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펜=김진호 부사장
들은 이야기입니다. Q는 개발사업이 한창인 R시(市) 인허가부서 과장입니다. 그는 공무원 직제상 최하위인 '9급 서기보'부터 시작해 30년 가까운 공직생활 끝에 감격스러운 '5급 사무관(事務官)'이 됐습니다. 고등고시 행정고시로 변명한 5급 임용시험에 합격, 20대 나이에 사무관 명함을 들고 다니는 '성골 공무원'들은 맛보지 못할 쾌감에 전율합니다. 

속칭 '다다까이(たたかい)'로 불리는 바닥부터 시작해 관(官)을 달기까지 인생역정은 파란만장합니다. 더욱이 많은 동료들이 6급인 팀장 계장 주무관으로 퇴직하는 것을 보아 온 터라 5급 임용장을 받았을 당시 정말 꿈과 같았습니다. 

승진 턱을 내는 자리에서 아직도 6급인 동기로부터 "이제 학생부군신위는 면했네"하는 시기어린 부러움도 샀습니다.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는 제사 때 쓰는 지방인데 여기서 학생(學生)은 고인의 지위를 나타냅니다. 고인이 별다른 벼슬 없이 평생 배우며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Q과장은 이제 학생부군신위가 아닌 사무관(事務官)부군신위가 됐습니다. 
>
과장이 되고나니 엄청난 변화를 체감합니다. 급여체계가 달라지고 각종 수당이 뒤따르며 무엇보다 주변의 시선이 고와집니다. 또 인허가 부서인 만큼 많은 '기업 관계자'를 상대케 되는데 카운터 파트너의 직급이 올라가고 만나는 장소가 달라집니다. 무엇보다 부서업무를 총괄하면서 '결정권'을 행사하고 국장을 건너뛰고 시장을 독대할 기회도 생깁니다.

인허가 부서인 만큼 시장의 의견을 반영할 사안들이 빈번해지고 시장과 저녁식사를 하는 등 사적 만남도 늘어납니다. 때론 시장이 자신의 업무와 상관없는 시정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자신의 말이 다음날 시행되는 짜릿함도 맛봅니다. 이제는 타부서 과장이나 국장도 자신의 눈치를 보고 시청 내에서는 '시장의 측근'으로 소문이 납니다. Q과장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하고 이제 '국장(局長) 자리'가 손이 잡힐 듯 다가옵니다.
>
승승장구하던 Q과장이 어느 날, 시장에게 혼쭐이 났습니다. 공개된 회의에서 소소한 자료부실을 이유로 모욕에 가까운 과도한 질책을 받고나니 머릿속이 하얗습니다. 자기 자리로 돌아와 "왜 일까?"를 자문하지만 막상 떠오르는 실수가 없습니다. 이 때 전화가 걸려옵니다. 어제 인허가가 불가하다고 돌려보낸 건설사 A임원입니다. 

은근한 목소리로 지연 학연 등으로 얽힌 시장과의 친분을 과시합니다. 그리고 오늘 회의석상에서 있었던 일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자신을 위로합니다. A임원과 전화를 끊자마자 시장실에서 부릅니다. 시장은 부동자세로 서있는 Q과장에게 온화한 목소리로 소파에 앉을 것을 권합니다. 시장은 따뜻한 녹차를 내놓고 회의 때 있었던 질책이 심했다고 사과하며 격무를 위무합니다. 이어 시장실을 나가는 Q과장의 뒤통수에다 A임원이 자신의 학교 후배라는 소리가 꽂힙니다.

Q과장이 자신의 부서 핵심인 계장들과 회의를 합니다. 어제 만난 A임원의 민원을 풀기 위한 묘책을 찾기 위한 겁니다. 결론은 예외규정을 적용하기로 합니다. 일반적인 규정으로는 진행이 어려워 평소 인용하지 않던 예외규정으로 A임원의 민원을 해결하고 이를 통보합니다.

   
▲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간 정책경쟁은 사라지고 유례없는 비방전이 난무하고 있다. 한 표의 소중함이 절실해 지는 시점이다. /사진=연합뉴스

다음날 회의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갑자기 시장의 칭찬이 쏟아지고 곧 모범공무원 표창이 주어집니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차기 국장후보라는 소문이 돌며 시장의 측근자리를 회복합니다. 이제 Q과장은 알아서 시장의 주변을 챙깁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선거로 선출된 시장의 권한은 무소불위입니다. 

시장이 하고자하는 사업이나 민원은 난관이 있어도 대부분 성취됩니다. 이 과정을 옆에서 지켜 본 Q과장이기에 시장의 뜻을 살펴 능수능란하게 일을 처리합니다. 건수가 많아서 기억하기 힘들어지자 시장이 지시내지는 암묵적 영향력을 행사한 위험한 사안은 혹시 몰라서 별도의 USB에 보관합니다. 

사업이 거듭되면서 시장의 무리한 지시에 자신의 사적 이익을 살포시 포개봅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제 Q과장은 업계에서 '힘있는' 과장으로 추앙받고 자신의 라인도 생겼습니다. 시장의 지시에 묻어가는 사업이 대부분이라 탈이 날 염려도 없어 보입니다.

큰 일이 났습니다. 검찰에서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한다며 자신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뿐 아니라 부서 전체를 훑어갔습니다. Q과장은 자신의 핸드폰마저 임의제출 형식으로 빼앗겼습니다. 그 안에 각종 자료와 전화번호, SNS문자가 고스란히 담겨있는데 정말 큰일입니다.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시장실도 압수수색을 당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자신만 긴급체포 됐습니다. 다행히 자신이 비밀리 간직한 USB는 자신만 아는 곳에 안전하게 보관 중입니다. 검찰은 Q과장의 범죄보다 시장의 일탈행위에 관심이 많습니다. Q과장은 수사를 받던 중 시장의 비리를 제보하면 자신의 죄가 어느 정도 탕감될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자신이 보관 중이던 USB만 제출하면 시장의 일탈을 입증하기 문제가 없기에 깊은 고민이 빠집니다. 그즈음 R시 고문변호사가 Q과장을 면담합니다. 시장의 후배이기도 한 고문변호사는 수사로 인해 멘탈이 붕괴될 위기인 Q과장을 위로하고 법률적 조언뿐 아니라 시장의 우려와 공무원 사회의 분위기까지 전해줍니다. 고문변호사가 돌아간 후 Q과장은 시장을 보호해야 자신이 후일을 도모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Q과장은 1심 2심 3심까지 법정다툼 끝내고 지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3심까지 8개월간 구치소에 머물었던 터라 최종선고 후 2개월 만에 만기 출소합니다. 그 사이 시장은 재선됐습니다. 시장 역시 USB의 존재를 알기에 Q과장에게 부채의식이 있습니다.

Q과장이 출소하자마자 시장의 위로전화가 있었고 함께 근무했던 공무원들 역시 문자를 보내옵니다. 무엇보다 R시에 근거지를 둔 건설회사에서 Q과장에게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은 시장의 응보라고 확신합니다. Q과장은 자신은 비리공무원이 아니라 민의에 의해 선출된 시장에게 충성을 하다가 억울하게 희생양이 됐다고 자위합니다.

들은 이야기입니다. 관습적이고 구조적인 모순이 지방에 옹이박고 자치라는 아름드리나무를 위태롭게 합니다. /미디어펜=김진호 부사장
[미디어펜=편집국]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