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직 재정비해 COO 이수근 부사장에 안전 업무 일임
건설업계, '1호 처벌 대상' 회피 차원 시행 당일 조기 연휴 시작
전삼현 교수 "책임 한계 X…결국 CSO 감독자 CEO 처벌 이어져"
[미디어펜=박규빈 기자]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재계가 안전 담당자를 임영하고, 관련 조직을 신설하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법이 사고 발생 시 책임의 한계선을 정해두지 않아 결국 최고 안전 담당자의 상사인 대표이사까지 처벌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지난 27일부터 시행된 개정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재계가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신설하는 등 각종 준비를 마쳤다./일러스트=연합뉴스

29일 재계에 따르면 개정된 중대재해법은 지난 27일부터 효력을 갖게 됐다. 이 법은 산업재해 중 사망, 2명 이상 부상, 3명 이상 질병이 발생한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와 법인을 모두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현장 근로자 사망 시 회사 대표이사는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사망 외 중대 재해가 발생한 경우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형을, 5년 내 동일한 사고가 발생하면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을 받도록 한다. 법인은 사망 사고가 나면 50억원 이하, 이 외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물게 된다.

이처럼 경영진 본인의 과실이 아님이 명백함에도 사고 책임을 물어 법정 구속까지 가능케 한 초유의 처벌법인 만큼 업종을 가리지 않고 재계는 바짝 긴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대한항공·㈜한국공항 소속 지상조업 차량들이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주차돼 있는 모습./사진=미디어펜 산업부 박규빈 기자

우선 비행기와 특장차 등 중장비를 다루는 항공업계는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이수근 부사장에게 최고안전관리책임자(CSO) 직위를 겸직토록 했다. 이에 다라 안전보안실 아래에 있던 산업안전보건팀을 산업안전보건실로 급을 높였고, 안전·보건 컨트롤 타워 역할을 담당하도록 조직을 개편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이사회 내 안전위원회 설립에 나섰고, 제주항공은 김이배 대표이사 직속 경영지원실에 '산업안전보건팀'을 편입시켜 중대재해처벌법 전담 인력을 채웠다. 에어부산도 안병석 대표이사 직속 부서인 안전보안실에 산업안전보건 부서를 만들어 별도 예산을 편성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중대재해법 시행 첫날 건설·철강 분야 협력사들에 대한 지원을 2배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근무 현장 안전 강화 차원에서 △인건비 △시설·장비 확충 △안전 점검·교육 비용으로 총 870억원을 집행한다. 지난해 450억원 대비 약 1.93배 증가한 수준이다.

특히 현대건설은 기존 고위험 외주 시공 협력사에 지급하던 안전 담당자 인건비를 철골 등 주요 자재 설치 협력사로까지 확대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올해부터 공사 금액 100억원 이상 협력사 안전 관리자 선임 인건비를 추가 지원한다. 

현대제철은 사내 협력사 안전 관리자 추가 충원 비용을 지급한다. 이를 통해 현재 안전 인력 대비 1.5배 증가한 인원을 채용하고, 안전 지킴이도 올해에는 170여명 규모로 운영, 협력사 직원들이 현장에서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게 현장 환경을 점검하고 지도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올해 작업자들을 위한 웨어러블 카메라·휴대용 감지 경보 장치도 도입한다. 지난해부터 지게차 사고 예방 목적으로 현대제철은 후방 감지기와 어라운드 뷰 센서 설치 비용도 부담한다.

건설사들은 1호 처벌 대상은 피하자는 입장을 모아 지난 27일부터 설 연휴를 시작했다.

개정법 시행 첫날 현대건설은 '현장 환경의 날'로 지정했고, 삼성물산은 건설부문은 '안전경영 실천 선포식'을 개최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비상 대책 기구인 '비상안전위원회'를 조직, 건설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CSO직 신설과 경영진 쇄신을 포함한 안전 혁신 방안을 수립한다는 입장이다.

   
▲ 지난 27일부터 개정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이 법은 현장 근로자 사망 시 경영주 구속까지 가능토록 규정한다./일러스트=연합뉴스

이처럼 산업군을 막론하고 재계가 중대재해 발생을 방지하고자 CSO까지 두는 노력을 기하고 있지만 중대재해법 앞에서는 요식행위에 불과해질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리상 책임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아 일반적으로 CSO가 상신한 안전 예산에 대해 서명하고 승인하는 최고경영자(CEO) 또는 대표이사 구속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행정부 요인들도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과대학장(교수)은 "해당 법에 따르면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했다는 걸 입증하면 면책이 가능하다고 하나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전 학장은 "만약 3차 벤더에서 사고가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는 2차 벤더에 있는지, 1차 벤더에 있는지, 원청에 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어 "가령 국가 소유 시설인 한국서부발전의 근로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사고가 현 시점에 발생했다면 모회사인 한국전력공사 사장, 이를 관리·감독하는 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 장관, 국무위원 임면권자인 대통령도 처벌 대상"이라며 "졸속으로 만들어진 중대재해법은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