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살아나와 지금의 어수선한 한국사회를 본다면 어떨까?
   
▲ 조우석 문화평론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19세기 중반 틀이 잡혀가던 서구 민주주의를 향해 “대중들의 천박한 취향”이라고 조롱하길 즐겼다. 초인(超人)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그가 볼 때 민주주의란 너절했다. 평준화의 흐름과 함께 인간이 왜소해지고 있는데, 그게 민주주의 때문이라고 봤다. 대표작 <선악의 저편>에서 니체가 펼쳤던 도도한 민주주의 비판이 좀 얼떨떨하시다고?

우리 모두는 민주주의가 지고지선이라고 배워왔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 어쨌거나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는 달랐다. 서양의 지성사(知性史) 전체를 허물려고 했던 게 니체였고, 원인제공자 신(神)을 살해하지 않았던가.

그런 니체가 살아나와 지금의 어수선한 한국사회를 본다면 어떨까? 좌파가 끼어들어 장난 치고, 눈먼 대중이 박수를 치는 한국 천민민주주의의 너절함 아니 아찔함을 두고 혀를 찰 것이다. 니체 얘기는 여기까지다.

오늘은 개헌(改憲) 얘기를 해야 하는데, 한국의 천민민주주의는 개헌야합세력이란 괴물로 진화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사회 전체를 말아먹을 수도 있다는 경고가 이 글이다.

천민민주주의가 시한폭탄으로 등장한 위험천만한 국면인데, 지난 1년 정치권의 큰 흐름도 이쪽이다. 권력 나눠먹기에 눈이 먼 여의도 정치판이 개헌을 무기로 내년 4월 총선까지 청와대를 공격하고, 대통령을 흔들어대는 모습을 당신은 앞으로 줄창 보게 될 것이다.

개헌 대 호헌, 결판을 앞둔 향후 1년

그래서 결판을 앞둔 향후 1년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한국현대정치사에서 가장 뜨거운 시기로 떠오를 것도 분명한데, 전체 상황을 점검해보자. 개헌 논의의 진원지는 국회다. 그쪽에는 개헌을 노린 정치 선수 혹은 '꾼'들이 숨을 고르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 새민련 우유근 원내대표 등 여야를 막론한 저들의 속생각을 시범 삼아 보여준 게 2월 말 국회 대정부질문이었다.

그날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가 국회 첫 '데뷔전’을 치렀는데, 여야에서는 친이· 친노의 좌장격인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과 이해찬 새민련 의원이 각각 첫 주자로 나섰다. 놀랍게도 그들은 개헌을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이 총리가 “올해는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를 가늠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을 입에 달고 다니는 대표주자 이재오 의원은 마이동풍이었다.

“지방분권을 위해서도 개헌 논의에 착수해야 하며,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굳세게 그는 주장했다. 이해찬 의원 또한 개헌을 펼쳤는데, 대통령 중임제와 책임총리제를 제안했다. 김무성? 그는 지난해 말 오스트리아 식 이원집정제 구상을 밝혀 정치권을 뒤집어놨던 인물이다. 대통령· 총리가 외치· 내치를 분담하는 구조의 개헌론이 그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에게 사과했지만, 소신은 여전하다.

그 말고도 국회엔 내각제에 가까운 이원집정제 지지론자가 꽤 있다. 이미 저들은 개헌 발의(發議)요건도 갖췄는데, 그게 지난해 구성된 초당적 구성의 개헌추진국회의원모임이다. 이 모임엔 재적의원의 과반인 154명이 참여한 상태다. 빠른 시일 내 개헌안을 확정해 국민투표에 부칠 만반의 태세를 갖췄는데, 지난해 말 당시 개헌모임의 야당 간사 우유근은 이렇게 말했다. 개헌세력의 문제의식이 모두 담겨있으니 유심히 읽어보길 것을 권한다.

   
▲ 앞으로 1년이 고비이고, 한국정치의 최대 분수령이다. /사진=연합뉴스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다수결에 의한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하고 협의민주주의 형태인 분권형 또는 내각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 이제는 87년 체제의 종언을 고해야 한다."

