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합의 통한 노동시장개혁 백일몽…경제의 정치화 위험 수위
   
▲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오랜 종교적 수양을 쌓은 사람들조차 중요한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교황을 뽑을 때, 합의가 될 때까지 나올 수 없게 하는 등의 제약을 둔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우리경제의 앞날이 달린 중요한 문제인 노동시장 개혁문제를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각 계층을 대표하는 자들이 서로 양보를 해서 대타협에 이르는 방안을 만들겠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노사정위원회가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린 결론은 그런 대타협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2월 27일 통상임금·노동시간 단축·정년연장 등 3대 현안에 대한 공익 전문가 안이 나오자 이에 대해 한국노총은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에 맞춰져 있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민주노총도 마찬가지이다. 정부와 사용자들의 입장만 반영한 개악이라고 투쟁을 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익’을 뒤로 한 채 ‘공익’을 배려한 안들이 도출될 수 있는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사실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과 같은 노조나 그렇지 않은 민주노총의 경우, 이미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한 사람들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뿐 우리 경제의 앞날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부담이 줄어들 때 기업들이 신규인력을 채용할 수 있지만, 한국노총은 연공서열형 임금구조의 개혁에 반대하고 있다. 거기에다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방식에는 교황을 뽑을 때와 같은 제약장치가 전혀 없다. 이제 노사정위원회의 대타협을 통한 노동시장 개혁이란 꿈에서 깰 때가 되었다. 이런 대타협에 이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이것이 우리 경제를 살리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길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 시위하고 있는 노조. 사진은 칼럼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사진=연합뉴스 

노사정위원회의 소위 공익전문가들이 낸 의견조차 합리적으로 토론이 되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론’ ‘최저임금의 대폭적 인상’을 들고 나왔다. 한국은행이 1%대로 금리를 인하함에 따라 이런 정책이 기대하는 대로 물가가 상승한다면 실질임금은 조금 낮아지는 효과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임금을 올려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경제회복의 문제는 너무나 간단하다. 모든 기업들이 한꺼번에 임금을 인상하면 된다. 그러나 임금을 올려준 것보다 더 많이 재화들에 대한 소비 수요가 늘어나고 그 가운데 순이윤이 추가 지급된 임금만큼 되어야 비로소 기업들은 종전에 비해 손실을 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어렵다면 당연히 기업들은 종전보다 더 큰 손실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임금인상을 통해 유효수요를 창출하고 이것이 임금인상을 넘어서는 기업의 수익증대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 이런 정책은 실제로 대공황 때 시도됐으나 실패한 실험이다. 포드 자동차의 포드는 이 이론을 믿고 적극적으로 이를 실천했지만 실패했다. 임금을 더 올려준 포드 자동차보다 재정상황이 좋지 않던 기업들은 더 먼저 파산했다. 이미 취업한 노동자들은 복권에 당첨된 것으로 여겼고, 신규로 취업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포드 자동차의 재정상황은 더 어려워졌음에도 노동자들의 해고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포드 자동차에 비해 재정이 어려운데도 임금인상을 해줬던 기업들의 노동자들은 실업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Robert Murphy, Politically Incorrect Guide to the Great Depression and the New Deal)

사실, 임금인상, 근로시간 단축, 정년 연장,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더 쉽게 해줄수록 신규고용도 더 늘리기 쉽고 경제도 더 빨리 회복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꿈같은 일은 현실세계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노동시장이라고 해서 경제 원리의 작동에서 배제된 곳이 아니다. 한계가치생산물(marginal value product) 혹은 일반적인 용어로 한계 노동생산성이 높아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임금인상을 해줄수록 그 기업이 더 많은 이윤을 내면서 번창할 수는 없다. 모든 기업들이 임금을 인상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 노동시장, 임금인상, 비정규직 등을 거론하면서 유효수요를 논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사진=연합뉴스 

근로시간 단축도 다를 바 없다. 사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축적이 진행된 결과 노동의 한계생산성은 높아졌고, 이에 따라 노동자들도 예전에는 꿈꾸지 못했던 여가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계노동생산성은 높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근로시간만 단축한다면 그 결과는 당연히 고용의 감소, 혹은 신규고용의 감소로밖에는 나타날 수 없다. 이것이 엄연한 경제논리이다. 근로시간을 단축한 노동자들도 근로시간 단축은 환영하겠지만, 종전보다 임금을 더 적게 받고자 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기업들로서는 최소한 법정 근로시간 이외의 근로에 대해 임금을 더 주는 수밖에 없다.

수명의 연장에 따라 정년연장의 필요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정년에 이른 사람들의 임금은 평균적으로 초임의 3배가 넘는 상태라고 한다. 그 사람들이, 받는 임금만큼 회사의 수입 창출에 기여하고 있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그만큼 수입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면 기업들로서는 특별히 강제하지 않더라도 이들을 더 오래 고용하고자 할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더 오래 고용하기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론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초임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높은 임금으로 취업해서 빠르게 정년퇴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형적인 입직과 퇴직 구조는 현재의 수명구조나 자녀들의 양육과 결혼, 노후생활 등 인생 사이클(life cycle)과는 잘 맞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들로서도 임금체계와 정년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래서 임금이 일부 줄어들더라도 더 늦은 나이까지 일할 수 있는 것을 환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체계 부분에서의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정년만 연장하게 될 때 빚어질 사태는 분명하다.

