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 시장경제 간섭 땐 과감히 맞서야, 피케티 이론 폐기돼

   

▲ 박종운 논설위원

1848년 <공산당선언>으로 유령이 출몰한 이후 마르크스의 19세기 <자본(Das Kapital)>이 전 세계를 아비규환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적이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실험이 실패로 판명난 이후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로봇들의 사회와 같은 항등순환경제에 돌입하여 ‘역사의 종말’이 이루어지리라던 마르크스의 예측도 산산이 깨어졌다.

그런데 지금, 2013년부터 피케티의 <21세기 자본(Le Capital au XXIe siècle)>이 다시 좀비처럼 나타나서 마르크스의 19세기 <자본(Das Kapital)>과 연속성을 자랑하며 신도들을 새로 불러모으고 있다. 이에 지금 시기에는 피케티의 유령과 맞서 싸우는 것이 중요해졌다.

최근 대한민국에서는 즉시 안재욱 현진권 편저 <21세기 자본 바로읽기>가 바로 나와 자본이 자동적으로 소득을 낳는 것이 아니라는 요지로 피케티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이러한 신속한 반박은 참으로 의미가 깊은 것이었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펴낸 이후 즉시 그것을 반박했던 뵘-바베르크의 신속한 대응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이런 비판이 없이 나홀로 학문연구에 몰두한다면, 어느 새 학계와 정치계는, 과거 마르크스주의 지지세력이 그러했듯이, 피케티 지지세력에 의해서 점령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피케티의 경제학은 프랑스 본국에서는 우선 정치적으로는 이미 폐기되었다. 피케티는 2012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경제 고문으로 75%세율의 부유세를 실현하는데 앞장섰다. 그러나 2년간 부유세를 시행해보고나서 올랑드는 이것을 폐기하기로 하였다. 부작용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경제는 정체상태에 빠지고 실업률은 10%를 웃돌았다.

그래서 2014년 8월 산업부장관에 사회주의자 중 우파 마크롱을 등용하면서 정책노선을 수정하기 시작했고, 2015년에는 마침내 부유세 폐기결정을 내린 것이다. 대선 당시에도 마크롱은 이 정책에 대해 프랑스를 태양이 사라진 어둠의 쿠바처럼 만드는 제도라고 비판한 바 있었고, 지금도 노동자들에게 좋고 필요한 것은 기업이 활성화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피케티의 책 판매량이 상당히 많고, 법인세 인상, 부자 증세 이야기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는 상태다. 차제에 자본 이론 자체에 대해서 더 심도 있게 살펴보는 것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자본은 저축이고, 자본가는 저축을 한 사람이며, 기업가는 그 자본을 빌려서 시장 소비자에게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자본이 그 자체로 자동적으로 수익을 낳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봉사에 대한 아이디어, 신용, 그리고 차임 혹은 주식발행의 순서로 중요한 것이고, 그 담당자로서의 기업가에 주목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아가 은행업과 주식회사제도를 감안하면, 자본을 공격하는 것은 저축하는 일반 시민을 공격하는 것이고, 번영을 가로막는 길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본의 실체는 무엇인가? - 좋은 것들의 저축인 자본은 소비자의 선택을 따라간다.

자본은 시장에 필요한 물품들을 제공하기 위한 생산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자본(資本)은 원래 영어 Capital을 의역(意譯)한 것이다. 그 영어 단어도 어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라틴어에서 나온 것이다. 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의 유피테르 유노 미네르바의 세 신을 모신 신전이 있던 곳이 로마의 일곱 언덕 중에서 카피톨리누스(Capitolinus) 언덕이었는데, 로마가 전쟁에서 승리한 뒤 개선식을 했을 때 그 종점이 이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수도를 Capital이라고 부르고, 미국의 국회의사당을 Capitol이라고 부르는 것이 모두 여기서 비롯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을 가리키는 이런 의미에서 파생되어 시장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일컬을 때도 Capital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그러면 시장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장 지향적 생산을 하는데 필요한 자원들(resources)을 동원하는 힘(mobilization power)이다. 화폐(money)는 좋은 것들(goods) 중에서도 시장성(marketability)이 가장 높은 것이기 때문에,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게 하는 화폐에 대한 정부의 인위적 조작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또 가뭄 기근 사막에서의 경우와 같은 극단적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시장성이 높은 화폐는 일상적으로는 필요한 모든 좋은 것들과 바꿀 수 있는 안정적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통속적으로는 화폐가 가장 중요한 것(資本=天下之大本)으로 간주되고 있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있는데, 어떤 말보다도 이 속담이 ‘부리는 힘’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보통 자본을 이상한 추상적 실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이처럼 자본이 ‘화폐(money)로 표현된 좋은 것들(goods)의 합’에 다름 아니다. 시장성이 있는 화폐로 구성된 자본은 그래서 화폐적인 모습이 아닐 때에는 자본재(Capital Stock)의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시장경제 속에서, 정부의 인위적 조작이 없다면, 화폐를 저축한다는 것은 실물에 대한 구매력(purchasing power)을 저축하는 것이기에 이는 곧 실물을 저축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미제스는 “개인이 소비를 위해 화폐를 쓰지 않고 그것을 저축할 때마다, 저축 과정은 자본 축적 및 투자의 과정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하였는데, 현실에서는 이처럼 화폐의 저축이 곧바로 자본축적과 동일시될 수 있다.

