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중심 화려함이 아니라 문화·콘텐츠 등 창조적 피괴 있어야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롯데는 힘이 세다.
3월 16일 문을 연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도 롯데의 힘이 엄청났다. 롯데그룹이 부산시 등과 함께 부산지역 벤처기업·영상·영화산업 지원 펀드에 총 23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을 뿐만 아니라 고용 창출 3만8000여명까지도 너끈히 약속했다.

부산을 문화와 최첨단 기술이 융합된 도시로 조성해 ‘창조경제 실크로드’를 주도함으로써 롯데그룹 소속으로 일하는 인력이 6000여명과 협력·관계사 인력 3만2000여명이 합류한다는 청사진이다. 롯데 창조경제 투자에는 영상·영화 특화펀드 총 400억원과 영상·영화 기획에는 세계 희귀·예술영화 2000여편을 제공하는 ‘영화 라이브러리’ 설치 등 항목들이 들어 차 벌써부터 부산은 물론 우리나라 전체 미디어 콘텐츠 산업 청년들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롯데의 막강한 힘은 잘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경험과 교훈을 좀 들춰내야만 하겠다. 롯데 미디어 비즈니스를 위한 쓴 소리다.

우선 롯데는 너무 쇼핑 중독이다. 롯데가 첫 개시한 미디어 사업인 롯데시네마는 현재도 회사명이 롯데쇼핑(주)롯데시네마사업본부로 되어 있다. 관객들이 알고 있는 롯데엔터테인먼트가 2004년 한국영화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양질의 콘텐츠를 공급하기 위해 설립되었지만 본 모습은 쇼핑 휘하에 딸려 있었던 셈이다. 11년 전 당시 롯데가 영화 사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일본 노무라 증권 등으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도 롯데의 힘이 엄청났다. 롯데그룹이 부산시 등과 함께 부산지역 벤처기업·영상·영화산업 지원 펀드에 총 23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을 뿐만 아니라 고용 창출 3만8000여명까지도 너끈히 약속했다. 사진은 부산창조경제혁신센테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YTN 캡처
거대 자본집약적 사업이고 기존 CJ CGV 같은 맹주가 있던 상황이어서 타당성에 관한 부정적 견해들이 꽤 많았음에도 롯데는 영화사업 다각화를 강행했었다. 본업인 쇼핑을 이롭게 한다는 신념이 굳건했기 때문에 내린 의사결정이었다. 롯데가 원하는 유통허브를 위해서는 핵심 요지에 큰 규모 부동산 개발이 필수였고 영화나 뮤지컬 관객이 백화점, 명품관, 면세점, 마트, 호텔 등 쇼핑 사업을 받쳐주는 엔터테인먼트 쇼핑몰 구도로 가야한다는 계산이었다.

이런 롯데의 소망은 적중했다. 대신 롯데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쇼핑을 위한 쇼핑에 의한 쇼핑의 악세세리 쯤으로 강등되어버렸다. 우선 영화 부문을 제작과 창조 없는 투자와 유통, 서비스로만 몰아갔다. 2015년 지금 언어로 되새겨 보면 창조경제 생산 없는 소비 중심 문화융성에만 기울어진 꼴이다.

영화 말고 뮤지컬에서도 이런 롯데의 소비 일색이 여실히 드러났다. 2006년 잠실 롯데가 우리나라 처음 뮤지컬 전용극장을 표방한 샤롯데 씨어터 개관작 <캣츠>를 골랐을 때가 꼭 그랬다. 일부 고급 관객들은 환호했고 창작 뮤지컬 하느라 기진맥진한 우리네 창조계급들은 실망했다.
 
더구나 <캣츠> 한국 직수입을 성사시킨 운영기획사가 일본 시키(四季)로 알려지면서 뭔가 문화 한류라는 영혼이 없는 롯데의 반쪽 미디어, 콘텐츠 사업에 대한 선입견이 굳어지곤 했다. 쇼핑 한류에 영혼을 팔아버린 문화 한류 가면무도회가 결국 생산 없는 소비 중심 의존형 엔터테인먼트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였다.

또한 롯데는 너무 구식이고 둔탁하다. 롯데에게는 여전히 동종 업계 최저 임금이라는 달갑지 않은 평판이 붙어 다닌다. 호텔도 백화점도 쇼핑도 경쟁 상황에서 늘 수위를 지켜왔다지만 정말 모순되게도 자린고비 구두쇠 이미지가 너무 짙게 배여 있다. “롯데백화점 롯데호텔 다닌다는 경력 하나에만 만족해라. 꾹 참다보면 전문가로 인정받아 스카우트 될 수 있으니까”라는 푸념이 조직에 창궐할 정도다.

이런 억눌린 분위기로는 방방 뛰어야 하는 미디어 사업을 해내기 어렵다. 창조는커녕 엔터테인먼트 트렌드 동조도 못할 판이다. 가장 가슴 아픈 결정판은 이번 롯데 주도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움을 튼 부산에 있다. 세계 최대의 노래방이라는 최고의 야구 응원 문화를 창출했지만 최고 푸대접이라 질타 받는 롯데 자이언츠를 보면 안다. 오죽하면 부산시민들이 시민 구단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나섰겠는지 생각해보면 롯데의 실력과 과제는 여실히 드러난다. 롯데와 부산 시민의 애증관계가 결코 예사롭지 않은데 부산국제영화제를 지렛대로 쓰는 이번 창조경제혁신센터라고 해서 특별할 것 같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롯데 기업문화가 극단적일 정도로 보수적인 것은 아주 치열했던 창업자 신격호회장 도전과 응전에서 기인했다. 그가 일본에서 껌 한통 한통씩 팔아 기업을 일군 장본인이었기에 잔돈 한 푼 허투루 쓸 수 없었다고 한다. 일본 롯데와 한국 롯데를 함께 키워야 했기에 빚잔치나 보너스 잔치 같은 낭비 풍조를 몰아내는 돌다리 경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그러다보니 적게 쓰고 효율은 크게 하는 짠물 경영으로 치우친 감도 분명 있었다.

이런 롯데가 이제 달라지려나 싶다. 혁신이든 재탄생이나 재창조든 지금 롯데는 애증의 골이 깊은 부산에서 이유야 어떻든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띄워 사회적 책임과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 발전을 확약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롯데가 짊어질 지게는 좀 더 화려하고 분방하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컬러여야 한다.

쇼핑 쇼윈도우에 전시한 화려함이 아니라 문화 산업, 콘텐츠 생산에서 뭔가 창조적 파괴를 일삼아야 할 때다. 중국 관광객들이 몰아주는 면세점 수입도 롯데가 추구하는 사회적 책임과 기업공유가치를 향해 실컷 퍼부어야 한다. 가령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통째로 ‘빌딩 라스베이거스’ 같은 신개념으로 바꿔 놓아야 롯데도 살고 한국 영화산업, 뮤지컬 산업도 한결 밝아질 수 있다.

창조 롯데를 맡은 신동빈회장이 아주 야무지게 1970년대 명멸한 미스 롯데 대회 초심을 되살렸으면 한다. 롯데가 원래 바랐던 비즈니스 세상이 바로 낭만이고 문화고 콘텐츠였음을 자랑삼아 펼쳐보였으면 좋겠다. 아버지 신격호 창업주가 일본에서 처음 만든 롯데껌 광고 카피 ‘입속의 연인’. 그 느낌 그대로만 살려도 롯데는 진짜 글로벌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메이저가 될 수 있을 텐데. 롯데 이름자체가 지닌 문학 감성을 되찾기만 해도...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