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최상진 기자] 이야기를 듣자마자 ‘왜?’라는 서운함부터 들었다.

응답하라 시리즈 3탄이 2002년이 아닌 1988년으로 확정됐다. 많은 이들이 2002년과 1988년을 놓고 ‘2002년이 유리하지 않겠냐’고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최근 20여년 중 전 국민이 가장 뜨겁게 달아올랐던 2002년 대신 1988년을 선택한 것은 분명 의외다. 방송에 활용할 아이템 면에서도, 출연할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편의성에서도 2002년이 월등히 유리한 만큼 제작진의 선택은 마치 결연한 도전처럼 느껴진다.

   
▲ 사진=tvN

키워드로 본 2002년과 1988년... 누가 더 나은 아이템인가

2002년 하면 월드컵 4강 진출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당연지사. 삼성라이온즈의 첫 우승, 그것도 이승엽이 원점을 만들고 마해영이 끝낸 홈런 퍼레이드도 생생하다. SES, 신화, JTL 등 1세대 아이돌은 물론 이수영과 유리상자, 박정현의 발라드, 조수미의 ‘나가거든’, 혜성같이 나타난 싸이의 ‘챔피언’이 빅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드라마에서는 현재까지도 생명력을 지닌 ‘겨울연가’를 비롯해 남자들의 로망 ‘야인시대’가 등장했고, ‘천생연분’과 ‘쟁반노래방’ 등의 예능프로그램도 인기를 끌었다. 인터넷이 완전히 보급된 만큼 크레이지아케이드 등의 게임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채팅과 웹캠을 이용한 하두리 사진도 누구나 한번쯤 거치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이 외에도 256색, 16화음 휴대폰만 있으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짱이 될 수 있던 시기였다. 아침 등굣길은 떡볶이 코트의 행렬로 황제펭귄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드라마틱한 선거전 끝에 제16대 대통령으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 사진=tvN

1988년의 핵심 키워드는 ‘서울올림픽’이다. 화려한 외형과는 다르게 대학가에서는 연일 화염병이 불을 뿜었고, 공포의 대상 백골단이 학생들을 거침없이 잡아가던 시절이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던 지강헌의 탈주극이 생중계됐고, ‘영웅본색’ 등의 느와르 영화와 주윤발, 장국영 등 홍콩 배우들이 큰 인기를 얻었다.

가요계에서도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와 이선희 ‘나항상 그대를’을 비롯해 소방차, 김완선, 박남정, 유재하, 김현식, 김광석 등이 주옥같은 노래를 쏟아냈다. 그리고 ‘마왕’ 신해철이 소속된 무한궤도가 ‘그대에게’로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TV에서는 ‘사랑이 꽃피는 나무’를 통해 최재성, 이미연, 최수종, 손창민, 최수지 등 청춘스타들이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어린이들은 평일 ‘하나둘셋’과 ‘뽀뽀뽀’가 반겨주고, 일요일 아침 8시에는 ‘디즈니 만화동산’이 반겨주던 시절이었다. 초대형 방송사고 ‘내 귀에 도청장치’ 사건도 그해 8월의 일이다. 그리고 3당 합당의 바람을 타고 제13대 대통령으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됐다.

   
▲ '응답하라 1997' 스틸 / 사진=tvN

왜 2002년이 아니라 1988년인가

1990년대와 2000년대는 느낌이 다르다. 마치 Y2K 이전과 이후로 시대가 나뉜 것처럼 느껴진다. 2000년대는 추억보다 기억에 가깝다. 휴대폰도, 인터넷도 있고 오늘 당장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이 여전히 활동하던 시기다. 추억을 소재로 삼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포맷에는 보다 옛 추억인 1988년이 알맞다는 판단이다.

또하나 염두해야 할 점은 2002년과 1997년의 차이다. 인터넷과 휴대폰이 급속하게 보급되면서 우리의 생활상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이를 두고 ‘혁신’이라 표현하기는 어렵다. HOT와 젝스키스가 해체됐으나 1세대 아이돌과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여전했던 것처럼 큰 틀에서 봤을 때 일상에서의 변화는 1990년대보다 적었다.

제작진이 1988년을 선택한 데에는 시청연령대의 확장에도 목적이 있다. 1997년과 1994년 10대 후반에서 20대를 보낸 이들은 지금의 20대 후반에서 30대 중·후반까지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10대들에게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보다 젊은 세대보다는 중년층을 타깃으로 삼는 것이 시청률 상승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 아닐까.

   
▲ 사진=tvN

신원호PD는 언론 인터뷰에서 “응답하라1988은 ‘한지붕 세가족’과 같은 분위기의 드라마다. 모습도 성격도 다른 여러 가족들의 사연을 통해 이전 시리즈에서도 늘 추구했던 사람 냄새, 인간미를 좀 더 적극적으로 다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지붕 세가족’은 1986년부터 1994년까지 매주 일요일 방송된 국민드라마로, 중년 시청자를 솔깃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관건은 캐스팅이다. 쉽지 않을 듯 하다. 1997년과 1994년을 기억하는 젊은 배우들은 많지만 198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연령대가 크게 상승한다. 배우 대부분이 ‘겪어보지 않은 시대’를 구현해야 한다. 시청자는 직접 겪었으나 배우들은 겪지 않은 시대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싱크로율’이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해야 하는건 배우들에게 뜻하지 않은 고충일 수도 있다.

‘응답하라 1997’은 서인국과 정은지에게 배우라는 타이틀을 선사했다. ‘응답하라 1994’가 유명과 무명, 아이돌을 떠나 모든 배우들을 스타로 성장시켰다. 덕분에 ‘응답하라 1988’ 캐스팅에는 아이돌부터 주연급 배우 할 것 없이 몰릴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과연 제2의 쓰레기는, 칠봉이는, 삼천포는, 해태는 누가 될지 또 이들이 다시 한 번 케이블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을지 기대하며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