은행업의 발달과 함께, 개별 가계들의 저축은 더 큰 규모의 자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소비를 억제하고 그것을 저축하되 집안의 항아리에 묻어놓는 것이 아니라, 믿을만한 보관업자에게 맡겨놓게 됨에 따라 화폐보관업자(deposit banker)도 겸한 금세공업자(goldsmith)가 그 금보관증서들(certificates)을 발행하였는데, 종이로 된 증서를 사용한 교환은 시장거래를 더 편리하게 만들었다.

이때 화폐보관업자들도 남이 맡긴 화폐를 다른 사람에게 대부해주고 이자를 받는 방안을 창안해냈고, 또 몰래 가짜 증서를 추가발행하면 일시적 상환요구로 그것이 들통나지 않는 한 은행에 이익이 된다는 발견도 함으로써 부분지불준비금제도도 창안해냈다. 은행업에서 이러한 부분지불준비금 제도는 가공의 신용을 창조하는 것이기에, 저축을 기반으로 하여 더 큰 규모의 자본을 생성시켜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토대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신용에 의심이 가는 순간 뱅크런(bankrun)을 초래하고 연쇄 작용 시 은행업 전체를 위기에 빠트리는 악영향 요소이기도 하다.

시장봉사자들의 형태도 가계경제(household economy)에서 기업경제(company economy)로 나아갔다. 기업경제에서 각각의 저축을 모아 시장봉사를 하는 방식에는 합명회사(무한책임 + 무한), 합자회사(무한 + 유한), 유한회사(유한 + 유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유한회사의 규모를 인적결합을 넘어 확대시킨 주식회사(유한 + 이사와 감사 + 지분거래의 자유)가 생겨남으로써 더 큰 자본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기업이 책임 범위에 따라서 법적 형태가 달라진다는 것은 그만큼 인적인 부문에 대한 신뢰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책임 범위를 조절함으로써 더 모험적인 사업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뜻한다.

여기서 부분지불준비 은행업이나 주식회사 기업에서 중요한 부분은 신뢰, 신용이다. 그 신뢰 신용은 약속을 지키는 능력과 의지의 문제인데, 일시적일 수도 있고, 중장기적일 수도 있다. 또한 사업성 판단에 대한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저축을 맡기거나 투자한 사람의 경우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을 경우 손실을 감내하여야 한다.

따라서 은행업을 하는 사람이나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의 신뢰 신용 부분을, 그리고 그들의 봉사기획이 타당하고 능력이 있는가 하는 것을 꼼꼼히 따져볼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이 의미하는 바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고 사람의 봉사기획과 능력이 중요한 것이지, 자본과 이윤의 자동적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이 자동적으로 이자와 이윤을 낳는 것이라면, 그때는 오직 속임수가 있느냐 없느냐만 따지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자본수익률이 항상 경제성장율을 웃돌아 부의 불평등이 상속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80%의 부유세를 과세하자는 제안을 했다. 마르크스주의를 21세기에 환생시키려 한  피케티 이론은 조국 프랑스에서도 폐기됐다. /사진 연합뉴스

시장경제에서는 소비자가 주권자이기 때문에 소비자민주주의가 관철되고 있다. 따라서 시장봉사자가 제공하는 좋은 것들 혹은 서비스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구매되느냐 여부가 그 시장봉사자의 성패를 결정짓는다. 그래서 소비자의 경쟁적 입찰이 있는 영역인 블루오션(blue ocean)으로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이윤을 많이 얻느냐, 아니면 충성봉사경쟁을 벌이는 시장봉사자들로 넘쳐나서 이윤율이 0에 가깝게 떨어지는 레드오션(red ocean)에 안일하게 남아있느냐는 대단히 중요하다. 자본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구매되는 좋은 것들 및 서비스들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몰린다. 그들에게는 은행의 대출도 쉬워지고, 회사지분의 판매를 통한 자본확보도 용이해진다.

