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치 4~5%로 올해보다 강화
[미디어펜=백지현 기자] 문재인 정부의 사실상 마지막 금융 사령탑인 고승범 금융위원장의 취임 100일간의 행보는 '가계부채와의 전쟁'으로 요약된다. 1800조원을 넘어서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른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소방수'로 등판한 고 위원장은 내정되면서 곧바로 '가계부채 관리'를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핵심과제로 꼽아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했다.

다만 은행의 대출을 막아버리는 총량 규제로 인한 대출 시장의 혼란과 대출절벽에 내몰린 실수요자·취약계층들이 피해가 양산되는 등 현재 가계부채 관리 현황만을 보고 '합격점'을 얘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평가가 나온다.

   
▲ 고승범 금융위원장./사진=금융위원회


7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8월 31일 취임한 고위원장은 오는 8일 취임 100일을 맞이한다. 지난 8월 초 당시 내정자 신분이던 고 위원장은 "가계부채 관리는 금융위원장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면서 "가계부채 급증세를 잡기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며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가계부채 증가세는 고 위원장이 취임한 8월을 기점으로 점차 줄어들었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 7월 15조3000억원이던 전(全)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액은 8월 8조6000억원, 9월 7조8000억원, 10월 6조1000억원, 11월 5조9000억원 등으로 둔화됐다. 고 위원장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적극적인 가계부채 관리 노력 등에 힘입어 지난 8월부터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됐다"면서도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고 평가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된 가장 큰 배경엔 당국의 고강도 '대출 조이기'가 자리한다. 정부는 가계빚이 빠르게 늘자 지난 4월 연간 가계부채 증가율을 5~6%에 묶는 '가계대출 총량제'를 도입했다. 특히 고 위원장이 내정된 8월 이후로 당국은 은행권에 강도 높은 대출 조이기를 하달, 대출 총량 맞추기에 돌입했다. 당국의 압박에 은행들은 일부 대출상품을 중단하거나 한도 축소· 우대금리 폐지 등에 따른 대출금리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대출 문턱을 높였다.

일률적인 대출 총량 규제는 곧바로 실수요자 및 취약계층에 대한 피해를 양산했다. 특히 은행권 대출이 전방위적으로 막히면서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대출 규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강해지자, 당초 예고했던 전세대출 규제 강화 방침을 철회했다. 고 위원장은 "전세대출 증가로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치(5~6%) 달성이 어렵다 해도 이를 '한시적'으로 용인하겠다"고 했다. 내년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치는 4~5%로 올해보다 강화된다.

가계부채 급증세를 막기위해 고 위원장이 강력하게 추진한 일률적인 대출 총량 관리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조급함에서 나온 정책방안"으로 "적잖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정책"이라는 평가다. 신성환 금융연구원 원장은 "가계부채 총량규제는 가계부채를 증가를 억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면서도 "그러나 소득이 크게 늘지 않은 취약계층을 금융시장에서 가장 먼저 퇴출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제도권 금융권 대출이 막힌 취약계층의 경우 연평균 400%가 넘는 사금융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오 회장은 "가계대출은 집을 사기 위해 빌리는 경우도 있지만 생계자금이나 사업, 전월세 자금이 필요해 빌리는 경우도 많다"며 "무리한 총량규제는 서민들의 불법사채로 내몰 수 있고, 금융회사의 금융중개기능만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도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리는 실수요자들에 대한 보완조치가 이뤄져야 하는데 일률적으로 강화할 경우 피해자가 양산될 것"이라며 "양질의 일자리를 통해 소득을 만들어 갚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면서 대출 규제를 해야 하는데 무조건 수요를 억제하면 효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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