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탄생 100주년 맞는 '경영의 거장' ...혁신 기업가 창조적 파괴 선두
   
▲ 현대그룹 故정주영 회장(1915~2001)/사진=현대그룹 홈페이지

현대그룹의 창업자 故 정주영 회장은 “이봐 해봤어”라는 말로 유명하다. 현대조선을 만들 1972년 당시, 세계최대의 조선소를 짓겠다는 그의 말에 모두 “미쳤다”며 반대했다. 자신의 계획에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오면,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이봐 해봤어?”

이 말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정주영 회장이 서거할 당시 Time 지는 그를 “A Man Who Proved Many People Wrong”이라고 평했다. 한마디로 그는 다른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많은 것들을 해낸 사람이다.

사실 정주영 회장의 스토리는 해방 이후 한국경제발전사의 주요 궤적들과 겹친다. 현대그룹의 성장사는 곧 한국경제의 발전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최악의 조건에서도 박정희 대통령과 교호하며 완성한 경부고속도로, 거북선 일화로 유명한 조선사업, 미국 포드사의 조립생산업체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10여 개 자체모델을 생산하는 자동차 수출국으로 만든 자동차산업, 석유파동을 맞아 국가적 외환부족 사태에 직면하고 있을 때 중동진출을 감행해서 가뭄 속 단비 같은 달러를 벌어들인 건설사업 등, 우리경제 발전사의 중요 이정표들이 그의 작품이었다. 현대자동차, 현대조선(현대중공업), 현대건설은 이제 모두 한국의 간판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봐 해봤어』의 저자 박정웅은 정주영 회장에 대한 강연을 할 때 청중들은 그의 기업가정신의 비밀을 알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들은 “초등학교 학력, 그리고 가출소년으로, 부두노동자와 쌀가게에서 배달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가 어떻게 그런 도전정신, 통찰력, 번뜩이는 창의력으로 점철된 위대한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궁금해 했다. 그는 그저 하늘이 낸 인물이라고밖에 답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정주영 회장이 기업을 시작할 1961년 무렵 우리나라는 자본, 기술, 경험, 개척된 시장, 어느 하나도 갖춘 것이 없던 1인당 소득 80달러의 아프리카 가나 수준에 불과한 매우 빈곤한 국가였다. 교육수준도 30, 40대 인력 가운데 상당수가 한글을 해독하지 못할 정도로 낮았다.

이런 환경이었기에 그는 자본을 빌리러 해외를 전전했고, 천신만고 끝에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을 성취해 나갔다. 만약 지금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아프리카의 가나에서 어떤 사람이 나타나 세계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빌려 세계굴지의 기업들을 일구어내길 것이라고 누가 기대할 수 있을까? 박정웅의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불확실성을 부담하면서도 이윤기회에 기민했다

사실 정주영 회장은 많은 불확실성과 위험이 있기에 다른 사람들이 감히 엄두를 못 내고 전문가들도 불가능하다던 사업들에 뛰어들어 성공을 일궈냈다. 심지어 동생과 결별하면서까지 실행했던 중동진출 사업, 특히 20세기 최대 공사라고 했던 주베일 항만 공사와 조선 사업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를 통해 그는 '지나치게 비관함으로써 사업기회를 놓치는 오류’를 극복했다. 그가 해내 보이자 다른 기업가들도 그 뒤를 이었다.

불확실성을 감당하면서 무모해 보이는 사업들에 과감하게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의 기업가정신의 핵심을 '불확실성을 어깨 위에 짊어지고 간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피터 드러커 교수는 1977년 10월 한국을 방문해 정주영 회장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를 경영학의 태두라 불러주셨는데, … 과분한 말씀입니다. 오히려 정 회장님을 뵈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 오랜 식민지 피지배와, 2차 대전과 6·25라는 두 개의 큰 전쟁을 치르고, 극도의 빈곤과 열악한 성장 여건 하에서도 급성장한 독특한 모델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습니다.