자본, 자본가와 기업가 – 시장봉사자인 기업가를 자본가로 착각하고 싸우는 것은 일반 시민들과 싸우는 반민주적 행위다.

고리대금업이나 수공업과 같은 가계경제 시대에는 대부업을 포함해서 시장봉사업을 하는 사람이 오직 스스로가 저축한 돈으로만 일을 도모해야 했다. 그래서 자본가라는 말은 기업가와 구분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1734년에 사망했지만 ≪상업 일반의 본성에 관한 논문(Essai sur la Nature du Commerce en Général)≫이란 책이 1755년에 나온 것으로 알려진 캉티용(Richard Cantillon)이 이미 기업가(entrepreneur, undertaker)라는 말을 만들어내고 위험을 떠맡아 사업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뜻 풀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그의 책을 읽어보고 ≪국부론(Wealth of Nations)≫(1776)을 썼음에 틀림없는 애덤 스미스도 이 용어를 채용하지 않고 고용주(employer)라는 말을 썼으며, 그 이후 세대인 마르크스도 자본가(capitalist)라는 말을 썼다.

마르크스는 자본가가 자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잉여노동생산물을 독차지하고, 노동자들을 착취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100여년이 지나서 제본스가 다시 캉티용을 발굴해냄으로써 기업가적 기능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마침내 미제스가 1949년 ≪인간행동(Human Action)≫에서 자본가와 기업가를 기능적으로 구분함으로써, 비로소 개념적 정리가 확실하게 이루어졌다.

마르크스의 자본가 개념은 은행업이나 주식회사와 같은 기업경제 시대에 이르게 되면 현실과 더욱 멀어지게 된다. 이 시대에는 기업가가 스스로 가지고 있는 돈이 적더라도 타인의 돈을 빌리거나 모집하여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봉사하는 일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에서의 대출은 타인의 저축을 큰 자본으로 전화시키는 매개체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은행 저축이나 주식회사의 지분에 투자함으로써 소액 자본가가 되었다.

기업가를 시장 소비자에 대한 봉사자로 보지 않고, 또한 자본가를 그런 우수한 능력을 검증받은 기업가에게 투자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낡은 마르크스의 개념대로 기업가를 자본가라고 보고 그를 투쟁과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 차입자본재로서의 생산수단을 몰수하게 되면, 그 투쟁세력은 실제로는 저축자로서의 일반 시민들과 싸우는 것이 된다.

시장경제학의 발전 과정에서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들은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의 개념을 만들어내었다. 이 개념은 물리적으로 양(陽, positive)적인 실(實)만 전제로 하는 실증주의(positivism, 입증가능성 혹은 반증가능성) 하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으나, 여러 선택지를 가지고 주관적으로 선택하는 현실을 직시하자 비로소 선택되지 않은 선택지, 즉 실체화되지 않은 허(虛)의 선택지에 대한 고려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경우에 주관주의 경제학이 말하는 포기된 기회(forgone opportunity)에 대한 고려는, 실뿐만 아니라 허에 대해서도 고려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자본가와 기업가의 기능적 역할 구분을 한층 더 명확하게 해준다.

예컨대 10년 만기 국채 표면금리가 연 5%로 이자를 6개월 단위로 지급하는 경우, 대출을 하지 않거나 사업을 하지 않고 국채를 살 경우에는 이 액수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기업가가 사업을 할 경우에 자기 자본이 있어서 그 돈을 쓰게 된다면, 그 과정은 실제로는 기업가로서의 자신이 자본가로서의 자신을 설득하여(즉, 스스로 결심하여) 연 5%의 이자율로 빌려쓰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는 적어도 개념적으로는 기업가는 시장봉사기획이 이윤을 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무일푼으로 사업을 하는 존재일 수 있다. 만일 그 기업가가 시장봉사 사업을 하여 장기적으로 평균하여 연 5%의 수익조차도 내지 못한다면, 그는 타인에게서 빌어온 자본에 대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함은 물론, 사실상 자본가로서의 자기 자신에게 이자를 돌려주지 못하게 됨으로써, 또 기회비용을 고려할 때 표면적 자본잠식은 없다 하더라도 손실을 입고 있는 것이 확실해짐으로써, 기업가로서의 능력이 있다고 인정받기는 힘들 것이다.

