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한 비밀 김영란법 적용땐 교사·출판사 퇴출 공교육 흔들
   
▲ 조형곤 21세기미래교육연합 대표

[미디어펜=김규태기자] 최근 초중고 학생들이 책값으로 출판사에 내는 금액의 절반 가까이가 교과서 채택을 위한 로비에 사용된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나왔다.

어린이집의 영유아 어린이가 보육교사에게 폭행을 당하는 뉴스, 리퍼트 미대사가 테러를 당하는 뉴스 등 3월에도 정치사회 이슈들이 연이어 터지는 시점이라 교과서 채택 로비 사건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초중고 교육의 중요함을 감안한다면 이는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특히 지난 3일 국회에서 가결 통과된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인 사립학교 교사에게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초중고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비리, 로비는 향후 주요한 문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로비나 청탁을 받은 대상은 학교 교사라는 점에서 상황의 심각성은 두드러진다.

미디어펜은 이에 대해 합리적 대안을 찾아보기 위해 조형곤 21세기미래교육연합 대표와 인터뷰했다.

조형곤 대표는 현행 교과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전교조 교육의 실상, 보육예산 공교육비, 도서관의 희망도서, 자사고 및 학교운영위원회 등의 교육 현안 문제를 집중 연구해온 교육 전문가다. 아래는 조형곤 대표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학생 수 1천명이 되는 고등학교에 거금 1천만 원의 국어교과서 채택 로비를 하는 것은 교과서는 그냥 줘도 나중에 교과서 값의 두 배에 이르는 참고서와 문제집 등을 팔면서 충분히 이익이 남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로 출판사와 교사간의 검은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교과서 채택 로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저는 2013년 가을, 전국의 고등학교를 방문하여 학교장을 만나고 또 학교운영위원장 협의회를 찾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좌편향 역사교과서를 배제하고 올바른 국가정체성을 담고 있는 교과서를 채택해 달라는 캠페인이었습니다. 그 때 출판사 관계자들도 일부 만나면서 검인정 교과서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큰 충격에 빠졌었는데 그게 요즘에서야 뉴스에 나오고 있네요. 국영수 교과서는 천만원의 거금을 학교에 줘야 채택이 된다는 거였습니다. 학생수가 1천명 있다고 가정하면 그냥 공짜로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출판사 입장에서 그럴 리가 없다는 저의 반박에 이런 답변이 날라 왔습니다. 교과서에서 한 푼도 안 남아도 참고서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으니 그렇게라도 한다는 거였습니다. 역사교과서나 미술 음악 교과서는 참고서가 없을 수도 있고, 있어도 소량만 팔리지만 국영수 주요과목은 참고서는 물론 문제집까지 판매되고 있어서 교과서 채택만 되면 교과서를 공짜로 줘도 남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교과서 로비의 근본 원인입니다."

-국정교과서를 검인정 교과서 제도로 변경하고 학교단위로 교과서를 채택하게 한 것이 이번에 터진 교과서 로비의 원인이란 말씀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검인정 교과서 제도는 잘만 운영하면 국정교과서 보다 훨씬 좋은 교재를 질 좋게 만들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세부적인 지침 마련이 안 되어 있고 학교 당국의 도덕적 해이가 이런 무책임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안이 있다는 얘기죠."

   
▲ 2014년 12월에 열린 <2014 자유경제원 교육대토론회- 흔들리는 교육,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조형곤 21세기미래교육연합 대표 

-비단 이번 한번이 아닌 고질적인 문제였다면 그간 이런 뉴스가 나오지 않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약회사가 처방전을 내리는 의사를 상대로 자기네 약을 써달라고 로비를 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교과서 채택 로비도 이번에 불거진 것이 아니라 검인정 교과서로 전환할 때부터 예고된 것이라 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이 되어 왔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게 범죄이기 때문에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 모두 철저히 함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학교운영위원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이를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운영위원장을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교육과정을 심의했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형식적인 심의가 아닌 교육과정 전반을 꼼꼼히 심의해 보았습니다. 그 때 교과서 심의를 안건으로 올리고 차기 운영위원회 할 때 점검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랬더니 학교가 비상이 걸린거죠. 지금까지는 교과서 심의를 형식적으로나마 했었는지 아니면 아예 심의 자체가 없었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운영위원장인 제가 심의를 한다고 하니까 교과별 교사회의가 소집되고 출판사별 교과서를 모아 놓고 교사별로 채점표를 만들어 채점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그 회의 결과만 본 것이죠. 이렇게 학교운영위원회가 교육과정 심의만 제대로 해도 이런 일은 사전에 막을 수 있습니다.

