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보훈처가 중심 잡길

   
▲ 조우석 문화평론가
제주4.3에 이어 이번엔 5.18광주가 흔들리는가?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해 일어난 4.3사태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며 지난해 처음으로 정부주관 행사로 치러졌다. 그게 정부당국 스스로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한 결과라서 논란을 빚은 데 이어 이번엔 광주5.18을 둘러싸고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운동권 노래‘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몸살이다. 이 노래를 5·18 공식기념곡으로 지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를 둘러싼 분란인데, 모양새가 참 희한하다. 공식기념곡으로 지정해달라는 입장의 국회와, 지정은 곤란하다는 정부의 입장 차이로 평행선을 그어왔다.

벌써 몇 년 째 끌어왔던 이 사안이 다시 불거졌다. 당장 어제 17일 대통령-여야대표 3자 회동에서 문재인 새민련 대표가 이 노래를 공식기념곡으로 지정해줄 것을 건의했다. 대통령은 "보훈처와 논의해 잘 했으면 좋겠다"고 응답했다. 완곡한 거절이 분명하다.

박 대통령 "한마음으로 진행될 행사가 갈등 유발할 순 없다"

대통령은 "한마음으로 진행될 행사가 갈등을 유발할 순 없다"는 발언까지 했으니,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간 셈일까? 4월엔 시민단체 중심으로 공청회가 준비 중이라서 찬반 논쟁을 피할 수 없다. 이 와중에 기이한 건 국회다. 왜 그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이 노래를 공식기념곡으로 하자고 한 목소리를 낼까?

친노에 포박된 구조인 야당이야 그렇다고 해도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새누리당은 뭐란 말인가? 2년 전 국회는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기념곡 지정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결의안 표결 당시 재석의원 200명 중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13명이며, 찬성이 무려 158명이었다. 찬성표를 던진 사람에는 지금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인 김무성-유승민도 물론 포함된다.

17일 영수회담에 참석했던 김무성은 문재인의 공식기념곡 지정 건의에 "제가 5.18행사에 참석해 크게 부르겠다"고 불쑥 말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실은 대통령과 정부를 압박하는 건 국회의장도 마찬가지다.
정의화 의장은 "국회가 정한 결의문 진행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국회의장의 책무"라고 밝혔다. 지난해 6월, 취임 후 첫 일정으로 5·18묘지를 참배하면서 그렇게 태무심하게 말했다. 국회가 온통 호남 포퓰리즘에 편승하고, 턱없이 부풀려진 민주화의 가치를 추종하는 상황이다.

   
▲  17일 대통령-여야대표 3자 회동에서 문재인 새민련 대표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기념곡으로 지정해줄 것을 건의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임'이란 김일성을 지칭하고 있으며, '새 날'이란 사회주의적 변혁의 내일을 말한다. 이를 허용한다면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란걸 무능한 국회는 깨달아야 한다./사진=연합뉴스
이 와중에 돋보이는 건 보훈처다. 대통령의 발언으로 새삼 주목받게 된 보훈처는 뚝심이 대단하다. 그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기념곡 지정이 과연 헌법정신과 보훈정신에 맞는가를 따지고 있는 모양새인데, 그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 사실 애국가에도 법적 지위가 없다는 게 그들의 착안이다.

애국가는 국가 공식기념곡으로 지정이 안 된 게 현실이며, 다만 관습에 의해 불려지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운동권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에 국가기념곡의 지위 부여는 어불성설이라고 보는 것이다. 2년 전 국회 결의안은 권고사항일뿐이라면, 따져볼 걸 더 따져보자는 게 보훈처 입장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북한의 손에 때묻은 노래

보훈처는 무조건 반대 입장만도 아니다. 보훈처는 3년 전 5.18광주를 기리는 제3의 노래 작곡을 광주 쪽에 제안하는 합리적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런 태도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당시 시위현장에서 불려진 바 없다는 냉정한 인식 때문이다. 실제 이 곡이 5.18과 직접 관련이 없다.

시위 2년 뒤에 소설가 황석영이 노랫말을 만들고(백기완의 시 '묏비나리'를 개사(改詞)했음), 작곡가 김종률에 멜로디를 붙여 탄생했을 뿐이다. 이후 운동권 노래로 널리 불렸지만, 그렇다고 이 노래의 위치가 올라가는 건 아니다.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 때 이 노래가 5.18행사 때 주먹을 흔들며 합창을 하는 관행이 생겼다고 해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내건 박근혜 정부에서 통할 순 없다. 결정적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미 북한에 의해 '더렵혀진 노래', '때묻은 노래'가 됐다.

이 노래는 1991년부터 북한에서 제작한 5.18 선동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황석영-리춘구 공동 대본 작업)에 삽입됐다. 소설가 황석영은 밀입북한 뒤 그 시나리오를 썼으며,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것은 종북좌파 작곡가 윤이상이었다. 이 영화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삽입한 것도 그였는데, 이후 이 노래는 순수성을 잃었다.

이제 이 노래에서 말하는 '임'이란 김일성을 지칭하고 있으며, '새 날'이란 사회주의적 변혁의 내일을 말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2년 전 결의안 채택을 할 때 국회에서 이런 점을 지적한 의원은 없었다. 그게 하늘 아래 둘도 없이 무능한 국회의 현주소다. "5.18행사에 참석해 크게 부르겠다"고 말한 김무성 대표는 자신의 말이 왜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것인지를 깨닫길 바랄 뿐이다.

논의를 정리하자. 제주 4.3이 국가기념일 지정은 박 대통령의 대선 당시 선거 공약에서 출발했다. 유감천만한 일이었다. 희생자 추모는 당연하지만, 반대한민국 입장에서 폭동을 일으킨 주모자까지 추모하는 건 명백한 잘못이다. 이런 상황에서 5.18고지마저 민주화 세력에게 내준다?

이 역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으며, 국가의 명예가 걸린 일이 아닐 수 없다. 4월 공청회에서 애국세력은 물론 떼쓰기 식의 호남정서가 바뀌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무능한 국회, 뭘 모르는 국회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다.(참고로 제주4.3 국가기념일은 안전행정부가 주관한다. 때문에 보훈처와는 무관하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