기업가는 (자기 저축에 대한 자기 설득, 자기 대여까지 포함하여) 자본을 모집하여 시장봉사 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자본과 관련해서는 노동자도, 노조도 회사 지분(주식)을 취득함으로써 주식회사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주식회사의 지분소유자로서의 노동자 혹은 노조라면, 그들도 기업가가 소비자가 경쟁적으로 입찰하는 블루오션으로 가라고 명령할 것이다.

기업의 차입이자율, 자기자본 이자율, 세금을 공제한 이윤이 기업가적 능력의 판단기준이 될 것이다. 기업에서 직접 일하지 않는 사람들도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가적 능력을 보고 회사 지분을 취득할 수 있다. 그들도 역시 기업가가 블루오션으로 가길 바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인류 역사의 거대한 비극이었던 조르주 소렐의 혁명적 조합주의(syndicalism)나 마르크스 레닌의 국가 사회주의 소비에트 실험은 시장에서의 소비자 선택과 기업가의 역할에 주목하지 못했다. 당연히 기업가가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봉사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심지어 기업가의 자녀였던 영국 페이비안 사회주의 지도자 웨브 여사조차도 자신의 아버지가 노동자들에게 명령하는 존재라는 것만 보았지, 시장에서 봉사하고 소비자들의 명령을 받는 존재라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착취자로서의 자본가를 타도하고 생산수단을 몰수하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결국 그들의 명령경제 배급경제, 아니 국가가 하나의 거대한 자본가로 된 소련 등의 국가자본주의는 시장을 없애다보니 소비자들의 수요에 민감하지 못했고 생산시설도 생산제품도 낙후되었기에, 결국 소비자이자 납세자인 국민들의 거부에 의해서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에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도 머나먼 길을 돌아 시장과 기업가를 고려하고, 기업가가 시장에 ‘봉사할 자유’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자율과 자본수익률 – 약속을 믿는 것과 기업가라는 사람의 봉사기획의 성공을 기대하는 것

이자율은 확실한 것이지만 자본수익률은 확실한 것이 아니다. 물론 자본 대부의 경우에도 이자는 물론 원금까지 날릴 수 있기 때문에, 자본가도 위험(risk)을 고려했다는 일정한 의미에서는 투자자이고 기업가이다. 그러나 주로는 신뢰에 기반하여 약속된 이자수익을 기대했다는 점에서는, 보통 부르듯이 그들을 자본가들로 부를 수 있다. 손실가능성을 더 줄이기 위해 담보부 대출을 추가하기도 하지만, 신용만 있다면 대체로 자본가로서의 은행, 주주, 자기자산을 투입한 기업가 자신이 기대한 이자의 수입은 확실한 것이다.

자본수익률이란 말은 자본이 수익을 낳는다는 환상에 기초한 것으로서 잘못된 말이다. 어떤 기업가가 시장에서 소비자가 아우성을 치며 구하려고 하는 좋은 것들(goods)을 만들어내면 그 기업가의 수익률은 높아진다.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에서 컴퓨터에서나 할 수 있었던 각종 앱을 구현하자, 예약판매시 예약구매자들이 줄을 잇고 아우성을 쳤다. 스티브 잡스가 운영했던 애플컴퓨터는 수익률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그러나 그때까지 세계 휴대폰 판매시장 소비자선호율(rate of market share)이 1위였던 노키아(NOKIA)는 엄청난 자본을 가지고 있었고 동원할 수 있었음에도 소비자들에게서 서서히 외면받음으로써 수익률이 떨어진 것은 물론 급기야는 파산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애플컴퓨터의 수익률과 노키아의 수익률을 비교할 수 있고, 그 원인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양사의 자본수익률을 평균한 집단주의적 용어로서의 자본수익률을 가지고는 현실의 어떤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시장봉사자들의 세계에서는 자본수익률에 함수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의 신뢰성을 보고, 또 그의 시장 봉사 기획의 타당성을 보는 것이 시장경제에서의 기본적인 고려사항이다. 성실하게 우유배달을 했던 신격호가 그를 예의주시하던 고물상 주인인 노인에게서 선뜻 5만엥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것, 미군의 폭격으로 망했지만 껌 판매로 성공하여 투자금은 물론 집까지 사주었던 것, 정주영이 조선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500원짜리 이순신과 거북선이 그려져 있는 지폐를 들고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의 조카 리바노스를 설득해서 주문을 받고 영국의 은행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박태준이 외국의 제철소 컨소시엄을 설득하지 못해서 끝내 투자를 받지 못했던 것,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대일 청구권 자금의 동원이라는 우회로를 통해서 포항제철을 건설하고 성공시켰던 것, 김우중이 자본은 적었지만 미국의 섬유수입 쿼터제 시행을 목전에 두고 남들은 걱정과 좌절을 했지만, 수출대행에 적극 나서서 쿼터를 많이 확보한 다음에 제도 시행 직후 자신만의 예상대로 섬유 가격이 올라가자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던 점 등은 자본과 자본수익률이 자동적 관계가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이면에 기업가적 노력들이 생생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최근 주목을 받았다가 곧 외면을 받기 시작하고 있는 피케티(Piketty)는 현실에서 함수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집단주의적’이고 창백한 자본수익률 개념을 사용하고, 그것을 경제성장률과 비교하여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사람이 돈을 버는 속도보다 빠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만, 돈이 돈을 번다고 말하려면 오히려 이자율에 대해서 말해야 하고, 자본수익률은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자율이 자본수익률보다 높은가를 비교해야 한다. 이자율(할인율)은 높은 데 자본수익률이 낮다면, 그것은 아마도 전쟁 상황과 같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현상일 것이다.