또 이런 전후의 황무지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 경제를 선두에서 이끈 정주영 회장님과 같은 아주 독특하고 위대한 기업경영 사례에 대해서도 역시 연구하지 못했습니다. … 바로 정회장님이 발휘하신 기업가정신이 제가 주창하고 가르쳐온 핵심인데, 이를 실천한 가장 극적인 정 회장님 사례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경부고속도로, 중동진출, 현대조선 설립, 한국 최초의 독자 자동차모델 개발 등으로 국내외에 알려져 있던 때였다. 피터 드러커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정 회장님만큼 돈 벌 자신이 있었다면 아마 저도 경영학 교수 안 하고 바로 사업을 했을 겁니다. 아직 제가 경영학 교수에 머물고 있는 것은 막상 그럴 배포와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불확실성과 위험요소, 난관이라는 안개로 가리워진 먼 앞의 사업기회를 날카로운 예지력으로 간파해내고 이를 강력히 실천해내는 리더십과 결행력을 정 회장님은 이론 이전에 선천적으로 타고난 분입니다. 저는 한낱 이론가일 뿐이죠."

'남들이 볼 때’ 정주영 회장이 '엄청난 불확실성을 감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업기회에 대한 날카로운 예지력을 지닌 '그의 입장에서는’ 좋은 사업기회의 발견과 실천이 핵심일 수 있다. 그의 기업가정신을 불확실성의 감당과 도전정신으로만 분류해서는 그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봐 해봤어”란 말은 배짱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미리 안 된다고 단정해버리는 것 자체가 '잘못된’ 고정관념일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하는 편이 더 정확해 보인다.

우리는 많은 경우 몸소 실천하고 '해봐야' 비로소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책상에 앉아 있지 말고, 현장에 가서 직접 몸으로 부닥쳐봐야 우리는 특정한 시공간에서의 구체적 상황에 대한 정보, 즉 하이에크(Hayek)가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서의 지식(knowledge of particular time and place)이라고 부른 것을 얻을 수 있다.

정주영 회장은 한밤중에 조선소 현장에 갔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 했을 정도로 현장을 강조한 것으로도 유별났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봐 해봤어”는 불확실성의 감당보다는 오히려 지식과 정보의 측면에서 해석될 필요가 있다.

정주영 회장은 철저한 준비로 유명했다. 그는 오랜 비행에 따른 시차적응의 어려움을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 테니스와 같은 고된 육체적 운동을 지치도록 해서 비행기에 탑승해서는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비행기 사고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밤에 이륙하는 비행기 편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비행기에서 푹 자고 곧바로 일하기 위해 아침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선호했다.

그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산하는 사람이었다. 다음 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린 시절 소풍을 가기 전날 마음이 설레듯 마음을 설레며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정말 삶을 사랑하고 아낀 사람이 아니라면, 하기 어려운 말일 것이다.

시장에서의 경쟁 과정을 통해 길러지는 기업가정신

정주영 회장은 독일의 유치산업이론을 펼친 학자들보다 자유경쟁 시장의 힘을 더 잘 이해했던 것 같다. 유치산업이론은 한 산업이 유아기일 때에는 다 자라 성인이 될 때까지 국가가 해외의 경쟁으로부터 보호해주어야 경쟁력을 배양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그의 다음 이야기는 자유 시장 경제학의 대가 미제스(Mises)의 글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현대조선을 시작할 때 … 모든 사람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가운데 출발했습니다만 처음부터 세계를 상대로 자유경쟁을 했기 때문에 조선공업은 급진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자동차 산업은 그 역사가 조선보다 훨씬 오래지만 처음부터 정부의 행정주도로 허가제 아래서 경쟁을 억제하고 보호·육성되기 때문에 국내시장 위주로 이권화 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경쟁력이 거의 배양되어 있지 않습니다.

   
▲ 사진=현대그룹 홈페이지

어느 산업이고 자유경쟁 속에서만 질과 가격에 있어서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정부가 경쟁을 억제하고 기업을 보호·육성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생산업종이 이권화 되어서 결국 생산 활동의 진정한 발전을 저해하고, 그 결과 만성적인 독과점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 독과점 업체들은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시설과 기술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 질과 가격 면에서 국제경쟁력이 현저히 저하되고 결국은 그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게 됩니다."

