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감 기업 93.4% "3대 회계 규제 바뀔 필요 있다" 반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감사 실패 가능성·시간만 늘려"
상장협 "소수 분식회계 기업 잡으려다 정상 기업 피해"
정도진 교수 "시장 원리 따라 감사 계약토록 바뀌어야"
[미디어펜=박규빈 기자]#A사는 회사 자산 대부분에 대해 외부 평가를 받으라는 요구를 받았다. 회계법인에 준하는 수준으로 자산 평가를 하고 있어 감사 의견 상 차이가 없음에도 공신력이 필요하다며 과다하게 외부평가 요구를 해 불필요하고 과다한 비용 부담이 발생했다.

#B사는 지정 감사인이 고압적인 자세로 회사를 압박하는데 비해 현장에서 업무를 보는 회계사 수준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B사 관계자는 기업과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데도 무차별적으로 과도한 데이터만 요구하면서 자료가 왜 필요한지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 기업 회계 감사./일러스트=연합뉴스

회계 감사를 받는 기업 상당수가 외부 감사법(외감법)에 대해 염증을 느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회계 투명성을 높인다는 명분 하에 금융 당국이 상장 법인의 감사인을 정해주는 '감사인 지정제도'가 도입된지 3년이 지났지만 일선 기업들은 감사·회계 업무상 비효율적인 측면이 크게 늘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4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회계 감사 대상 기업 중 93.4%는 현행 외감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파악됐다.

2018년 11월 도입된 신 외감법은 크게 △외부 감사인 지정제도 △표준 감사 시간 제도 △내부 회계 관리 제도 등 3대 규제로 이뤄져 있다.

금융감독원 회계관리국은 "회사가 6년간 감사인을 자유로이 선임한 경우 이후 3년간은 증권선물위원회가 감사인을 선정하는 게 '감사인 지정제도'"라며 "감사인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감사 품질 개선을 위해 신 외감법이 개정돼 코넥스를 제외한 주권상장법인과 소유·경영 미분리 대형 비상장 주식회사에 대한 주기적 지정제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증선위 감리 결과에 따른 지정 조치·관리 종목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공정한 감사가 필요한 경우 감사인을 지정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김영식 한국공인회계사회장은 지난 1일 '신외부감사법 3년의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한 기자 간담회에서 "신 외감법 덕분에 한국 기업의 회계 투명성이 26단계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재계는 '빛 좋은 개살구'라며 당국과 회계사회의 이 같은 입장에 반발하고 있다. 3대 규제로 기업들의 부담은 늘었지만 실제 감사 품질의 제고가 이뤄졌는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회계법인 간 경쟁이 사라지고 질적 성장 없이 규모만 늘려 안정적인 수입원 확보에만 열을 올린다는 지적이다.

피감 기업 관계자들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는 초기 연도의 감사 실패 가능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감사 투입 시간이 늘어나 각종 비용만 더 내게 됐다고 하소연 한다.

   
▲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 도입 후 감사 시간·인건비 추이./자료=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제공

상장협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시간당 평균 7만4000원이던 감사 보수는 2019년 8만4000원, 올해에는 10만300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1개사당 평균 감사 보수 역시 2017년 1억2500만원에서 올해 2억8300만원으로 4년 만에 2.264배나 뛰었다.

이와 관련, 신 외감법 시행 이후 경제적 부담이 증가했다는 기업은 94.2%나 됐다.

상장협 관계자는 "분식회계 유인이 있는 소수의 기업을 감시·감독하기 위해 만든 장치로 인해 정상적인 회계 시스템을 갖추고 사업을 영위하는 대다수의 정상 기업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주기적 지정제의 사회적 편익과 비용에 대한 심층 실증 분석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감사인 선임에 개입하는 제도는 국내에만 존재한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2018년 존 킹먼 전 영국 재무부 제2차관은 외부 감사 감독 기관인 재무보고위원회(FRC)의 역할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통해 "감사인 임명은 이사회의 고유 권한"이라며 "감사는 복잡한 비즈니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요구되므로 적절한 감사인 임명을 공공기관이 이사회보다 더 잘 할 수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 존 킹먼 전 영국 재무부 제2차관./사진=영국 학사원 제공

2014년 미국에서는 기업 회계 개혁법 입법 당시 일정 기간마다 감사인을 의무적으로 교체토록 하는 제도 도입이 논의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업종 경험이 부족한 감사인이 감사를 맡을 경우 감사 효율이 저하되는 비용이 효익을 해칠 것을 우려해 제도 도입을 유보했다.

유렵연합(EU) 의회는 2014년 역내 증권 시장에 상장된 기업과 은행 등 금융 기관은 계약 형태에 따라 10~20년마다 감사인을 의무적으로 교체하도록 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미국과 EU 모두 회사로 하여금 의무적으로 감사인을 교체토록 해 정부가 지정하는 국내와는 차이를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에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감사인 지정을 받은 기업들이 정부와 유관 기관의 지원 정책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 정책을 체계화해 적시에 공표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아울러 지정 감사인의 지위를 이용한 부당 행위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부당 행위 발생 시 신속·엄중히 제재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재계 한 관계자는 "방안의 효과가 어느 정도 유효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도진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신 외감법에 의한 3대 규제는 회계 감사 품질을 높인다는 정당성을 갖고 생겨났으나, 목적의 정당성이 과정의 정당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며 "회계 투명성의 주체는 기업이 돼야 한다. 외부 감사에서 시장의 역할이 작동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장협 관계자도 "기업과 회계법인 간 시장 원리에 따른 자유로운 계약을 허용해야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한다"며 "피감 기업 특성에 맞는 감사인 선임으로 더욱 높아진 감사 품질과 회계 투명성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전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