평상시라면, 개념을 정확하게 사용한다면 이자율을 기준으로 그것을 상회하는 성공한 기업가와 그렇지 못한 실패한 기업가를 가르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혹은 소득성장률)을 비교한 것이다. 더구나 그는 동일인 혹은 그 상속자들의 panel data를 가지고 비교하지 않고, 무수히 들쑥날쑥하는 사람들을 하나의 동일 집단으로 간주하고 분석하는 엉터리없는 비교를 하였다.

피케티는 19세기 ≪자본(Das Kapital)≫을 쓴 마르크스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즉 자본수익률의 경향적 저하를 이야기한 것은 기술발전과 생산성 향상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로 인해서 시장경제가 멸망하리라고 본 것도 비판하였다. ≪21세기 자본(Le Capital au XXIe siècle)≫에서는 시장경제에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상위에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스스로 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상속자본주의라고 지칭하였다. 이러한 논리를 근거로 해서 피케티는 마르크스와 다른 실천적 결론을 냈다.

피케티가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혹은 소득성장률)보다 높기 때문에 부의 불평등이 있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80%의 부유세로 성공적인 시장경제 봉사자들을 약탈해야 한다고 했지만, 자본소득세를 15%로 낮추었기 때문에 그랬기에 더 많은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또 그렇게 하면 사회가 계속 번영 발전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이 문제들에 대한 대답이란 점에서는, 비록 노동가치설부터 틀리긴 했지만, 19세기 ≪자본(Das Kapital)≫을 쓴 마르크스가 차라리 피케티보다 훨씬 양심적이고 일관성이 있다. (효용가치설과 시장에서의 소비자 주권을 모른 채로, 노동가치설에 근거해서)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했기 때문에, 피착취대중이 착취당한 것을 되찾자는 말을 한 마르크스는 훨씬 더 양심적인(?) 말을 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기업가의 신용 및 기획이 자본보다 더 중요한 것임을 보지 못하고, 또 자본이 노동의 친구라고 했던 뵘-바베르크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생산의 결실이 제대로 된 임자에게 돌아가면 의욕이 꺾여있던 사람들의 의욕을 더 고취시킬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임금노예적 생산관계의 질곡에 갇혀 허우적대는 생산력을 일거에 해방시키고 번영 발전의 길로 갈 수 있다고 말한 마르크스는 피케티보다 훨씬 더 일관성이 있는(?) 이야기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부자는 계속 부자일 것이기 때문에 약탈해야 한다! 부자를 약탈하면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가 조금이나마 좋아진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피케티에게선 그나마 마르크스에게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논리조차도 사라지고, 질투와 약탈 선동만 남았다.

 

새뮤얼슨과 맥코넬이 오판한 이유 - 시장경제에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연금술인 함수적 대응관계가 없다.

시장경제학에서 한계 혁명을 일으켰던 세 주역 중 하나인 멩거는 시장에서 좋은 것들(goods)의 교환 이면에 사람들의 효용의 절박성 및 한계 효용에 근거한 가치평가가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그 효용의 절박성 내지 한계 효용은 사람마다 다르다고(따라서 측정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에 따라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의 생산자 공급자 중심적 추정인 노동가치설을 극복했다.