국내시장의 보호를 통한 이권의 추구보다는 세계시장에서 진출해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려고 세계 굴지의 기업들과 경쟁할 때 이들보다 품질과 가격에서 더 나은 제품을 만들고자 배전의 노력을 하게 되므로 진정한 경쟁력이 길러진다.

이런 정주영 회장의 설명은 사실 오스트리아학파의 경쟁과정 이론이다.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온 그의 말은 경쟁과정이론에 대한 훌륭한 경험적 증언이 아닐 수 없다.

하이에크는 시장의 경쟁과정을 통해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 또 어떤 방법으로 만드는 게 경제적인지 발견되어 간다고 보았으며, 진정한 의미의 기업가정신은 바로 이런 경쟁과정에서 좋은 평판을 얻으려고 노력하면서 배양된다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위에서 인용한 정주영 회장도 똑같은 취지로 연설을 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필요를 읽는 눈

정주영 회장이 초창기 '아도자동차서비스’를 차려 자동차수리업을 할 때의 이야기이다. 당시 자동차는 부호들이나 타고 다니던 것이었다. 대개 다른 자동차수리업체들은 자동차수리를 맡기면 실제 필요한 시간에 비해 오래 맡겨두게 하고 그 기간에 비례해서 더 많은 수리비를 청구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동차를 가진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수리를 끝내고 빨리 타고 싶어 한다는 '소비자들의 필요(수요)’를 간파했다. 그는 남들과는 달리 더 빨리 수리해주고 더 많은 수리비를 받는 '전략’을 택해 성공한다. 그는 소비자필요를 보고 이를 곧바로 실천하는 기업가정신을 발휘한다.

정 회장이 소비자들의 필요를 정확히 간파해서 사업을 성공시킨 사례는 무수히 많다. 건설업을 하던 초창기 사례를 하나 더 들면 이렇다. 미군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주한미군에서는 전물장병들의 묘지 터에 잔디를 까는 공사를 발주했다. 겨울에 잔디를 구할 수 없어서 공사에 입찰을 못해 애를 태우고 있을 때, 정주영 회장은 의도를 읽었다.

주한미군은 미(美)대통령에게 전몰군인들의 묘지가 방치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그 공사를 발주했음을 간파했다. 그는 잔디 대신 겨울에도 구할 수 있는 보리밭 보리들을 전몰군인 묘지로 퍼와 이 공사를 해냈다.

전통 교과서경제학은 기업가정신을 '탐색이론'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기회의 탐색을 그 한계비용과 예상되는 한계수익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멈춘다. 정말 우리는 오로지 비용을 들이는 탐색을 통해서만 사업기회를 인지하는가?

아니다. 사실 기회를 탐색을 하려면 정확하게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엇을 모르는지 잘 모르는, 무지에 대해 무지한 경우도 많다. 사업 기회는 깨어있는 기민한 기업가들에게 우연치 않게 발견된다.

정주영 회장은 아이디어를 씨앗처럼 마음속에 품고 깨어있는 마음가짐으로, 현장을 살피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견학을 하게 되면 마음속에 품었던 아이디어가 자란다고 말했다. 깨어있는 자세로 있으면, 불현듯 사업 아이디어가 등장한다. 이것은 미리 탐색할 대상의 확률분포를 알아서 최적의 탐색비용과 기간을 결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자동차 수리를 하던 당시 정주영 회장은 전후 복구에 핵심적인 분야인 건설업이라는 전망이 있는 시장에 진출하게 된 계기도 이윤기회에 대한 기민성을 보여준다.

관청의 차를 수리하는 일을 맡은 정 회장은 월말에 결산을 위해 관청에 들르면서 자신이 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돈을 받아가는 건설업자들을 보고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장 현대건설을 시작한다. 그의 논리는 간단했다. “똑같이 죽을 만큼 노력하는데 그 사람들은 정말 자기와는 너무나 엄청나게 다른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다.”