-그거야 형식적으로 심의자료를 만들어 제출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 자녀가 중학생이었기에 수학교과서를 자세히 들여다 볼수 있었습니다. 한 권의 책만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10여종의 책을 한꺼번에 놓고 단원별로 설명의 차이를 비교해 가면서 보니까 어떤 교과서가 좋은 교과서고 잘 만들어 졌는지 종이질은 어떤지 등 우열을 가릴수 있었습니다. 딱 봐도 알겠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볼 때 더 좋은 교과서를 놔두고 그 보다 못한 교과서를 선정한 경위를 꼼꼼히 따져물으니 학교 측에서 매우 곤란해 하더라구요. 다음에는 꼭 보완할 것을 주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후임 운영위원장이 이를 알고 계속 점검해 나간다면 그 학교는 좋은 교과서를 선정하게 될 것이고, 이게 관행적으로 되면 출판사는 로비가 아닌 좋은 교과서를 만드는데 집중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만으로는 로비의 유혹을 벗어나기 힘들겁니다. 누가 감시하는 사람이 없으니 눈만 질끔 감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학교운영위원이 교과서를 심의할 권한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습니까?

"초중등교육법 31조인가 32조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교육과정 심의 이렇게요. 문제는 법에 그렇게 쓰여 있으면 대통령령이나 규칙에 더 자세하게 교육과정 심의 항목을 삽입하고 교과서 선정의 과정을 운영위원회가 어떻게 어느 만큼 보고를 받고 심의를 해야 하는지 규정해 둬야 하는데 그렇게 까지는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교는 교육과정 심의를 대단히 형식적으로 하고 맙니다."

   
▲ 조형곤 21세기미래교육연합 대표가 2014년 7월 21일 자유경제원 주최로 열린 ‘교육개혁, 학교운영위원회에 답이 있다’ 교육쟁점 연속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어느 정도 하고 있습니까?

"1년 365일중 출석일수는 몇 일간, 급식일수는 몇 일간, 수학여행은 몇 일간 뭐 이런 정도요. 그게 교육과정 심의의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학교운영위원회가 교장의 거수기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 것입니다."

-학교운영위원이 교과서 심의까지 제대로 하려면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한데 그게 가능합니까?

"학교운영위원 10~13명 중에는 학부모가 6~7명, 교원이 3~5명, 지역위원이 2명 정도 됩니다. 학부모위원이나 지역위원 중에서만 전문적 식견을 가진 사람을 고르라면 없을 수도 있지만 소위원회를 꾸리면서 보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운영위원회 산하에 급식소위원회, 교복선정위원회, 졸업앨범소위원회를 꾸리는 것처럼 교과서심의 소위원회를 만들고 거기에 학부모 수백명 중에서 학원 원장이나 대학교수 과학자 등을 참여시키는 방법이 있는 거지요."

-교과서 심의를 강화하자는 취지인데 그것 말고 또 다른 대안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교과서 심의, 교복선정위, 졸업앨범심의위 등의 활동일지 혹은 회의록을 사전 정보공개 대상에 포함시켜 이를 학교별 홈페이지 등에 공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학부모는 물론 외부의 기자들이나 학부모단체 관계자들이 정보를 들여다보고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교과서를 선택했는지 아니면 좋은교과서를 놔두고 로비에 의해서 교과서를 채택했는지 그 과정을 예측해 볼 수 있게 됩니다."

-또 다른 대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부 차원에서 교과서 모니터단을 만드는 방법도 좋을 것입니다. 만약 학교별로 전문적 식견을 갖춘 소위원회를 갖출 형편도 못되고 그래서 사전정보공개가 큰 의미가 없는 열악한 지역의 학교들을 위해서 교육부에서 검인정 교과서 채택 모니터단을 운영해서 개별학교를 돕도록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조형곤 대표님은 교육계의 빅데이터로 불리는데, 혹시 관련 자료들을 모두 분석해 보신 경험이 있으신지요?

"전국 100여개 학교의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학교운영위원회 회의록 1년치를 분석해 본적이 있습니다. 1년에 5~6회 회의를 하니까 무려 5~600개의 회의록을 모두 본 거죠. 이를 엑셀로 옮겨 원안대로 채택할 확률 등을 연구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학교운영위원회는 거의 형식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학교운영위원회에 교과서 심의를 책임있게 해달라고 주문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데요?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시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학교운영위원 연수원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학교운영위원 연수 전문기관을 설립하고 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별도의 재원은 학교별로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정책 의지만 있으면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