또 소비자들의 수요에 따라 공급이 이루어지며, 가치평가에 따라 상호 이익이 되는 범위 내에서의 가격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균형(equilibrium)이 있다는 것은 징후에 불과할 뿐이고, 그것도 일시적인 것이라고 했다.

반면 다른 주역이었던 레옹 발라스(Léon Walras)는 공급자의 노동이 아닌 소비자의 효용이 단위로 나뉘어질 수 있고 측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모든 시장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수량을 충족시키는 공급이 가능하다는 일반균형이론을 내놓았다.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가격을 올리면 균형이 이루어진다(Walrasian equilibrium). 이는 공급자의 가격설정 전략에 유용한 관찰일 수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학파의 마셜(Alfred Marshall)은 공급이 수요보다 많다면 공급량을 줄이면 균형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는 공산품의 경우 공급자의 공급량 조절이 시시각각 가능하고, 농산품의 경우 생산량이 한 해 많아지면 다음 해에 그 작물을 심지 않아 공급량이 떨어지는 식으로 연도별로 조절되는 것으로 나타난다(Marshallian equilibrium). 이는 공급자의 공급량 조절 전략에 유용한 관찰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찰을, 경향성(tendency)에 대한 지적을 넘어, 함수적 대응 관계로 확장시켜 균형값을 찾으려고 한다거나, 최적을 찾기 위해 그림표에서 미분값이 0인 곳을 찾으려고 한다거나, 인간세계에서 불변하는 함수의 계수(coefficient)를 찾으려고 하면, 이는 현실에 맞지 않게 된다.

그림표의 사용은 오직 설명을 위한 비유이자 예시인 한에서는 강학(講學) 상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서는 기계적 대응관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함수를 가지고 경제현실을 분석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선택행동에는 인간행동과학주의 혹은 사회과학주의를, 자연의 운동법칙에는 자연과학주의를 적용해야 하는데, 통일과학을 지향했을 때는 애니미즘(animism) 시대에는 물론 미캐니즘(mechanism) 시대에도 모두, 적용범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경제현상을 함수관계로 보는 일부 기계주의적(mechanistic) 경제학자와는 달리, 현실의 기업가는 소비자의 수요에 따라 봉사한다. 즉, 가격을 올리거나 공급량을 조절해서가 아니라 더 공급하거나 소비자가 더 절박하게 요구하는 곳인 다른 블루오션을 찾아서 떠남으로써 그곳에서 봉사한다. 이와 관련한 자신의 예측행동(speculation)에 따라 시장에 봉사한다.

기업가의 관심은 균형가격이 얼마인가가 아니라 소비자가 얼마나 절박하게 원하는가, 즉 이윤가능성(profitability)이 얼마인가에 있다. 그는 현재의 가격을 참고 내지는 준거 가격(reference price)으로 보고, 판매가 대비 비용에서 이윤이 얼마나 남을 것인가를 살핀다.

기본적으로 차익 거래(arbitrage trading)의 관점에서 출발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위험(risk)과 불확실성(uncertainty)도 감수하고, 급기야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도 불사하며 소비자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제공하려고 한다.

시장경제학이 기업가가 하듯이 시장에서 이윤가능성, 즉 소비자가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기보다는 교실에서 정반대로 균형가격, 즉 소비자가 보통 원하는 것만 찾는다면, 또 시장조사 소비자선호도 조사를 하거나, 혹은 소비자선호에 대한 직관적 확신을 가지기보다는, 함수적 대응이나 기하학적 우아함만 추구한다면, 이는 인본주의적이지 않은(not humanistic) 것임은 물론이고 오히려 기계주의적(but mechanistic)인 접근의 수렁에 빠져드는 것일 뿐이다.

기계주의적 경제학에서는 소비자들의 갑작스런 수요 변화와 특정 기업 제품에 대한 편애, 그리고 기업가들의 창발성 등이 모두 교란(disturbance) 요소들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들을 설명하지 못해서 쩔쩔매거나, 교란요소들을 미워하게 된다. 기술혁신은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지만, 경제총량에 대해 쇼크(shock)로 처리되고, 실제 현실에서의 관심사인 구체적 수요 공급에 일어나는 변화에는 관심이 없다. 이것은 경제학이 아니라 경제적 수량을 바탕으로 한 수학문제 풀이 연습일 뿐이다.