정주영 회장이 자동차산업협회 조찬연설에서 당시의 사정으로는 왜 조선업보다는 자동차산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는지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그는 자동차 산업에서 자본력의 미국, 경쟁력을 지닌 일본, 소형차의 유럽이 있지만, 우수한 기능공을 가진 우리가 그 속에서 시장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정 회장은 결코 단순히 위험을 무릅쓰는 배짱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보에 민감한 기업가였다. 정주영 회장은 일본기업이 발주한 소양강 댐 공사의 하청을 맡고 있었는데, 사력댐으로 변경하도록 박정희 대통령을 설득했다. 그렇게 한 계기는 다른 나라에서의 사력댐에 대한 정보를 우연히 접하면서였다. 그는 정보를 얻고 곧바로 이를 응용해내는 데 매우 뛰어났다.

정보에 대한 정보

정주영 회장은 연설과 자서전 등에서 현대조선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차관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 어느 은행에 가서 어떤 식으로 말하면서 어떤 서류들을 제시하면, 어느 정도의 돈을 빌릴 수 있는지에 대해 족집게처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 그는 여기에서 그 사람이 가진 그런 유형의 정보가 사업에서 매우 중요함을 깨닫는다. 현대조선을 지었을 때 거래를 할 회사들을 미리 동원할 필요성도 배운다.

   
▲ 사진=현대그룹 홈페이지

직접 정보를 아는 것 못지않게 그런 정보를 지닌 사람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정주영 회장은 기초 정보를 직접 아는 게 제일 좋지만 그게 안 되면 그런 정보를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1984년 10월 15일 <자동차공업협동조합> 조찬회 연설문,“한국 자동차 산업의 현황과 전망”에도 정 회장이 정보에 대한 정보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그 연설에서 '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 잡으려면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외국인 기술자를 고용해야 한다.

그러나 반도체와 같은 “잘 모르는” 산업일 경우 그런 기술자의 고용은 십중팔구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성공적으로 기술자를 고르는 것도 그 산업을 잘 알아야 가능하다. 자동차 산업은 이런 점에서 그런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정보에 대한 정보란 그 분야에 정통한 기술(지식)을 가진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지식에 대한 지식: 정주영식 변용

사실 정보에 대한 정보 속에도 불확실성이 개재될 수 있다. 아래의 인용문에서 그는 “회사에서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덮어놓고 신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에 대해서도 일종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정주영 회장은 사람을 무턱대고 믿기보다는 그런 사람으로 길러내고자 했다. 그가 택한 방법은 사람들을 시장 경쟁의 현장에 내몰아 그 사람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켜서 믿을 만하도록 만들고 그 사람을 신뢰했던 것이다.

그는 혹독한 경쟁과정을 거쳐야 그리고 이것을 이겨내야 진정한 경쟁력이 생긴다고 본 것이다. 직원들도 그렇게 내몰아 믿고 맡길만하게 성장시켰다. 그에 의하면, 비바람을 맞고 자란 자연산 채소라야 비바람을 차단한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채소에서 나지 않는 향기와 맛을 풍긴다.

마찬가지로 그런 혹독한 경쟁을 이겨낸 사람은 벌써 얼굴이나 일하는 자세가 다르다. 믿을 만한 사람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기존의 이론에 더해, 정주영 회장은 그런 발견에도 개재된 불확실성을 '경쟁을 통한 발견적 절차'를 활용해서 극복하고자 했다. 이런 경쟁에 내모는 것을 통한 불확실성의 극복, 이는 매우 인상적인 방법이다.

"힘닿는 대로 현장을 직접 챙겼던 다른 이유는 직원들의 성장 때문입니다. 회사는 단순히 월급을 주는 곳이어서는 안 됩니다. 직원들을 성장시키고 발전시켜서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혹독한 시련과 경험 속에서 성장해왔고, 그랬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고, 시련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성공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나는 직원들도 혹독한 과정을 거쳐서 더욱 빠르게, 그리고 더욱 많이 발전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비록 마음에 상처를 입는 직원들도 많았으리라 짐작하지만 이를 무릅쓰고 확인하고, 점검하고, 독려하면서 훈련시킨 결과가 바로 현대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현대의 성공을 함께했던 중역들은 예외 없이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야단을 맞으면서 커온 사람들입니다.

