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농민들의 쌀 시장격리 촉구에도 “지켜보고 있다”
[미디어펜=구태경 기자] 올해 쌀생산량이 전년 대비 약 10% 증가해 쌀값 하락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자 정치권과 농민단체들이 연일 정부를 향해 대책을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물가안정과 쌀값 하락 방지를 놓고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 농림축산식품부 세종청사 정문 맞은편에 걸려 있는 '쌀 시장격리 촉구' 현수막./사진=미디어펜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1년 쌀 생산량은 388만 2000톤으로 지난해 350만 7000톤 대비 10.7% 증가했다.

이는 예상 수요량 보다 적게는 27만톤, 많게는 31만톤이 초과된 생산량이다.

통계청은 지난해 대비 벼 재배면적이 증가했고, 당초 예상 생산량은 평년작 수준이었으나, 등숙기(9월 1일~10월 15일) 기상여건이 양호해 예상보다 생산량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올해 9월 이후 하락세를 타고 있는 산지 쌀값이 10월 25일 기준 20kg 당 5만4154원에서 11월 5일에는 5만3643원으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호남 일정을 이어가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쌀 값 안정을 위한 ‘시장격리’를 정부에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강은미 의원(정의당, 비례)도 이에 동참하면서 “정부가 물가 안정을 이유로 쌀값 폭락을 외면하고 있다”고 밝히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을 향해 쌀 30만톤의 즉각 시장격리를 주문했다.

강 의원은 지난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농어업먹거리선거대책위원회'와 함께 쌀값 하락 방지대책 수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2016년 이후 매년 감소세를 이어오던 쌀 생산량이 5년 만에 증가했으나, 쌀값이 하락하면서 ‘풍년의 역설’이 현실로 나타났다”고 언급했다. 

이어 “물가 인상으로 생산비는 예년에 비해 급증했으나, 쌀값이 하락하면서 농민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정부는 공익형직불제 체계를 도입하면서, 쌀값 안정을 위해 ‘미곡의 과잉 생산 등으로 해당 연도의 미곡에 대한 수요량 대비 생산량이 3% 이상일 경우와 수확기 평균가격이 5% 이상 하락한 경우’에는 ‘자동시장격리’를 하도록 ‘양곡관리법 16조(가격안정을 위한 양곡의 수급관리)’와 ‘양곡수급안정대책 수립·시행 등에 관한 규정’을 뒀다.

이 후보와 강 의원이 쌀 시장격리를 주문하고 있는 근거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8일 '광주 선대위 출범식'에 참석하기 위해 도열한 당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이 후보는 지난 27일 전라남도 영광시에서 연설을 통해 “기후위기로 인해 전 세계적인 곡물 부족사태가 일어날 것이며, 농업은 안보를 책임지는 전략산업이다”라며 “쌀 시장격리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고, 쌀 가격 보전은 정부의 의무”라고 꼬집었다.

이 후보는 다음날 전남 나주시에서도 “앞서 농업인들이 최소 27만톤의 쌀 시장격리를 정부에 요청했지만, 예산 부족의 이유로 방치되고 있다”며 “어차피 초과물량이 나오면 정부가 사야하는 데, 이런 부분에서 정부 예산을 아낀다고 칭찬 받지는 못할 것”이라고 비난의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계속 기획재정부에 부탁하고 있지만, 들어주지 않는다”면서 “쌀 값 하락방지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재 쌀을 시장격리까지 할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주무부처인 기재부와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지난해보다 과잉생산 된 것은 인지하고 있으나, 아직 상황을 지켜봐야 할 단계‘라는 입장이다.

홍 부총리는 지난 17일 농축산물 물가동향 점검을 위해 찾은 서울 서초구 소재 농협하나로마트에서 “생산량 증가에도 불구, 쌀 값은 여전히 높게 유지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배추·마늘 등 김장채소는 정부 비축물량, 계약재배 물량 등을 활용해 시장공급을 대폭 확대할 것”이라며 “쌀은 생산량 증가 효과가 가격에 충분히 반영되도록, 수급관리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쌀 시장격리로 현재와 같은 가격이 유지될 경우, 연말 소비자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시장격리 조건은 수확량이 수요량보다 3%이상 증가 또는 가격이 전년대비 5% 이상 하락할 때”라며 “아직 쌀값이 그만큼 하락하지 않았다. 추정치는 추정치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도 물가 인상과 겹치면서 쌀값이 상승하기도 했다”며 “가장 최근 시장격리를 시행했던 2017년과 비교하면, 2만원 가량 비싼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시장격리를 요구하는 이들이 근거로 내세운 ‘양곡관리법’이 되려 발목을 잡은 셈이다.

그럼에도 강 의원은 “쌀값이 시장 물가 관리 차원에서는 높다는 이유를 들어 시장격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은 농민들에 대한 의무를 져버리는 것”이라며 “쌀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더 하락할 때까지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전해일 한국농업경연인중앙연합회 부회장이 지난 15일 기획재정부 정부세종청사 정문 앞에서 정부의 농업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한편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 배석한 박웅두 농어업먹거리선거대책위원장은 “법률에도 명시돼 있는 규정을 무시하면서까지 오히려 쌀 가격을 낮추기 위해 농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손해를 전가하는 이중적 태도를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디어펜=구태경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