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55)-사랑의 욕망과 영혼의 방황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사랑은 달콤한 비극이다. 사랑은 두려운 기쁨이다. 베르테르는 사랑이 환희와 떨림, 슬픔과 절망의 모순된 교향곡임을 격정적으로 보여주었다.

순결한 열망과 파멸을 향해 질주하던 베르테르의 비극적 운명에 취해 중학생 시절 이 책을 끼고 살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춘기 소년의 감성을 뜨겁게 달구었었다. 벌써 40여 년 전 일이다. 2011년 프랑크푸르트 괴테 생가(박물관)를 혼자 찾아간 이유도 그 감성의 상기해 보고 싶어서였다. 그의 체취와 고뇌가 배어있는 집필 서재에서 느낀 감동이 아직도 내 마음에 잔잔하게 남아있다.

다시 읽는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역시 그가 묘사하는 사랑에 빠진 인간의 미묘하고 복잡한 감성의 변화,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성찰의 심오함에 거듭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베르테르 같은 순수한 열정의 사랑은 이제 신화가 되었다.

오늘날 베르테르와 같은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키우고,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막다른 골목까지 자신의 영혼을 몰아가며 번민할 사람도 드물 것 같다. 정말 누구라도 베르테르와 같은 사랑이라면 모든 것을 용인해 주고 싶을 만큼 우리를 동화시킨다.

베르테르와 샤를로테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젊은 변호사 베르테르는 시골 영주의 사냥용 별장 마을 발하임에서 샤를로테를 만난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여덟 남매를 어머니처럼 키우는 샤를로테, 그녀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한 아이들 사랑, 시골의 평온한 대자연 속에서의 삶을 ‘무한한 행복의 원천’으로 느끼는 감수성, 순수하고 솔직한 그녀의 감성이 베르테르를 매혹시킨다. 베르테르는 친구 빌헬름에게 샤를로테에 대한 사랑의 감성을 빠짐없이 고백한다. ​

“천사 같아! 천사!……체! 누구나 자기 애인을 그렇게 부르지, 그렇지 않나? 하지만 난 자네에게 그녀가 얼마나 완벽하며, 왜 그렇게도 완벽할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그녀는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리고 말았어. 그렇게 지혜로우면서도 단순하고, 그렇게 꿋꿋하면서도 너무나 친절하고, 그토록 발랄하고 활력이 넘치면서도 영혼의 평화를 지니고 있는 사람.”

공감하는 것이 많아지면 필연적으로 사랑은 싹튼다. 베르테르와 샤를로테는 하나같이 대지에 내리는 단비, 향기를 머금은 따스한 바람, 하늘, 창밖의 시골 풍경 하나에도 시심(詩心)을 가질 수 있는 섬세한 감성을 공유한다. 그들에게 펼쳐지는 대자연의 숲, 골짜기, 산봉우리, 보리수나무, 그리고 호메로스의 시에서 이들은 순결한 환희를 느낄 줄 안다.

하지만 샤를로테가 알베르트의 약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베르테르의 번민은 시작된다. 그는 고통과 방황과 시름을 잊게 만드는 샤를로테의 천사 같은 피아노를 연주도, “하느님이 우리를 대하듯이” 아이들을 대하는 샤를로테의 어린아이 같은 ‘검은 눈’과도 작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베르테르는 사랑의 격정을 피해 발하임을 떠난다. 고향 근처의 도시에서 백작의 아래에서 공사(公使)를 돕는 하급 관리의 생활을 시작하지만 그는 잘 적응하지 못한다. 그의 감수성은 업무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관료체제와 부딪힌다. 귀족 출신 B양을 만나 잠시 호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거리감만 확인한다. ​

오만과 허위의식에 찬 귀족들에게 베르테르의 꼿꼿한 자신감은 오히려 자신들을 경멸하는 오만한 태도로 비친다. 결국 그는 관직을 사직하여 추밀고문관이나 공사가 될 수 있는 인생행로를 포기하고 만다. ​

베르테르의 가슴에서 한시도 떠날 수 없었던 샤를로테와의 재회 역시 운명적이다. 이제 결혼까지 한 샤를로테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베르테르는 주체할 수 없다. 끓어오르는 사랑의 열정과 끊임없이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봐야 하는 절제 사이에서 그는 방황한다. 인간의 감성에 이보다 더 잔혹한 상황은 없다.

베르테르는 샤를로테의 황홀한 눈길에서 동시에 발견하는 “진심어린 관심과 달콤한 연민으로 가득 찬 눈길”이 그를 더욱 괴롭힌다. 그는 샤를로테의 동정심이 아니라 애정을 희구하고 있었다. 샤를로테의 침착한 절제력에 비해 베르테르의 감성은 내부의 격렬함에 휘둘린다.
 

   
▲ 피아노를 치는 샤를로테와 감상에 빠진 베르테르, 작자 미상.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해도, 샤를로테에 대한 감정이 이 모든 것을 삼켜 버리고 만다네.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녀 없이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네.”

샤를로테의 남편 알베르트에 대한 죄책감과 적대감,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샤를로테의 절제 사이에서 베르테르의 타오르는 불꽃같은 짝사랑의 열정은 자신을 절망의 나락으로 끌고 들어간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가슴에 품은 그의 내면의 방황은 더 이상 탈출구가 없다.

