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난무·사드 배치 눈치보기…뼈 아픈 사건 아닌 교훈 삼아야
   
▲ 윤상용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천안함으로부터 5년, 오늘날 우리의 안보태세 현주소는?

3월 26일은 어느덧 천안함 피격사건이 발생한지 5주기가 되는 날이다. 46명의 천안함 장병 뿐 아니라 구조작업 중에 순직한 한주호 준위까지 잃은지 벌써 다섯 해가 흘러갔지만, 북한은 아직까지도 이날의 명백한 도발행위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연평도 포격사건을 자행했고, 주 UN 북한대사는 “한국을 철저히 파괴하겠다”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며칠 전 현학봉 주영(駐英) 북한대사는 “북한이 핵무기를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으며, 전쟁을 원하지는 않으나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며 공공연한 전쟁불사 의지를 피력했다. 그로부터 5년. 대한민국은 천안함 사건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천안함 피격사건의 발생배경과 이후

천안함 사건이 터지던 당시 한반도의 주변정세는 북한의 도발이 어느정도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먼저 북한의 북방한계선, 즉 NLL에 대한 도발은 1999년부터 현격히 두드러졌으며, 대한민국해군은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과 침범행위를 제 1연평해전(1999), 제2 연평해전(2002), 대청해전(2009)의 세차례 교전으로 격퇴했다. 이 세차례의 “서해교전”을 통해 북한은 한국에 비해 더 큰 피해를 입었을 뿐아니라 북방한계선을 무력화시킨다는 소기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

   
▲ 3월 26일은 천안함 폭침 5주기다. 대한민국 해군, 천안함의 명패 /사진=연합뉴스TV 캡처

특히 정치적으로는 NLL의 무효를 주장하면서 일방적으로 선언했던 서해해상분계선을 정착시키려던 노력이 무산됐으며, 경제적으로는 수산자원의 보고인 연평도 인근 해역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 교전이었던 2009년 11월 대청해전 후, 북한은 2010년 1월하순경 북방한계선 쪽으로 장사포와 해안포공격을 실시했다. 이 사건 후 군은 북한의 해안포나 장사포, 지대함유도탄을 이용한 도발가능성에 무게를 두게 되었는데, 이로인해 잠수함 등을 이용한 해상도발 가능성에 대한 경계를 늦춘 것은 분명한 실책이었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피격당한 당일에도 북한의 모선과 잠수정 일부가 기지에서 식별되지 않는다는 보고가 합참에서 전파됐지만, 예전에도 간간히 있던 일인데다가 포에 의한 도발만 신경쓰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의 의도를 사전에 막지 못했다.

천안함이 피격된 후 외국전문조사팀까지 포함된 민-군 합동조사단은 인양된 천안함의 피해상태를 기준으로 좌초, 충돌, 피로파괴, 내부폭발, 외부폭발 가능성을 모두 면밀히 검토했다. 뿐만 아니라 천안함을 외부폭발로 침몰시킨 어뢰의 추진동력장치와 추진모터, 조종장치를 수거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 이 부품들은 북한이 해외수출을 위해 제작해 배포한 어뢰소개자료 상의 설계도와 크기, 모양에서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어뢰 외에도 천안함의 추진동력장치와 변형형태, 생존자들의 증언, 부상자의 시신상태, 당시 지진파 및 공중음파 기록, 백령도 인근의 당일 조류흐름, 폭약성분 등을 토대로 국내외 전문가들은 모두 “수중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되어 침몰했고, 폭발위치는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3m, 수심 6~9m 정도이며,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 및 사용중인 고성능폭약 250kg 규모의 CHT-02D 어뢰로 확인되었다”고 결론내렸다.(대한민국정부발간, “천안함피격사건백서”).

   
▲ 천안함 폭침 5주기에도 여전히 정부의 자작극, 미잠수함 충돌설, 좌초설 등 비과학적인 선동을 하는 세력이 있다. 남남갈등을 초래하고 정부 공신력을 훼손시키는 세력에 대한 국민적 응징이 필요하다. 대전 한남대 학생들이 교내 추모공간을 찾아 천안함 46용사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국적연합 정보분석팀 또한 “북한의 소형 잠수정으로부터 발사된 어뢰에 의한 외부수중폭발의 결과로 침몰”됐다고 결론내렸으며 조사에 참가한 국가 중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북한의 소행임에 동의했지만, 북한은 오늘날까지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취지의 ‘천안함 괴담’은 북한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의 네티즌을 통해 처음 유포됐으며, 국회의원들이 이 유언비어들을 질의응답 등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더더욱 재확산되어버렸다. 북한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한국에서 유포된 바로 이 ‘천안함 괴담’을 논리로 내세웠던 것은 웃지 못할 희극이다.

