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자회사 물적분할 사례 이어져
LG화학 분할‧LG에너지솔루션 상장으로 여론 폭발
'동학개미' 포기하고 미국주식 투자하기도
최근 국내 대기업들이 연이어 물적분할을 발표하며 주식시장의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들 중에는 지배구조 개선 명분으로 분할을 단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핵심 자회사를 따로 상장시켜 대주주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에 소액주주들의 반발은 매우 거세다. 미디어펜은 5회에 걸쳐 최근 불거지고 있는 물적분할에 대해 파헤쳐 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2에서 1을 빼면? 정답은 1. 간단한 산수다. 하지만 한국 주식시장에선 2에서 1을 덜어냈는데 결론이 3으로 커지는 경우도 있다. 시가총액 44조원 LG화학에서 물적분할한 LG에너지솔루션의 시총이 112조원으로 불어나는 식이다. 기업의 물적분할 자체가 범죄는 아니지만, 최근 불거진 물적분할 이슈는 대주주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와 결부되며 첨예한 논란을 파생시켰다. 

   
▲ 상장기업의 물적분할 자체가 범죄는 아니지만, 최근 불거진 물적분할 이슈는 대주주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와 결부되며 첨예한 논란을 파생시켰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미국주식 투자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게 ‘구글은 왜 상장이 안 돼있냐’는 겁니다. 구글은 모회사 알파벳이 나스닥에 상장돼 있을 뿐 구글이란 종목은 없죠.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는 어떤가요? 메타는 인스타그램도 갖고 있는데, 왜 인스타그램은 물적분할 하지 않을까요? 미국과 비교해 보면 한국의 현실이 도드라집니다. 지금 같은 현실이 이어진다면 ‘주식 후진국’ 오명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거고요.”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 A씨의 말투는 점점 격앙돼 갔다. 같은 업종에 있으면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이해해 줘서도 안 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멀리 돌아갈 것도 없이 최근 코스피 시장에 입성한 LG에너지솔루션 사태는 여전히 국내 주식시장에서 뜨거운 감자다. 이제는 당선이 유력한 대선 후보들도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반발 여론이 확장돼 사회적 압력이 형성된 것이다.

LG화학이 자사가 보유한 배터리 분야를 따로 독립시켜 상장한다는 발표를 한 것은 지난 2020년 9월16일이었다. 그 해 3월 코로나19가 주식시장에 궤멸적인 타격을 줬지만 가을쯤엔 이미 반등의 분위기가 만들어진 상태였다. 2차전지 테마는 그때나 지금이나 ‘핫’했고, LG화학은 때를 놓치지 않고 물적분할 카드를 던졌다.

“눈 뜨고 코 베였는데, 배임이 아니라고?”

발표 이후 당연히 LG화학의 기존 주주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LG화학이 갖고 있는 2차전지 역량을 보고 투자에 나섰다. 물적분할이 단행되면 투자한 주주는 그대로 있는데 ‘투자한 이유’만 사라진다. 한순간에 자신의 투자 이유가 다름 아닌 대주주에 의해 상실돼 버린 것이다.

물적분할 발표 이후 LG화학 주가는 이틀간 11.16% 폭락했다. LG화학 같은 큰 회사가 이렇게 큰 낙폭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LG화학 물적분할로 인한 개인투자자 피해를 막아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뜨거운 반응을 얻기도 했다.

   
▲ LG화학의 '배터리 분사'와 LG에너지솔루션 상장은 한국 주식시장에 큰 논쟁점을 남겼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경영활동을 하다 보면 효율적인 상황 대응을 위해 분사가 필요할 수 있다. 다시 LG화학을 예로 들면, LG화학이 물적분할이 아닌 ‘인적분할’을 했을 경우 기존 주주가 분사한 배터리 사업체(현 LG에너지솔루션) 주식을 나눠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물적분할 방식을 취하면 기존 주주들은 배터리 사업체 주식을 전혀 받지 못한다. 소액주주 입장에선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실상의 배임(背任) 아니냐는 토로가 나왔던 이유도 그래서다.

상황이 악화되자 LG화학 측은 ‘당근’을 던졌다. LG화학 주주들에게 “3년간 주당 1만원 이상 현금배당을 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감정이 상한 주주들은 이 약속의 진의마저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LG화학이 주당 1만원 배당을 하게 될 경우 상당 부분의 이익은 지주회사 LG를 거쳐 오너가로 돌아가는 구조가 눈에 띈다. 결국 LG화학 물적분할부터 LG에너지솔루션 상장, 배당성향 개선까지 모든 것이 대주주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었다. 

“한국 주식 안 한다” 동학에서 서학으로

이 사실이 알려진 무렵부터 LG화학 종목 게시판은 물론 각종 대형 주식카페들에는 ‘한국 주식이 쓰레기인 이유’ ‘한국 주식시장을 당장 떠나야 하는 이유’ 등의 과격한 게시물들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런 게시물을 쓰고 퍼 나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바로 얼마 전까지 ‘동학개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개인 투자자들이었다.

‘동학’을 포기한 이들은 바다 건너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한국예탁결제원은 지난 6일부터 11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페이스북의 모기업 메타의 주식을 1억362만달러 순매수 했다고 집계했다. 한화로는 1243억원이다. 

메타는 향후 업황 부진으로 지난 3일 하루에만 26% 폭락하는 등 최근 주가가 급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메타가 나스닥에 상장된 2012년 이후 이렇게 큰 낙폭은 보인 적이 없었으며, 심지어 앞으로도 메타의 실적이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업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의 매수세가 바다 건너 메타로 몰린 것이다.

메타에 투자한 이들이 모두 LG화학의 소액주주들은 아니겠지만, 서학개미들의 상당수가 국내 주식시장에서 신뢰를 잃어버린 이들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물적분할 사태를 국내 주식시장의 신뢰 문제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