   
▲ 대표적인 커피 프랜차이즈 기업, 스타벅스의 프로모션 행사 모습. /사진=스타벅스코리아 제공 

기업들로서는 신규 채용을 피할 수밖에 없고, 또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빨리 퇴직시키고자 하는 유인이 발생한다. 커피 값을 통제할 때, 커피의 양과 맛, 여타 서비스가 나빠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너도 나도 더 오래 높은 임금으로 더 늘어난 정년까지 근무하고자 하는 반면, 기업들은 이를 기피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기업으로부터 받게 될 눈에 보이지 않는 대접은 나빠질 것임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경기변동적인 요인에 의해 기업들의 동시다발적 실패가 일어나는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런 동시다발적 실패가 없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우에도 기업의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이와 함께 투자에 실패한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다시 더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원활하게 이동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이동이 원활해야 한번 직업을 잃는 것이 영원한 실직이 되지 않는다. 실직에 대한 공포가 없어야 노동운동도 극렬하거나 비이성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시장 유연화가 매우 필요하다. 노동시장 유연화란 바로 이런 인력의 이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노동시장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임금이나 고용조건 등에 불필요한 규제를 최대한 배제함으로써 지금 취업한 곳에서의 임금과 직업안정성을 극대화하기보다는 ‘고용가능성’을 최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이 과연 이런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고용가능성’을 최대화시키기보다는 소위 ‘사회안전망’이란 이름으로 고용되지 못했을 때의 위험을 줄이는 정도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런 ‘사회안전망’을 가동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은 하늘에서 만나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부분(기업)으로부터 과세를 해서 충당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그만큼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 여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정부가 경제개혁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는 결의에 많은 기대를 했던 사람으로서 현재 노동시장 개혁을 위해 노사정위가 운영되는 모습은 여러 가지 점에서 실망을 금치 못하게 한다. 정말 개혁을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노사정위를 통해 대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 소비자, 시장에 대해서 정책입안자들이 설계하는 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은 맹신에 불과하다. 이것과 노동시장이나 다를 바 없다. /사진=연합뉴스 

경제는 다수결로 결정할 때 더 잘 돌아갈 수 없는 영역이다. 예를 들어, 우유의 가격을 다수결로 정한다고 생각해보라. 소비자들은 매우 낮은 가격으로 우유가격을 정하려고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반값으로 우유를 사려고 한다고 해보자. 우유의 품귀현상이 빚어질 것임은 명백하다. 그런데 현재 노동시장 개혁에서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마치 노동시장에서는 노사정위의 정치적 합의를 통해 임금, 고용기간, 근로시간 등의 조건을 결정하더라도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처럼 가정하고 있다. 경제를 정치화시키면 경제는 더 어려워진다.

교황을 뽑을 때보다 합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노사정위가 어렵지만 필요한 합의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부터가 무리다. 이런 합의를 기대하기도 어렵고, 설사 주고받는 타협이 잘 이루어져 일종의 타협안이 나오더라도 그것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방향일 것인지는 알 수도 없다. 지금부터라도 가장 먼저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를 통한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단꿈에서부터 깨어나면 좋겠다.

차라리 정년연장이니, 근로시간 단축이니 이런 부분에 대해 법률을 만들어 통제하려고 하는 생각부터 버리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정년에 처한 다수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정년연장법이 없으면, 기업과 정년을 앞둔 근로자들 사이에 상생방안이 모색될 것이다. 정년연장을 법으로 정해놓고 나니, 이제 노조로서는 정년을 연장하게 된 사람들의 고임금을 지켜주는 것이 과제가 되고 말았다.

기업들로서는 임금부담을 덜기 위해 반드시 임금피크제 등의 도입을 통해 정년연장자들의 임금 인하를 관철해야만 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 놓고 노사정위원회의 대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통상임금의 범위도 왜 법률로 정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어떤 범위로 할지 노사 간 명확한 이해가 중요하고 그럴 때 분쟁은 발생하지 않는다.

대기업과 공기업의 정규직 노조의 양보를 통해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을 개선시키겠다는 것도 현실성이 부족하다. 우유를 헐값이 아니면 사지 않겠다고 하는 소비자들이 많을 때 이것을 제값을 받으려면, 소비자들의 양보로 되는 게 아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우유를 팔지 않으면, 결국 우유 값은 소비자들의 수요와 우유의 공급조건에 맞게 조정된다.

공기업과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이 실제로 그들의 한계생산성보다 높다면, 노사정위에서의 노조 양보를 통해 그들의 임금이나 근로조건이 낮아지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임금과 근로조건에 대한 규제들을 풀어주고, 근로자들과 기업들 양자 모두에게 임금과 고용조건에 대해 취사선택을 할 수 있게 해줄 때 비로소 그런 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방향으로의 개혁 자체를 시도하지 않은 채 노조의 양보를 언급하며 대타협을 기대하는 것으로는 결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도 고칠 수 없을 것이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이 글은 16일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개최한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위의 3대 현안 진단> 토론회에서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이 발표한 토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