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대박'은 논쟁보다 북한 주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큰 그릇부터 준비해야

   
▲ 김소정 미디어펜 기자
2045년, 광복 100주년이 되는 해 한반도를 상상해보자.

남과 북은 각각의 정부를 구성하고 있지만 같은 국가 운영 체제로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다. 북한의 대학생이 남한으로 유학을 오고, 남한 여성과 북한 남성이 결혼도 할 수 있다. 명절이면 남북한에 각각 흩어져 살던 가족․친척들은 선물 보따리를 들고 서울과 부산, 신의주와 나진을 잇는 한반도 종단열차에 몸을 싣는다.

서울에서 신의주와 원산을 연결하는 철도는 유라시아 철도까지 연결돼 사람은 물론 물류를 실어 나른다. 남한의 인천공항과 북한의 원산항은 네덜란드의 스키폴 공항과 로텔담 항구처럼 세계적인 물류창고로 탈바꿈했다. 인천공항에서 저녁에 북한산 상황버섯과 차가버섯을 비행기에 실어 보내면 다음날 아침 핀란드 헬싱키 공항에 당도한다.

‘통일 한반도’라면 가능한 풍경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3월28일 독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발표한 대북 원칙인 ‘드레스덴 선언’이 나온 지 1주년을 맞았다.

2015년이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년인 만큼 이를 계기로 새로운 남북관계를 추진하기 위한 구상이 발표된 것이다. 드레스덴 선언은 ‘남북한 주민의 인도적 문제 해결’과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한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 평화통일 기반구축’이라는 3대 제안을 골자로 한다.

   
▲ 드레스덴 선언 1년이 되었지만 성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사진=YTN 캡처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하기 직전인 같은 해 신년사를 통해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했다. 국민은 물론 주변국에도 긍정적인 통일 공감대 확산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통일 대박론’이 많은 논란을 낳은 것도 사실이다. “졸부적 표현”이라는 지적부터 “무조건 통일을 지향해선 안된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게다가 북한이 통일 대박론이나 드레스덴 선언 모두 흡수통일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통일에 대한 여론은 여전히 입에 올리기 ‘불편한 단어’라는 쪽으로 쏠렸다. 올 초 설 계기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결국 무산되고 남북 간 경색관계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이번에는 흡수통일론이 새로운 논란을 일으켰다.

최근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민간 부위원장이 한 민간단체의 조찬포럼에서 “통준위 내 흡수통일을 준비하는 팀이 있다”고 말한 것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북한은 “통준위를 당장 해체하라”고 비난을 퍼붓고 남한 내 여론도 맞붙었다. “흡수통일은 민족의 재앙”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결국 통준위 측은 “통준위에 흡수통일을 준비하는 팀은 없다”고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아직까지 통일 대박론도 낯선 상황에서 흡수통일은 새로운 금기어가 된 셈이다. 이번 논란 끝에 일각에서 “통일 연구에 당연히 흡수통일을 비롯한 다양한 통일 방식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통일 인식 수준을 이렇게 정리해보면 어떨까. 통일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한반도의 과제인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서는 수많은 금기어를 떠올리며 터놓고 논의할 수 없는 상태.

정부는 지난 26일 ‘드레스덴 선언’ 1주년을 앞두고 추진 성과를 발표했다. 그동안 국제기구를 통해 민간단체의 영양식·의약품을 지원하고, 민간 차원의 종자·온실 자재 등 지원과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과 개성 만월대 발굴 사업 등 중단된 남북 문화유산 공동 복원사업이 재개된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정부는 “북 측이 드레스덴 구상의 진의를 오해하고 우리의 대화협력 제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온 것은 아쉽다”며 “하지만 북한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시야에서 남북관계 상황을 봐가며 실천 가능한 사업부터 차근차근 이행을 추진해왔다”고 밝혔다.

탈북자 2만명 시대를 맞으면서 북한 당국뿐 아니라 북한 엘리트층의 통일 구상을 여러 경로로 들을 기회가 있었다. 북한에서 3대세습이 유지되는 동안 당국의 ‘적화통일’ 노선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 사회가 달러와 장마당으로로 유지되는 시절을 맞으면서 엘리트층에서는 조심스럽게 평화통일을 꿈꾸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남북한이 한 체제로 통일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통일이 된다면 북한의 현 체제를 크게 흔들지 않는 1국가2체제 형태로 유지시키다가 점차 남북이 융화되고 결국 한 체제의 통일시대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폐쇄국가로 꼽히는 북한도 세대를 바꾸면서 결국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통일 논의도 좀 더 성숙해져야 한다. 흡수통일이 맞다, 틀리다라는 식의 논쟁 수준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북한 주민을 받아들일 수 있는 큰 그릇부터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 통일된 독일의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은 동독 출신이다. 그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 동독을 떠나 서독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선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대북전단에 북한 주민을 현혹시키거나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가 담겨서 그 취지를 퇴색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