인간행동을 기계주의적으로 함수적 대응 관계로 보는 잘못된 경제학이 저질렀던 가장 큰 실수사례는 사회주의가 시장경제를 능가할 것이라고 보았던 예측에 있다. 함수적인 기계주의적 경제학은 그 당연한 귀결로 배급사회를 추구했던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호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 때 세계를 풍미했던 대학교 경제학 교재는 1970년 노벨경제학상을 탄 새뮤얼슨(1915-2009)의 ≪경제학(Economics)》이다. 그는 1961년도 판에서 소비에트연방의 경제성장이 빠르면 1984년에 늦어도 1997년에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 주장의 근거는 양국의 경제성장률 비교였다. 20년 후에 나온 개정판에서도 그 시기만 2002-2012년으로 늦춰졌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소련은 1991년 붕괴되었다. 물론 그때도 그는 ‘나쁜 날씨’ 탓 외에는 별 반성을 하지 않았다.

또 새뮤얼슨만큼이나 많이 팔리고 2012년에 19판까지 나온 책의 저자 맥코넬(McConnell)도 자신의 책 ≪경제학(Economics)》에서 1963년 소련의 GNP가 미국의 반 밖에 안되지만 훨씬 많이 투자하기 때문에 미국보다 두 세배씩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와 달리 맥코넬이 주장했던 근거는 투자율이었다. 그러나 최소한 10판에 이르기까지도 그런 주장을 했지만, 1990년 판에서도 소련의 GNP는 여전히 미국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이처럼 함수적 회귀식에 근거한 그들의 예측은 모두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뵘-바베르크의 제자로서 오스트리아 학파 출신이었지만 오스트리아 학파를 벗어나 발라스를 추종해서 그랬는지, 요제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도 자신의 책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에서 사회주의의 출현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았다.

비록 “불우한 대중의 감정에 대한 마르크스의 정형화는 … 불우한 대중의 실제의 감정을 사회 발전의 논리와 바꾸어 놓으려는 기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마르크스가 노동자의 진정한 심정을 속였다”고 단서를 달긴 했지만, 그는 ‘마르크스가 그 당시 누구보다도 산업의 집중, 경제변동, 금융자본의 득세 등 자본주의의 역동적 변화를 잘 관찰하였다고 평가’하였고, “마르크스의 결론이 자본주의 발전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초를 파괴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에 머무는 한, 역시 그것은 진리일지도 모른다. 나는 진리라고 확신한다”며 지지를 표명하였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적 성공이야말로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고 있는 사회적 여러 제도를 전복시켜서 불가피하게 그 자신의 존속을 불가능하게 하며, 나아가 그 후계자로서 사회주의를 강력히 지향하는 사태를 만들어낸다는 것” 때문이라고 하였다. 즉 “자본주의적 기업은 다름 아닌 스스로의 업적에 의해서 진보를 자동기계화하는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자본주의적 기업은 자기 자신을 무용화하는 경향을 가진다고 결론짓고자 한다. 완전히 관료화한 거대한 산업 단위는 중소 규모 기업을 축출하고 그 소유자를 ‘수탈’할 뿐만 아니리 종국에 가서는 기업가 자체도 축출하며, 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까지도 수탈하기에 이른다”고 하였다.

결국 창조적 파괴의 소진 및 대기업의 관료제화로 인해 사회주의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슘페터의 예견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 관료제화로 인한 일부 부작용은 있었어도, 시장경제는 시장에서의 소비자의 명령에 따라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지, 사회주의라는 생산자지배체제로의 전환을 하지는 않았다.

이들의 예측이 틀렸던 것은 무엇보다도 소비자 중심의 경제학이 아니었다는데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본질일진대, 소비자가 필요로 하고(need), 원하는(want) 것을 파악하려고 하지 않고, 생산자 공급자의 분석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면, 생산에 근거한 투자율 분석, 성장률 분석만으로 판단한다면, 또 대기업화 관료화만으로 판단한다면, 이들처럼 오판하는 길을 걸을 수 있다. 이는 소비자주권, 소비자 민주주의 등을 이야기하며 소비자중심의 경제학을 추구했던 미제스 등의 오스트리아학파가 일관되게 사회주의의 실현불가능성을 이야기했던 것과는 크게 대비된다.

만가동만부하(滿稼動滿負荷)를 외치고 지도자의 명령에 따른 기술개발만 추구했던 사회주의 경제학이 실패한 이유도 소비자의 효용, 선호의 주관성, 그에 따른 소비자의 변덕 변심을 몰랐고 또 무시하고 하향식 배급경제에 안주했던 것에 있다는 점은 기계주의적 경제학에게도 교훈이 된다.

 

제대로 된 시장경제학이라면 허위의 자본 논리에 근거한 시장봉사자에 대한 징벌보다는 소비자 선호의 실현을 막는 장애물인 간섭주의의 극복 방안에 대해 연구하여야 한다.

