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산은, 부산으로 이전" 李 "수도권 공공기관 모두 지방이전"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제20대 대선이 49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야 대선후보가 일제히 '국책은행 지방이전'을 공약하며 '지역표심 잡기'에 나서고 있다.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 서울에 포진한 금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해 불균형을 바로잡겠다는 것인데, 현실을 망각한 무책임한 공약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19일 국회와 금융권에 따르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지난 15일 부산 선대위 결의대회에서 가덕도 신공항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공언하며, KDB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후보는 "부산이 세계 최고의 해양 도시로 또 첨단 도시로 발돋움하려면 금융 자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저는 KDB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이전시키겠다"고 말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이후 윤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외자를 도입해 재벌 그룹이 클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했던 산업은행의 기능도 많이 변화했다"며 국회를 설득해 한국산업은행법을 개정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산은 본점을 여의도에서 부산으로 이전하겠다는 것.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수도권에 포진한 모든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공언한 상태다. 이 후보는 지난해 11월 19일 "수도권에 남아있는 공기업, 공공기관 200여곳을 지방으로 다 옮기려고 한다"고 밝혔다. 

지난 15일 강원도 민심 탐방에 나선 자리에서는 "똑같은 투자로 약간의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지역 균형발전이라고 하는 게 장기적으로 대국적으로 보면 큰 효용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공공기관들을 지방으로 이전해서 균형을 이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로 반드시 실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후보의 공약대로라면, 금융권에선 산은, 한국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등이 이전 대상에 포함된다. 실제 이 후보는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경기남부권에 위치한 공공기관들을 미개발지역인 동북부지역으로 이전시킨 바 있다.

여야 후보의 공약 남발에 금융노조도 성명서를 내고 비판에 나섰다. 금융노조는 "심도 있는 고민 없이 정치적 기반 확보만을 위한 공약(空約) 남발은 논리도 신뢰도 모두 잃을 뿐"이라며 "여야 정치권은 국책은행 지방이전은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잘못된 정책으로 인정하고 국민 기만을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산은의 지방이전을 공약한 윤 후보를 타깃해 비판수위를 높였다. 금융노조는 "산업은행은 중소·중견기업에 저금리로 대출하고, 구조조정 중인 기업과 벤처기업 등에 매년 수십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하는데, 이 과정에서 매년 조 단위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손실은 자본시장 업무와 해외 금융기관과의 거래, 계열 대기업 대출 등에서 발생하는 이익으로 주로 충당한다"며 "손실은 지방에서 주로 그리고 이익은 서울에서 주로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산은이 서울 등 수도권에서 확보한 잉여자금을 지방에 재분배해 수도권과 지방 간 금융격차를 해소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덧붙여 "직원이 많지 않은 산업은행의 지방 이전의 지역경제 기여효과는 타 지역 소재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 상승이라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손실을 초래하고 만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국책은행이 수도권을 떠나 지방으로 이전하면 주 수익원인 수도권을 배제하게 돼 오히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재원마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지방이전에 나선 금융공기관의 업무 비효율성도 국책은행 지방이전을 우려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대표적으로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지난 2015년 6월 전주로 이전한 후 '관외지역 출장' 등으로 인한 업무 비효율성이 최대 문제로 꼽혔다. 

김순례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018년 10월에 밝힌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전주 이전 후 기금운용본부의 출장 건수가 10배 이상 늘었다. 기금운용본부는 당시 기준 634조원을 운용하는 공단의 핵심부서인데, 연간 출장건수가 3611건에 달했다. 주말 제외시 일평균 14회의 출장을 갔다는 계산이 나온다. 

당시 김 의원은 "전 국민의 노후자금인 연기금을 관리해야 하는 사람들이 정작 도로위에서 시간을 다보내고 있는 꼴"이라며 "올해 기금운용본부의 수익률이 0.9%(사실상 마이너스)인 것은 이런 업무 비효율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금융노조는 "국책은행마저 지방으로 이전한다면 이는 각 기관의 경쟁력 상실을 넘어 전체 대한민국 금융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며 "아직 동아시아의 금융중심지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내적 금융 경쟁력을 더 약화시켜 어쩌겠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한편 국책은행 지방이전은 여야 정치권이 합의 후 법개정을 통해 추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은 산은법 4조 1항에, 수은은 수은법 3조1항에, 기은은 중소기업은행법 4조1항에 각각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법을 개정해 해당 조항을 소거하면 지방이전이 가능해진다. 관련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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