회사에서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덮어놓고 신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은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을 키워내기 위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당장 저 사람을 믿고 못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저 사람을 훈련시키고 독려하면 믿을 수 있는 '진짜 일꾼’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정주영 경영을 말하다' 中)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라

정주영 회장은 관습적 사고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통해 유난히 많은 성공사례를 만들어내었다. 거의 독보적이라고 할 정도이다. 그런 점에서 정주영 회장은 불균형 가격에서 '이윤기회’를 민감하게 포착하는 가격중재자(price-arbitrager)형 기업가라기보다는, 가격과는 다른 차원에서 사업기회를 잘 포착하는 혁신가(innovator)형 기업가, 즉 슘페터가 말하는 창조적 파괴자이다.

개구리가 앞에서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있으면 혹시 뱀(손실)일 수 있으므로 일단 도망가는 규칙을 택할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개구리가 불확실성 아래 그런 규칙을 택하고 있을 때, 어떤 특별한 개구리는 앞에서 움직이는 것이 자신보다 큰지 확인하고 더 작으면 자기의 먹이인 파리(이윤)인지 확인하러 나가는 새로운 규칙을 택한다고 해보자. 그 개구리는 관습적 방식을 깨는 슘페터 형 기업가이다.

그의 전기는 이런 일화들로 가득하다. 정부 관료들을 비롯해서 모두가 반대한 조선업을 시작한 것이라든지, 모두가 조선소를 건설한 다음 배를 수주하러 다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 “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를 동시에 진행할 수 없는지” 의문을 품고 이를 동시에 진행한다든지 한 것들이 그런 사례들이다.

현대건설이 중동의 주베일 항만 공사에서 바다에 구조물 설치 공사를 하면서 그 구조물을 육지, 그것도 한국의 현대조선소에서 만든 다음, 이것들을 배로 실어와 바다 속에 설치하는 작업을 했던 것들도 이에 해당한다.

사실 과거의 관습적 사고에 얽매이면 새로운 기회가 보이지 않는다. 이에 얽매이지 않아야 새로운 방법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정주영 회장은 '관습의 속박’에서 아주 자유로웠던 특별한 기업가이다. 정주영 회장이 자주 인용하는 다음의 사례는 왜 관습적 사고에 얽매이면 특별한 아이디어가 아닌 평범한 것도 떠올리지 못하게 되는지 매우 시사적으로 보여준다.

"주베일 공사를 진행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콘크리트로 만드는 스타비트가 16만개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하루에 200개씩 800일이 걸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현장에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레미콘 트럭에서 직접 거푸집으로 콘크리트를 부어넣은 게 아니라 트랙에서 크레인 버킷으로 일단 콘크리트를 쏟아낸 다음에 이것을 다시 거푸집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두 단계면 될 일을 세 단계에 걸쳐서 하니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리는 것입니다. 왜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하느냐고 물으니, 레미콘 트럭의 배출구 높이와 거푸집 높이가 안 맞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고정관념입니다. 나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는 그들의 모습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레미콘 트럭의 배출구를 개조해서 높이를 거푸집에 맞추는 것은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레미콘 트럭은 완제품으로 나오는 것이니 아무도 개조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장 배출구를 개조하라고 불호령을 내렸고, 그 이후 스타비트 생산량이 200개에서 350개로 대폭 늘어났습니다.”('정주영 경영을 말하다' 中)

   
▲ 사진=현대그룹 홈페이지

그는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는 방법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꼭 하고 싶은 일, 꼭 해야만 하는 동기가 충만한 일을 하고 있다면, 누구든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기에 끊임없이 여기저기서 얻은 생각의 씨앗들을 키우고, 자주자주 생각하고, 또 많이 보고 듣는 자세를 견지할 것이기 때문에,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고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더 빨리’ '더 훌륭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습관적으로 '기민하게’ 암중모색하고 있었다. 일본 자동차업체에서 우리나라 정부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는 사실로부터도 자동차사업이 우리나라 사업가가 하더라도 충분히 사업성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빠르게 간파했다. 그는 정보에 민감한 '기민한’기업가였다.

공식교육은 자칫 고정관념의 포로가 되게 하고 현장을 경시할 위험이 있다. 정주영 회장에게 있어 기업가정신의 발휘에서 학력 자체는 중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공식적 학교 공부가 고정관념의 포로가 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정주영은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는 훨씬 더 이윤기회를 발견하는 기민한 기업가적 면모를 가지고 있다. 다만 기민한 기업가정신과 불확실성의 감당을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하고 있는 점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그는 실제로 실행해봄으로써 심지어 이윤을 얻지 못한 실패한 사업들로부터도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 사업에만 국한해보면 실패로 보일지 모르지만 좀 더 긴 시각으로 보면 실패가 아니라 실수에 불과하다.

