매우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이사회 등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여러 증언과 문건 등 정황 증거가 있다고 지적했다. 직장에서 문제를 일으켜 퇴출된 직원은 우수한 성과를 낸 양 포장되는가 하면, 남은 직원들은 그에 대해 침묵을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최근 블리자드는 수개월 간 직장 내 성폭행·성추문·여성 차별 등 각종 성추문으로 인해 복수의 정부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공정고용주택국(DFEH)은 지난 7월 액티비전이 성차별적인 남성 위주 문화와 사내 성희롱 등을 방치해 현행법을 어겼다며 소송을 냈다. 캘리포니아주 당국의 소송 제기 이후 500건이 넘는 △사내 괴롭힘 △성폭행 △성차별 등의 각종 피해 사례가 블리자드 사측에 접수됐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역시 블리자드가 사내 성추문 등의 정보를 고의로 은폐했는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최근 불거진 블리자드의 각종 성추문은 뿌리 깊은 '마초 문화' 탓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WSJ는 이를 '남성성이 강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남학생'이라는 의미의 '프랫 보이'(Frat boy) 직장 문화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액티비전 블리자드 직원들이 회식 자리에서 노출이 심한 무용수의 폴댄스를 관람하거나 여직원들에게 많은 양의 술을 억지로 먹이거나 패거리로 스트립바에 몰려가기도 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업계는 성과만 추구하는 회사 문화 역시 한 몫 했다고 분석한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오버워치·콜 오브 듀티 시리즈·디아블로·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스타크래프트 등 글로벌 흥행작 덕에 대형 게임사로 성장했다. 회사 시가 총액은 10년 전 140억 달러(한화 약 16조5000억원)에서 현재 515억 달러(한화 약 63조8000억원)로 4배 가량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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