승자독식 아웃? 제왕적 대통령제 아웃? 내각제 오케이? 87년 체제 아웃? 이 짧은 말에 개헌야합세력의 키워드가 모두 들어있다. 이중 87년 체제란 1987년 개헌과 함께 '대통령 직선제+5년 단임제’를 합의한 것을 일컫는데, 그걸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현행 대통령제가 승자독식이며, 제왕적이니 모두 폐기하자는 제안이다. 글쎄다. 이렇듯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그게 문제인데, 대통령은 바로 레임덕에 들어간다.

박근혜 대통령은 눈뜨고 코 베일 수도

박 대통령은 눈 뜨고 코를 베이는 격인데, 믿었던 여당 지도부까지 대통령 권력을 탈취하는 막장 드라마에 올인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입장에선 경제도 경제이지만, 자기 자리가 흔들리고 있는 초미의 상황이다.

그렇다고 논의 자체를 막을 순 없다. 대통령제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 그것도 허물어질 수 있다. 한 여론조사는 대통령 4년 중임제 지지가 35.9%이고, 이원집정제는 17.9%, 의원내각제가 6.5%라고 하지만,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 개헌야합세력이 장난치고, 선동언론과 천민민주주의가 날뛰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여기에 좌파 지식인들이 개헌을 극구 찬성하는 구조도 찜찜하다. 최근 나온 책 중 개헌의 밑그림을 담은 최태욱 한림대학원대학교 교수의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말하다>(책세상)를 나는 주목한다.

부제가 '시장의 우위에 서는 정치를 위하여'인데, 책 뒤에 보면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에서 안철수(새민련 의원), 최장집(고려대 명예교수), 천정배(전 법무장관)까지 그럴싸한 추천의 말을 보냈다. 전에 없던 일인데, 원희룡 제주지사는 "미래의 정치설계 전략서를 보는 듯하다"는 덕담을 건넸다.

즉 철부지 좌파 교수의 위험한 설계도이지만, 우습게보면 안 된다. 그가 볼 때 현행 영국 미국 식의 다수제 민주주의는 쇠락하고 있고, 유럽식의 합의제 민주주의가 대세다. 다수제 민주주의의 문제는 승자독식이라서 대립과 갈등이 상존한다. 그게 우유근의 말과 일치한다는 걸 유념하시길 바란다. 반면 합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정치세력 간의 상호 의존이 불가피하며 포용의 정치가 자리 잡는다는 게 최태욱의 주장이다.

이런 말에 숨은 속뜻은 뭘까? 지금의 절차적 민주주의 따위란 당장 걷어치우자는 얘기다. 좌파가 그토록 원해왔던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의 내일을 앞당겨 이른바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게 중요하다.

그걸 위한 획기적 변화의 큰 그림이 개헌이다. 놀랍게도 최태욱이 말하는 개헌엔 권력구조 개편은 물론 양당제 혁파도 포함된다. 기득권을 강화할 뿐인 양당제를 소수세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구조인 다당제로 모두 바꿔야 한다고 저들은 힘줘 말한다.

   
▲ 박근혜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결국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좌파의 정치-경제적 헤게모니 구축을 위한 무서운 음모의 청사진이다. 중요한 건 좌파가 이렇게 바람을 잡고 있으며, 그 위에서 개헌야합세력의 본산인 대한민국 국회가 지금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게 썩 기분 나쁘다.

국회, 저들은 무능과 부패의 대명사인데, 헌법기관으로서의 정체성까지 상실해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수호하지 못해왔다. 그런 집단이 첫 여성 대통령을 상대로 개헌야합으로 뭉치다니 수상쩍지 않은가? 개헌 어쩌고의 논리란 어쩌면 권력탈취를 포장하는 논리다.

그렇다고 저들에게 욕만 할 순 없다. 권력 나눠먹기에 정신없는 개헌야합세력에 비해 호헌(護憲)애국세력은 너무 세가 약하다. 청와대는 제대로 된 대응에 매번 실패해왔다. 다시 말하지만, 앞으로 1년이 고비이고, 한국정치의 최대 분수령이다.

오늘 이글에서 나는 문제제기만 했다. 다만 천민민주주의가 '개헌 막장 드라마'로 변질되고 있는 위험천만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걸 직시하길 바란다. 그래저래 나는 요즘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이 글은 자유경제원 홈페이지(www.cfe.org) '세상일침' 게시판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