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빅딜, 무산 가능성 희박해" HMM 지분 30~35% 단계적 매각 시사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이 유럽연합(EU)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된 가운데, 대우조선의 채권단인 산업은행이 EU의 결정에 작심 비판하며 유감을 표명했다. 

양사 기업결합을 카자흐스탄·싱가포르·중국 경쟁당국이 무조건부로 승인한 것과 달리 EU가 철저히 '자국 이기주의'에 따라 반대했다는 지적이다. 대우조선을 흡수하려 한 현대중공업그룹이 '불승인 취소소송'을 고려해야 한다는 평가다.

   
▲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27일 신년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산업은행 제공


이동걸 산은 회장은 27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EU의 기업결합이 불허된 상태에서 조선업 재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새로운 주인찾기는 대우조선을 위해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며 "우선적으로 산은은 채권단의 추가 지원 없이 대우조선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체질개선 및 경쟁력제고를 위한 경영컨설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EU의 결정을 '자국 이기주의'에 기반한 결정이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EU 경쟁당국은 지난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형 LNG선 건조시장에서의 시장지배적 위치 점유 △EU 선주 및 에너지 소비자에 대한 가격 인상 등을 이유로 양사 합병을 불허했다. 

영국 조선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 포함)과 대우조선의 글로벌 LNG선 수주잔고는 12일 현재 68척(점유율 40.2%) 28척(16.6%)을 각각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삼성중공업의 수주잔고 45척(26.6%)을 더하면 국내 조선 빅3가 80%에 조금 못 미치는 점유율을 가지는 셈이다.

다만 최근 친환경 에너지로 LNG 수요가 폭증하면서, LNG운반선 선가는 크게 오르고 있다. 특히 해당 선종의 수요자는 대부분 유럽계다. EU의 결정이 노골적인 반대로 비춰지는 대목이다.

이 회장은 불승인통보에 불복한 현대중공업그룹이 취소소송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이 회장은 "소송의 승소여부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조선)산업이 EU의 결정에 끌려가지 않아야 한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소송을 할 필요성은 있다고 본다"며 "그 과정에서 저희가 대우조선의 현황을 파악하고 미래를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양사 합병이 애초에 독과점을 불러 일으켜 무리한 '빅딜'을 추진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양사가 세계 조선시장에서 1·2위를 다투는 점에서 독과점 논란에 자유롭지 못하지만, 각국 경쟁당국이 기업 인수합병(M&A)을 단순 시장 점유율로만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중국과 일본 등 다수의 경쟁업체가 존재하고, 중국과 싱가포르 경쟁당국이 무조건부로 빅딜을 승인한 점에서 문제가 없었다는 판단이다. 

다만 국내 조선 빅3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점에 대해서는 크게 비판했다. 빅3는 우수한 LNG선 건조기술로 세계 시장에서 대규모 수주에 성공했다. 하지만 선박을 건조하는 기술만 갖췄을 뿐, 척당 5%에 달하는 로열티를 프랑스 GTT사에 원천기술 이용료로 지불하고 있다. 조선소의 영업이익률이 1~2%에 불과한 점도 이 때문으로 지목된다. 이 회장은 이를 '붕어빵 찍어내기' '빛 좋은 개살구'로 표현하며, 국내 조선업계에 과당경쟁을 지양하고, 특화 전략을 펼쳐줄 것을 주문했다. 

이 회장은 "우리 조선산업은 쉽게 얘기하면 붕어빵 산업이다. 똑같은 영업을 하고, 특화된 차이가 없어 3사가 전면적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며 "3사가 서로 경쟁하니 뱃값이 10~20% 싸지더라. (LNG선 수요자인) EU의 소비자들, 선주들, 당국은 저가경쟁에 따른 낮은 선가를 감안할 때 그런 기조(저가수주)를 유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LNG선은 환상이다. 한 척을 수주하면 (조선사의) 영업이익이 1~2%에 불과하고, (최근) 강재값까지 올라서 (조선사가) 굉장한 적자를 보고 있다. 빛 좋은 개살구다"라며 "이론적인 얘기지만, 빅2(현대중공업-대우조선)로 안 된다면, 3사의 캐파(건조능력)를 10%씩 줄여서 과잉경쟁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EU가 철저한 '자국 이기주의'에 기반해 국내 조선사의 통합으로 빚어질 건조단가 인상을 막고, LNG선을 저가로 건조하려는 속셈이라는 시각이다. 여기에 국내 조선사는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수주경쟁에 매몰됐고, 유럽 선주들에게 저가로 선박을 건조해줬다는 판단이다.    

나아가 이 회장은 조선업계의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수익성이 없는 선박을 수주하는 조선소에게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을 중단하겠다는 극단적 처방까지 내놨다. 

이 회장은 3사가 동일한 사업 포트폴리오로 선가의 20~30%를 덤핑하는 세태를 지적하며 "(3사가) 공멸하는 전략으로 갈지, 특화전략으로 갈지 고민해야 하는데 걱정이다"면서 "(산은은) 앞으로 정책당국과 협의해야 겠지만 RG를 언급할 때 수익성이 90% 이상 아닌 것은 발급해주지 않는 게 어떨지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선업 특성상 원가율의 90%, 나아가 100%를 넘는 적자사업까지 RG발급을 해줘 혈세로 해외 선주만 좋은 일을 시켜준다는 것.

조선빅딜 무산으로 촉발된 항공빅딜 무산 우려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이다. 이 회장은 "조선과 항공 건은 명확한 차이가 있다. 항공은 90% 고객이 한국이다"며 "한국 고객에 주안점이 있는 시장이고, 대형 항공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어 EU가 이 부분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위와 외교부도 범정부차원에서 제발 도와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국적 원양선사 HMM의 경영 정상화에 대해서는 단계적 지분매각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HMM은 산은과 해양진흥공사의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다. 양 기관이 발행한 영구채를 주식으로 모두 전환하면 공적기관 지분이 70%에 육박해 사실상 민영화 작업이 어렵게 된다. 이를 위해 30~35%에 달하는 물량을 단계적으로 매각해 민영화를 이끈다는 구상이다. 

이 회장은 "시장 여건들을 감안해서 원활한 M&A에 필요한 만큼 초과하는 부분은 중간에 단계적으로 매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며 "(지분이) 70%라면 30~35%는 단계적으로 매각하고 35%는 남겨놔야 할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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