천안함 피격사건은 북한의 도발징후를 오판하였던 점이나 잠수함을 통한 도발가능성을 미리 염두에 두지 않았던 점을 실책으로 인정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습의 성격을 띈 공격이었기 때문에 사전에 대응하기가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한번의 뼈아픈 사건으로 끝나느냐, 이를 통해 교훈을 얻어 미래를 대비하느냐는 확연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천안함 사건으로부터 5년이 지난 오늘날, 만약 북한이 유사한 성격의 도발을 다시 해온다면 이에 대응할 준비태세가 갖추어져 있을까?

북핵 위협과 안보를 둘러싼 국제관계

먼저 한반도의 안보 문제에서는 항상 북한의 도발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북한은 지난 2013년 2월에 3차 핵실험을 실시한 바 있으며, 2006년 10월 9일에 첫 핵실험을 실시한지 벌써 8년 이상 경과한데다 총 3회 이상의 핵실험을 실시했기 때문에 북의 핵탄두 소형화능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2013년 4월 최고인민회의 때는 “핵억제력과 보복타격력을 강화”한다는 문구를 ‘4.1 핵보유법령’에 명문화한데다, 몇일전 주영 북한대사의 발언을 비롯해 핵에 의한 위협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이는 것으로 봐 어느 정도의 기술력이 확보된 것으로 추측된다.

   
▲ 천안함 침몰이라 표현하며 자신들이 한 것이 아니고 5.24 조치를 즉각 해제하라는 북한. 이에 대해 국방부는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변명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문제는 이 핵을 투발할 투발체인데, 북한은 이미 사거리 300~500km 범위의 스커드미사일을 비롯, 사거리가 3000 km에 달하는 무수단까지 실전배치를 완료한 상태이며 10,000km~12,000km 범위의 대포동 2호와 KN-08을 개발 중에 있다. 만약 이들 미사일이 실전배치가 되고, 소형화에 성공한 핵이 이 미사일에 탑재가 된다면 한반도 뿐 아니라 일본, 오키나와-괌-하와이를 비롯한 태평양권 미군기지 뿐 아니라 미국본토까지 북한의 핵 위협권에 들어갈 수도 있게 된다.

하지만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현실적인 문제보다도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제약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논란은 종말고고도지역방어체계, 통칭‘사드(THAAD: Terminal High-Altitude Aerial Defense)’ 논란이다. 2013년 국정감사 때 처음 논란이 시작된 ‘사드’는 국방부에서 수차례 이상 도입예정이 없고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Korea Air and Missile Defense) 개발에 주력할 것임을 밝혔으나, 중국정부가 지속적으로 한국 및 주한미군의 사드 한반도 전개에 반대의사를 표명하면서 정치적인 논란으로 변질됐다.

이 정치적 논쟁은 ‘한국에 설치된 사드는 중국에서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미본토에 도달하는 것을 중간에서 요격할 목적이며, 이 때문에 미-중간의 탄도미사일 견제 균형이 깨진다’던가, ‘사드에 포함된 AN/TPY-2 레이더 사거리가 2,000km에 달해 중국 내륙까지 항상 탐지한다’는 낭설로 이어졌다. 실제로는 중국과 미국 간의 직선 기점은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북극을 거치며, 전방 전개용이 아닌 탄도 방어용으로 설정된 AN/TPY-2는 요격체를 유도하기 위한 정밀탐지를 위해 탐지 빔 폭을 좁혀서 조사(照射)하므로 탐지 거리가 600km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중국 정부는 사드 도입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 천안함 피격 5주기를 하루 앞둔 25일 대전 현충원 천안함 묘역을 찾은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미 현 단계는 위에 언급된 기술적인 논란이 핵심이 아니라 그 이면의 정치/경제적인 문제가 핵심으로, 한국의 ‘최대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 유지와 무역 보복의 역풍을 피하기 위해 국방주권의 침해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전통의 우방국이자 혈맹인 미국을 선택해 한미동맹을 강화하되 중국과의 경제적 마찰을 감수하느냐의 선택이 됐다. 하지만 공격용 무기도 아닌 방어용 무기 설치를 놓고 주변국의 정치적 압력을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도입하게 될 무기들에 대해서도 분명히 좋지 못한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번 ‘사드’ 같은 탄도 방어 미사일 설치가 문제가 된다면, 탐지거리가 훨씬 긴 이지스함이나 조기경계경보기는 물론이고 대형상륙함(경항모), 공중급유기, 탄도미사일 방어체계 등 모든 전략 무기가 매번 도입 될 때마다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방산비리의 부끄러운 자화상, 통영함 사건