유권자 민주주의 국가에 국회-정부 기구가 있다면, 소비자 민주주의 시장에는 이윤-가격 기구가 있다. 정치 면에서 유권자가 보여주는 요구를 받들어 국회의 뜻에 따라서 정부가 행정을 집행한다면, 경제 면에서는 소비자가 보여주는 초과입찰(outbidding)이 보여주는 요구를 받들어 이윤에 따라서 가격기구가 교환을 성사시킨다.

그런데 이 두 개의 민주주의 사이에서 권력은 언제나 교환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미제스는 국가권력을 악용하여 이윤가격기구를 무력화하는 간섭주의를 극력 경계하였다. 특히 일부 선동가들이 일부 이해관계 집단의 조직된 폭력과 결합하여 분위기를 몰고 갈 경우,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신에게 가해질 손해를 잘 계산하기 힘들기 때문에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경제학자들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봉사 기구인 시장경제에 해로운 장애물들이 설치될 때마다 그것에 맞서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는 잘못된 기계주의적 경제학자들의 주장과도 맞서야 한다.

특히 자본이 자동적으로 수익을 낳는다는 느낌을 주는 자본수익률 개념을 가지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시장경제의 봉사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있다. 19세기에 마르크스가 그랬고, 지금 21세기에 피케티가 그러하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자본이 중요하고, 저축이 우회적인 듯하지만 더 빠르고 강력한 생산을 위한 길을 준비하는 것이며, 자본소모 내지 저축의 탕진이 번영에 장애물이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필요와 원하는 것에 적극 부응하려고 하는 기업가의 봉사기획이다. 기업가의 봉사기획에 재갈을 물리는 짓은 인류 번영에 장애물을 조성하는 짓이다.

이들은 또한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의 부등식을 근거로 재분배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바, 이들은 평등에 대해서도 오판하고 있다. 생존과 번영을 위해 민주주의와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은 일조일석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의 역사적 투쟁 기간이 있었다. 그때 앞선 투쟁의 성공을 유지하기 위한 일관성(consistency) 면에서 법 앞의 평등으로의 길이 열렸다.

대런 아제모울루(Daron Acemoglu)는 그의 책 ≪왜 어떤 국민은 실패하고 어떤 국민은 성공하는가?(Why Nations Fail?)≫에서 명예혁명 이후 영국의 소유권이 안정된 것은 국왕과 싸우는 과정에서 국회 쪽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empowerment)과, 이 동맹이 1215년 대헌장 때부터 1688 명예혁명 때까지 계속되었다는 점을 들고, 이 동맹을 일관되게(consistently) 가지고 가기 위해서 상위 귀족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에 대해서도 더 하위 신분을 가진 투자자의 청원(請願)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결함으로써 가능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소유권 안정이 산업혁명이 발생하게 된 근거의 하나로 작용했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볼 때, 법 앞의 평등은 사람들이 태생적으로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개념적으로 인정한 것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왕권 견제를 향한 투쟁의 일관성을 위해서 동맹자들 속에서의 권력의 자의적 행사도 제한하게 됨으로써 쟁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분제적 한계속에서나마 민주주의적 사상들(ideas)이 있었고, 그 후에 민주주의적 항거라는 사건들(events)이 뒤따랐으며, 여기에 신체 및 노동생산물에 대한 소유권 이론을 제시했던 존 로크(John Locke)를 필두로 한 학자들이 논리(logic)를 보태 자연법적 천부인권에 근거한 민주주의 사상체계(ideology)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역사를 참조하면, 평등주의자들이 경제적 평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장 민주주의에 맞지 않게 어떠한 권리가 침해되어 왔는가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부당하게도 권리침해가 있어왔다면 마땅히 구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디어(idea)만 있으면 누구나 기업가가 될 수 있는 시장민주주의 환경 속에서, 기업가의 아이디어의 성공에 근거한 기업의 자본 수익률이 경제성장률 혹은 소득성장률보다 높은 것이 누구의 권리를 침해한 것인가? 그렇다면 역으로 기업가의 실패로 인한 기업의 자본 수익률 하락은 그럼 누구의 권리를 신장시킨 것인가? 실상을 보면 자본수익률이 특정인의 시장 봉사 노력의 성과인데도, 과연 그 수익률에 부유세라는 약탈의 징벌을 내려야 하는가? 시장봉사자를 근거도 없이 약탈하는 징벌을 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박종운 시민연 연구위원, 미디어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