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공약 이후 9년만에 '차별금지법' 제기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인권위 20주년 기념식에서 2012년 대선 이후 9년만에 차별금지법 필요성을 제기했다. 문 대통령은 25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우리가 인권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20년 전 우리는 인권이나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을 만들지 못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이라는 기구법 안에 인권 규범을 담는 한계가 있었다"면서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인권 규범을 만들어 나가는 일도 함께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연령, 인종, 장애, 종교, 성적 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시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권위가 2006년 제정을 권고했으며, 2007년 노무현정부 때 법무부가 처음 발의했다. 하지만 보수 기독교계의 강한 반발로 현재까지 입법에 실패했다. 사실상 지금까지 15년째 추진되고 있지만, 각계각층의 반대로 발의와 폐기가 반복되는 답보 상태에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2년 차별금지법을 대선 공약으로 삼았다. 하지만 2017년 대선에선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들어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약속을 돌연 유보했다. 기독교계 등에서 차별금지법의 '성적 지향'이라는 항목이 동성결혼을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이를 의식한 듯 문 대통령은 2017년 2월 한 여성 성소수자로의 '차별금지법에 반대하시느냐'는 질문을 받고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리겠다"고 즉답을 피한 일도 있다. 취임 이후에도 차별금지법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아왔던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비공개 참모회의에서 '차별금지법을 검토해볼 단계'라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며 고(故) 이예람 공군 중사의 아버지와 대화하고 있다. 2021.11.25./사진=청와대

문 대통령이 임기를 6개월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차별금지법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서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기에 부담이 적은 이유가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27일 ‘개 식용’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제는 개 식용 금지를 신중하게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며 관계 부처에 법률 검토를 지시했다. 김부겸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나온 말이다. 

문 대통령으로서도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개 식용 금지 문제 모두 당장 해결되기 쉽지 않은 것이란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15년째 입법 표류 상태이고, 개 식용 금지 문제 역시 말 꺼내기도 어려울 만큼 만연해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선진국 문턱을 넘긴 대한민국 대통령이 두 문제를 제기한 만큼 이번 대선에서 이슈로 떠오를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25일 국회에서 관련 토론회를 열어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공론화했고, 찬반 양측은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현재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를 제외하고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법 제정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 명동성당에서 “모두의 인권을 폭넓게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는 길”이라면서 "인권 존중 사회를 향한 여정에는 끝이 없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인권의 개념이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서로 부딪히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는 차별과 배제, 혐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게 됐다. 코로나와 기후 위기, 디지털 전환 속에서 발생하는 격차 문제도 시급한 인권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앞으로 인권위의 존재와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때로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요구하는 것도 인권위가 해야 할 몫”이라고 강조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