안보와 관련하여 국내적으로 최근 가장 심각한 이슈는 방산 비리 문제다. 방산비리는 특히 국민의 생명뿐 아니라 국가의 존망과도 관련된 문제이며, 방산비리의 가장 큰 피해자는 우선적으로 야전에서 해당 무기를 사용하는 군인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군의 보호를 받을 뿐 아니라 고가의 방산장비 도입 비용을 대는 납세자, 즉 국민이다. 특히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방산비리를 ‘이적행위’라고 규정한 후 작년 11월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면서부터 쏟아져 나온 방산 비리의 백태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다. 그 중에서도 특히 통영함 비리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통영함은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미 해군의 노후함을 도입해서 운용하던 평택, 광양함이 제대로 된 수중탐지장비가 없어 구조작업에 제대로 투입되지 못하자 ‘차세대 구조함 사업’을 통해 건조하게 된 구조함이다. 2010년부터 건조에 착수한 통영함은 총 1,590억 원을 들여 2012년에 진수했지만 정작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당시에는 구조활동에 투입되지도 못했다. 구조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선체고정형음파탐지기(HMS)와 수중무인탐사기(ROV)가 해군 요구도에 못 미쳐 운용 자체를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 해군 참모총장을 비롯한 고위급 전 현직장교들까지 구속된 이 사건은 최근에 밝혀진 방산비리의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통영함은 특히 바로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구조함의 필요성을 깨달아 건조했던 배로, 구조에 투입됐던 수많은 장병들의 고생과 희생을 토대로 하여 더 이상 같은 일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겼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씁쓸해진다.

단호한 응징을 통한 예방과 이스라엘의 ‘보복작전’

마지막 문제는 또 다른 도발이 있을 경우 정부와 군이 강한 대응을 할 의지가 있는지의 여부다. 안타깝게도 천안함 사건 이후 벌어진 연평도 포격사건은 군이 강력한 대응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시험대였지만 만족할만한 대응을 보여주지 못했다. 말 그대로 백주 대낮에 북한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해병대원들은 침착하게 포문을 돌려 북쪽을 향해 대응 사격을 실시했지만, 사실 영토를 침공당한 ‘대한민국’이 보여줬어야 할 대응으로는 크게 미흡했다. 물론 혹자는 우발사태가 더 크게 확장되지 않도록 적정선에서 억제했다고 할 지 모르겠으나, 영토를 공격당한 것은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히 주권을 침해당한 행위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단호하고도 분명한 응징의 모습을 보였어야 추후에 있을지도 모를 또 다른 도발 행위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 천안함 폭침 5주기를 앞두고 25일 서해에서 대규모 해상기동훈련을 실시한 해군. 군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철저한 응징을 약속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단호하면서도 분명한 응징’의 대표적인 예는 1950~1960년대에 이스라엘 군이 실시한 통칭 “보복작전(Reprisal Operations)”을 들 수 있다. 2차 중동전쟁 이후부터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 등을 통해 이스라엘에 입국한 아랍계 게릴라들이 이스라엘 국내에서 민간인과 군인들을 상대로 산발적인 테러 행위를 자행하자 이스라엘 국방군(IDF)은 이에 대한 단호한 ‘응징’을 방침으로 정했다.특정 국가의 테러리스트가 한 번 테러를 자행하면, 해당 국가에 보복 공격을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약 10년에 걸친 시기 동안 이스라엘은 총 16회의 보복작전을 실시하면서 한 번의 테러가 자행될 때마다 훨씬 큰 ‘피의 보복’이 뒤 따른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적의 크고 작은 도발 행위가 발생할 때마다 분명하고도 명백한 보복을 하여 국민과 군의 사기를 증진시키고, 추후 있을지 모를 적의 공격을 예방했으며, 한 대를 맞으면 배로 갚아주겠다는 메시지를 보여줌으로써 추후 도발을 가장 확실하게 예방한 것이다.

천안함을 통해 잊지 말아야 할 사실

천안함 사건으로부터 5년이 지났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안보 의식과 준비태세는 5년 전과 비교했을 때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최우선 되어야 하는 안보 문제 앞에서 지도층은 아직도 일치단결하지 못하며, 북한의 직접적인 위협이 상존하는 현 안보상황에서도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국비를 좀먹는 방산비리가 횡행한다.

중국 제나라의 명장 사마양저가 말했듯, ‘천하가 비록 편안해도 전쟁을 잊으면 필시 위기가 닥친다(天下雖安忘戰必危)’. 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전국시대를 거치며 단련된 일본과 싸우며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입으며 힘겹게 승리했다. 하지만 다시 찾아온 평화가 길어지면서 해이해진 안보의식 탓에 청나라의 침입을 허용해 인조 임금이 돌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청태조에게 절을 한 ‘삼전도의 굴욕’까지 겪었던 역사가 있다.

미국의 국부인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말처럼, “전쟁에 대비하는 것은 평화를 보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어쩌면 이것이 천안함의 희생이 남기고 간 가장 뼈아픈 교훈일지도 모른다. /윤상용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