그는 이런 한번의 실패가 다음의 여러 번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게 해주고 그 때보다 더 큰 규모로 실패할 가능성을 없앴다는 의미에서 작은 시련에 불과하며 다른 일을 할 때 좋은 자산이 된다고 보았다.

남들보다 더 훌륭하게 할 방법을 계속 궁리하는 사람은 마침내 그 방법, 즉 따라야 할 더 나은 '규칙’을 찾아낸다.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런 방법을 찾지 못한다. 그것이 정 회장의 지론이다.

그렇게 말한다는 사람이기에 스스로 끊임없이 그런 규칙을 탐색했을 것이다. 지나친 비관에 따른 오류에 갇히게 되면 조그만 손실을 보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결코 큰일을 이룰 수도 없다. 정주영 회장은 이 점을 깨닫고 있었다.

불확실성의 감당과 지나친 비관의 오류 극복

우리가 앞에서 정주영 회장을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슘페터형 기업가로 유형화했지만 똑 같은 정주영 회장의 행동을 두고 불확실성의 감당하는 기업가로 유형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명한 경제학자 나이트(Frank Knight)는 기업가를 '어깨 위에 불확실성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경영학의 대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기업 경영에 대해 박식하지만 직접 사업을 하지 않았던 것도 정주영 회장 같은 기업가적 자질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심지어 조선업을 권한 정부의 관료들조차 그렇게 큰 규모로 하는 것엔 '안 된다’고 부정적으로 보았을 때, 조선업을 그것도 세계최대 규모로 시작했다. 사업에서 고락을 함께 한 친동생과 결별하면서까지 중동건설 시장에 진출했고, 마침내 주베일 항만 공사를 성공시켜 막대한 오일달러를 벌어왔다.

아마도 정주영 회장의 입장에서는 이런 '위험한’ 사업도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면 보이는 사업기회였을 것이다. 정 회장은 평소에 자신은 결코 무모한 사람이 아니며 나름대로 매우 치밀한 계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들은 고정관념에서 보기 때문에 너무 무모하게 보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주영 회장의 트레이드마크인 “이봐 해봤어”는 단순히 두려워하지 말고 불확실성을 감당하면서 도전하라는 메시지라기보다는, 고정관념에 빠져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뜻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 정주영 회장은 '고정관념에 빠진’남들이 비관적으로 보고 시도하지 않는 사업들을 자신은 치밀한 계산 아래 감행했다.

그는 그런 사업들에서 실제로 성공을 보여줌으로써 남들도 지나친 비관을 벗어나 그 사업에 뛰어들게 해주었다. 오일 쇼크 후 오일달러가 넘치는 중동건설 현장에 가서 주베일 항만 공사계약을 성사시키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혁신적 방법으로 공사를 해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회장은 우리나라의 여타 건설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중동건설 시장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신용, 또 하나의 자본

정주영 회장은 신용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긴 것으로 유명하다. 가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소년은 더 빨리 배달하기 위해 자전거 타기를 밤에 연습하고 회계장부를 정리하고 곡물들을 분류해서 잘 쌓아놓는 등 쌀가게 주인의 신임을 얻는다. 그렇게 신용을 쌓았더니, 쌀가게 주인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정주영에게 쌀가게를 넘겨준다.

물론 아직 신용이 쌓이기 이전에는 사업에 동원할 수 있는 자본은 결국 자신의 노동력과 근검을 통해 축적한 저축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그는 근검하기로도 유명했다. 그러나 신용이 쌓이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자본도 자신의 저축을 훨씬 더 넘어설 수 있고, 심지어 돈이 없는데도 공사를 맡긴다.

그걸 보여준 것이 고령교 공사였다. 그는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도 그 공사를 계약대로 해냈다. 그는 이 공사로부터 장비의 중요성,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계약을 해야 한다는 사실 등을 배웠다고 했다.

