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리더십·효율주의·포퓰리즘 척결이 성공의 세 박자

   
▲ 조우석 문화평론가
23일 서거한 아시아의 거인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전 총리에 관해 하룻새 적지 않은 기사가 쏟아졌다. 일본을 제치고 1인당 국민소득이 5만6000달러인 부유한 강소국(强小國) 싱가포르에 대한 찬탄, 이걸 만든 위대한 설계자인 고인의 리더십도 한껏 조명됐다.

한 국내신문은 사설을 통해 "리콴유의 장점을 갖춘 지도자를 한국인은 간절히 기다린다"고 했다. 하지만 뭔가가 허전하다. 결정적인 게 빠진 탓인데, 왜 오늘의 한국사회가 함께 음미해볼 리콴유 정치철학을 제대로 짚어낸 보도는 드문가?

그걸 놓치는 게 우리언론과 지식사회의 구조적 한계라는 게 나의 판단인데, 리콴유 정치철학의 요체를 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첫째 결단력있는 리더십, 둘째 효율 제일주의 시스템, 셋째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요인인 포퓰리즘과의 결별이 그것이다.

'결단의 리더십, 효율주의, 포퓰리즘 결별'이란 성공의 세 박자

판단 근거는 고인의 육성이 고스란히 담긴 저술 몇 종이다. <리콴유 자서전>(문학사상, 2001년)과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문학사상, 2001년). 여기에 미국 기자 톰 플레이트와 나눴던 만년의 대화록 <리콴유와의 대화>(RHK, 3013년)도 참조했는데, 한결같이 강조되는 게 결단의 리더십이다.

생전의 리콴유는 “결단력 있는 지도자가 없으면 효과적으로 국정을 이끌 수 없다”고 강조했다. 말레이시아연방에서 분리독립한 가난한 어촌 도시 싱가포르를 어엿한 현대국가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대전략으로 리콴유는 국가관리형의 자본주의를 도입했는데, 리더십은 그걸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왼쪽). 박정희 대통령(오른쪽)
그래서 리콴유는 마키아벨리스트로 분류되지만, 개의할 그가 아니다. 그도 국민의 사랑과 인기를 원했지만, 정치적 결단을 포기하는 물렁뼈 타입의 바보 정치인은 아니었다. 그래서 1979년 방한 때 청와대 만찬에서 리콴유의 명연설은 박정희 리더십에 대한 상찬(賞讚)이자, 평소의 자기 소신이었다.

“어떤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관심과 정력을 언론과 여론조사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데 소모합니다. 다른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정력을 오직 일하는데만 집중하고 평가는 역사에 맡깁니다. 각하께서 눈앞의 현실에만 집착하는 분이셨다면 오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결단력있는 리더십을 구현할까? 리콴유 정치철학의 두 번째 인 효율 지상주의 시스템, 그리고 세 번째인 포퓰리즘과의 결별이 그걸 가능하게 한다. 리콴유가 입이 닳도록 강조했던 건 최고의 성과, 바로 그것이다.

그걸 위해 엘리트 시스템을 도입했고, 결정적으로 허울 좋은 평등주의 철학 따위를 모조리 내다 버렸다. 리콴유는 말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믿는 것은 명백한 허위의식이거나, 최악의 경우 사악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실로 경이로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리콴유의 명언“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건 사악한 속임수의 말"

중남미에서 남유럽에 이르기까지, 아니 지난 수십년 한국도 정치지도자에서 대중에 이르기까지 평등주의라는 주술(呪術)에 사로 잡혀있지 않은가? 그래서 범용(凡庸)함과 하향평준화가 대세이고,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지 않을까? 경제가 바닥을 기는 것도 평등주의의 저주 탓인데, 우린 그걸 모른 채 살고있지 않던가? 다음은 톰 플레이트의 설명이다.

“리콴유에 따르면 (싱가포르 식) 성과주의 시스템은 구성원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모든 이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반면) 엘리트 체제를 배제한 민주주의 시스템이란 겨우 평범함에만 주목한다. 반면 솔직하고 용감무쌍한 엘리트들, 즉 현대의 왕자들은 거침없이 진실을 말하고, 그에 따라 움직인다.”

리콴유가 서구식 민주주의를 경멸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실제로 그는 “작금의 민주주의가 최고의 정치시스템이며, 이를 능가할 제도는 없다는 (서구의) 주장은 절대 진리일 수 없다.”고 똑 부러지게 지적했다.
그가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운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고,“비효율적 민주주의는 우민정치와 포퓰리즘을 정당화한다.”고 경고했던 것도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그런데 흥미롭지 않은가? 리콴유의 정치철학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 아닌가? 맞다. 그건 한강의 기적을 만든 박정희의 정치철학이다. 즉 박정희가 원조이고, 그걸 배운 게 리콴유였다.

대기업과 재벌을 앞세운 박정희 식 경제개발 전략은 기계적 평등주의 따위를 무시하는 데서 출발했다. 그래서 저번의 글에서 지적한대로 박정희-리콴유의 통치철학의 유사성은 아시아적 개발전략으로 새롭게 규명되어야 옳다.

   
▲ 2006년 5월 20일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와 면담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불평등의 철학' 전하는 좌승희경제학을 음미해볼 때

또 하나, 리콴유의 정치철학은 한강의 기적의 핵심원리를 '불평등의 경제철학'이라고 설명한 좌승희 박사 경제학과 너무도 닮았다. 리콴유의 서거는 그 점을 곱씹게 하는 계기인데, 두어 달 전 이 지면에서 좌승희경제학을 설명하면서 필자는 말했다.

"경제적 차등, 즉 차별화를 인정하지 않고서 경제발전 자체가 불가능하며, 경제의 역동성이란 것 자체가 없다. 우리가 소망하는 기업가 정신도 나올 수 없다. 시장이란 것도 경제적 차등을 만들어냄으로써 동기를 부여하는 효율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장(場)에 다름 아니다. 좌승희 경제학은 불평등-차별화-차이를 경제발전과 경제행위의 핵심 매커니즘이자, 경제학의 일반이론의 차원으로 끌어 올린다."

박정희-리콴유-좌승희, 이 이름 셋은 내 머리 속에는 하나다. 그리고 리콴유 식의 결단의 리더십, 효율 제일주의, 포퓰리즘과의 결별은 한 덩어리다. 혹시 당신이, 이 땅의 정치인들과 일부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가 효율적일지 몰라도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리콴유 정치철학의 의미를 한 번 되생각해보길 권유한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