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방민준의 골프세상(50)-LPGA 시즌 6연승 싹쓸이 케리 웹도 루이스도 감탄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거칠 것 없는 태극낭자들의 질주에 LPGA의 베테랑들이 떨고 있다. 조용한 연못에 메기가 나타나면서 걱정 없이 유영을 즐기던 물고기들이 긴장하는 정도가 아니라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위기감에 빠졌다.

지난 23일 막을 내린 LPGA투어의 미국 본토 첫 경기 JTBC 파운더스컵 대회에서 김효주(20)가 우승컵을 들어 올린 직후 LPGA 통산 41승의 베테랑 캐리 웹(40·호주)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코멘트는 LPGA투어에서의 태극낭자들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효주는 절대적으로 게임을 지배했다. 지난 해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은 결코 요행이 아니었다."

지난해 JTBC 파운더스컵 우승자로서 타이틀 방어에 나선 캐리 웹은 최종라운드 직전 우승의 향방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홈 코스의 스테이시 루이스(30)보다는 김효주의 우세를 점쳤다.

지난 해 메이저 대회 에비앙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에서 리드를 해나가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김효주의 과감한 버디퍼트로 뼈아픈 역전패를 당한 기억이 새로운 캐리 웹은 나이는 어리지만 시종여일한 스윙과 흔들림 없는 정신력을 옆에서 체험했기에 김효주의 우세를 점쳤고 예상대로 김효주는 스테이시 루이스와 한 타 차이 박빙의 승부를 벌이다 마지막 홀에서의 거침없는 버디 퍼트로 단숨에 타수를 3타 차이로 벌이며 JTBC 파운더스컵을 들어 올렸다.

캐리 웹의 경탄은 김효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여러 차례 리디아 고(18)와 라운드 할 기회를 가졌던 웹은 “그녀는 도저히 십대의 소녀가 할 수 없는 플레이를 펼친다. 불가사의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고 피력한 바 있다. 캐리 웹은 호주 교포인 이민지(19)와 오수현(18)에 대해서도 비슷한 코멘트를 하며 ‘호주 골프의 미래’라고 예언했었다.

   
▲ 지난 23일 막을 내린 LPGA투어의 JTBC 파운더스컵 대회에서 김효주(20)가 우승컵을 들어 올린 직후 캐리 웹(40·호주)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효주는 절대적으로 게임을 지배했다. 지난 해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은 결코 요행이 아니었다."고 극찬했다. 이는 김효주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올시즌 LPGA 개막전부터 6연승으로 싹쓸이를 한국태극낭자들에 대한 놀라움이기도 하다./삽화=방민준  
태극낭자들에 대한 이 같은 경탄은 캐리 웹만의 시각이 아니다. 지난 해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캐리 웹이 경험한 것과 비슷한 패배를 JTBC 파운더스컵 마지막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당한 스테이시 루이스의 태극낭자들에 대한 공포증은 각별하다.

올 시즌 네 번이나 톱10에 들며 우승에 근접했던 루이스는 태극낭자들에 막혀 세 번의 우승 기회를 놓쳤다.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선 박인비, 리디아 고와 한 조로 마지막 라운드에 나서 결국 3위에 만족해야 했다. 혼다 LPGA타일랜드에선 양희영과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였지만 후반에 스스로 무너졌고 이번에도 김효주와 한조를 이뤄 우승 사냥에 나섰지만 미륵불처럼 흔들림 없는 김효주를 넘는데 실패했다.

그 전에도 많은 대회에서 태극낭자들과 각축전을 벌이다 패배한 경험이 있는 루이스는 박인비(26) 유소연(24) 최나연(27) 신지애(26) 등에 대해 “그들은 마치 무생물(lifeless things) 같다. 어떻게 감정의 격랑에 휘둘리지 않는지 알 수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었다. 이번에도 루이스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김효주는 흔들리지 않았다. 특히 후반 들어 자신의 플레이를 이어나갔다"며 김효주를 높이 평가했다.

루이스로 말하면 누가 뭐래도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선수다. 척추에 철심을 박고도 각고의 의지로 핸디캡을 극복하고 2013년 이 대회에서 대회 최저타 기록(23언더파)으로 우승하면서 청야니(26.대만)를 끌어내리고 세계랭킹 1위에 올랐었다.

이번 대회 마지막 라운드 직전 루이스는 ‘열 살 아래인 한국선수들과 경기하니 내가 좀 늙은 기분이 든다. 그들은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경험은 부족하다. 그 것이 내 장점이 됐으면 좋겠다.”며 우승 의지를 보였으나 결국 ’태극낭자 공포증(Korean Girl Phobia)’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다.

백전노장 캐리 웹이나 미국의 대표선수 스테이시 루이스가 이런 상황이니 여타 미국선수들이 태극낭자들에 대해 갖고 있는 공포감이 어느 정도일까는 쉬이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공포감은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이번 대회 결과만 놓고 봐도 톱10에 김효주 이일희 이미향 김세영 최나연 리디아 고 등 6명이나 들었고 중상위권에도 태극낭자들이 탄탄하게 포진했다. 세계랭킹을 말해주는 롤렉스 랭킹을 봐도 리디아 고 1위, 박인비 2위, 김효주 4위, 유소연 6위, 미셸 위 8위, 양희영 10위 등에 6명이 올라 사실상 태극낭자들의 전성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랭킹 상위에는 들지 않았지만 이미림 이일희 장하나 김세영 백규정 등 언제라도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 올 자질을 갖춘 태극낭자들이 즐비해 미국이나 그 밖의 나라 선수들이 체감하는 태극낭자 공포증은 예사가 아닐 것이다.

오죽 했으면 박인비에게 ‘침묵의 살인자(Silent Assassin)’, 유소연에게 ‘저격수(Sniper)’, 리이다 고에게 ‘천재소녀(Genius Girl)’ '신기록 제조기(New Record Maker)', 김효주에게 ‘수퍼(Super Rookie)’ 같은 범상치 않은 별명이 따라다니겠는가.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