결국 그는 친척들의 집까지 팔아가면서 고령교 공사를 손해를 무릅쓰고 마쳤다. 그런 신용을 쌓은 덕분에 자신의 현대건설이 후일 한강교 복구공사를 맡게 된다. 정주영 회장은 성공하는 데 자본이 없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신용을 쌓아놓지 못한 것을 두려워하라고 했다.

기업가정신의 핵심을 불확실성의 최종적 부담으로 보면, 자본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최종적 책임을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자본의 소유를 기업가정신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 물론 신용을 쌓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지 않으며 좋은 평판을 쌓아나가야 비로소 신용을 얻게 된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자본을 소유하지 않은 채 시작하더라도 기업가정신의 발휘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랜 시간을 들여쌓은 신용 자체가 일종의 자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신용을 쌓으면 은행에 가서 담보 없이도 빌릴 수 있다. 정주영 회장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은행에 가서 얼마나 빌려올 수 있소?”얼마나 사업을 잘 해 왔느냐, 다르게 말하면 얼마나 잘 살아 와서 어느 정도의 평판을 얻었느냐고 묻고 있다.

정주영 회장은 기업가정신의 발휘에 자본의 소유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이런 주장이 자본의 소유를 중시하는 기업가정신 이론과 상충하지 않는다고 본다. 자본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자신의 시간을 투입해서 평판을 쌓으면, 그 평판 자체가 일종의 자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이미 자본의 소유자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그는 실패하면 평판이라는 자본을 잃게 된다. 즉 잃을 게 있기 때문에 기업가로서 최종적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마치 미제스나 하이에크처럼 말한 정주영

지금까지 정주영 회장의 기업가정신을 살펴보았다. 그는 가끔 시장경제의 대가들인 오스트리아학파 미제스나 하이에크처럼 말하기도 하였다. 유치산업이론의 주창자들은 나중에 경쟁력을 가질 때까지 국내 산업을 해외경쟁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오스트리아학파는 기업가정신은 오직 시장에서의 실제 경쟁을 통해서 함양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주영 회장은 놀랍게도 정확하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정주영 저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정주영 회장은 연설과 자서전 등에서 현대조선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정보에 대한 정보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위험의 부담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으로 그려질 때가 많지만, 그는 단순히 배짱으로만 사업을 하는 사람은 물론 아니었다.

그는 정보와 지식의 중요성에 기민했고 치밀하게 계산할 줄 알았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특히 실제 행동을 해보지 않고서 선입견에 따라 사업의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그래서 그의 트레이드마크, “이봐, 해봤어”는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미리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고정관념의 포로가 되지 말라는 경고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정주영 회장은 슘페터가 말하는 혁신, 즉 관습적 사고에서 벗어남으로써 이윤기회를 발견하는 데 뛰어났다.

다른 사람들이 인습적 사고를 하고 있다면, 이를 돌파한 사람에게 엄청난 이윤기회가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기업가가 지나친 낙관을 하는 오류를 범하면, 이윤을 낼 수 없는 사업에 뛰어든다. 지나친 낙관을 하는 오류는 사후적 손실을 통해 오류였음이 밝혀진다. 반대로 지나친 비관을 하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 기업가들은 성공할 수 있었을 사업에 뛰어들지 않는다.

그럴 경우 장부상으로는 손실이 나타나지 않지만, 자원을 더 가치 있는 곳으로 이전시키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그 사업기회는 활용되지 않은 채 영원히 묻히게 된다.

정주영 회장은 대다수 사람들이 지나친 비관의 오류로 성공할 수 있음에도 뛰어들지 않고 오히려 적극 반대했던 사업들에 뛰어들어 성공을 일군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업 진출을 비롯해서 중동 주베일 항만 공사 등이 모두 그런 사업들이다.

그는 성공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이 지나친 비관의 오류였음을 드러냄으로써 이윤기회가 존재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산업의 발전에 정주영 회장이 남긴 족적이 크다는 것도 많은 산업들에서 그런 선도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시련은 있지만 실패는 없다”던 정주영 회장처럼 젊은이들이 인생의 모델로 삼고 그의 말과 행동들을 음미해 볼 수 있는 분이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