베르테르의 사랑의 ‘자유 감정’은 사회적 규범과 제약을 뛰어넘을 수가 없다. 한계에 부딪힌 베르테르의 좌절과 원망의 화살은 운명적으로 샤를로테나 알베르트, 혹은 자신 누구에게 이든 향할 수밖에 없다. ​

베르테르와 샤를로테의 심성은 아름답다. 자연과 시에 대한 감수성 또한 예민하다. 베르테르의 ‘오시안의 시’ 낭송을 듣고 샤를로테가 눈물을 흘린다. 베르테르가 샤를로테에게 폭풍 같은 포옹과 첫 키스로 격정을 폭발시키고 마는 것도 예고된 일이다. 하지만 뿌리치던 샤를로테에게 베르테르에게 그 이상 바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사랑의 종말이다. 그는 이미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을 죽음으로 끝맺음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

"그의 품에서 당신을 빼앗으려는 것도 이 세상에서 죄가 되겠지요? 죄라고요? 좋습니다. 나 스스로 자신에게 벌을 주겠습니다. 나는 천상의 환희 속에서 그 죄를 맞보았으며, 이 죄를, 생명의 향기와 힘을 내 가슴에 다 빨아들였습니다. 당신은 이미 이 순간부터 나의 것입니다! 나의 것이란 말입니다! 오, 샤를로테여! 내가 먼저 가겠습니다.”​

샤를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애절한 사랑의 호소가 담긴 숱한 편지들은 세상을 향한 메아리 없는 절규다. 자기 영혼과의 처절한 싸움이다. 그의 죽음의 모티브는 이미 여러 번 전조(前兆)로 보여준다. 과부를 사랑하던 시골 농사꾼이 벌인 삼각관계에 의한 살인 사건에서 그를 옹호하던 동병상련의 태도도 그 중의 하나였다.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데, 권총을 좀 빌려 주시겠습니까?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베르테르는 하인에게 시켜 쪽지를 보내 알베르트의 권총을 빌려오게 한다. 알베르트의 허락에 의해 샤를로테는 불안감에 싸여 그 권총을 건네준다. 베르테르는 샤를로테의 손길이 닿은 권총에 키스하며 영원한 사랑이 구현될 세상으로 떠난다. 천상에서 다시 만날 그 날을 희구하며.

어디까지가 괴테 자신의 이야기이고, 베르테르의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줄의 문장도 체험한 것 그대로 쓰지는 않았다”는 괴테의 말은 많은 걸 시사한다.
 

   
▲ 괴테의 초상화, 요셉 칼 슈틸러(Joseph Karl Stieler, 1781–1858)의 1828년 작, 뮌헨 노이에 피나코테크(Neue Pinakothek) 미술관.
괴테는 실제 1772년 베츨라에서 케스트너의 약혼자인 샤를로테 부프를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절망감에 베츨라를 떠난다. 샤를로테는 분명히 괴테가 사랑에 빠졌던 샤를로테 부프의 일면을 갖고 있다. 그러니 베르테르의 일면은 괴테 자신의 투영일 수 있다.

여기에 괴테와 케스트너의 친구이기도 했던 예루살렘이라는 청년이 25세의 나이로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다 실연(失戀)하여 권총으로 자살한 사건이 절묘하게 결합되었다.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권총을 빌리는 쪽지의 문구는 에루살렘의 글귀를 그대로 따왔다.

   
▲ 괴테가 생전에 쓰던 책상이다. 2011년에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생가박물관을 방문했었다. 그의 사색과 번민의 작품들이 쓰이던 책상을 어루만지며 그를 추억해 보았다. 독일 프랑크프르트 괴테 박물관(생가) ⓒ박경귀
괴테 자신이 애닮은 사랑의 열병을 앓았었기에 베르테르의 애절한 감성을 담아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지만 자살은 죄악이다. 그게 당대의 인식이었다. 베르테르의 어긋난 사랑의 결말이 자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괴테는 종교적 인생관이 지배하던 당대인의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자살이 인간 내면의 극한적 갈등과 한계에서 벗어나는 또 하나의 ‘자유’일 수도 있다는 괴테의 문학적 도발을 선악의 문제로 재단(裁斷)하기도 어렵다. ​

베르테르는 죽음을 통해 사랑의 안식을 찾았을까? 자신의 몸에 갇혀 있던 그의 자유 영혼은 몸의 감옥으로부터 해방되었을까? 이 작품은 세계의 많은 애절한 연인들을 격동시켜 자살이 유행처럼 번지게 했다. ‘베르테르 신드롬’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자체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는 역설적으로 25세의 젊은 청년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문학적 성공을 의미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

피 끓는 청춘들이라면 베르테르의 순결하고 격정적인 사랑과 감성, 영혼의 방황에 공감하지 않을 이가 누가 있겠는가. 또 여성들이 이런 지극한 사랑을 받고 싶은 욕망을 누가 나무랄 수 있겠는가. ​

사오십대가 되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다시 읽는 건, 또 하나의 ‘감성 테스트’이다. 사랑을 바라보는 시각, 사랑이 만들어내는 달콤한 감성, 고통과 애탄(哀歎)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지도 한번 확인해 보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아주 메말라버린 감성의 불씨를 찾을 수는 있으려나?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 박물관에 있는 괴테의 실루엣 ⓒ박경귀

 

   
▲ ☞ 추천도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N. D. 코도비에키 외 그림, 이인웅 옮김, 두레(2010, 4쇄), 3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