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우크라에 파병 지시…미·서방, 대러 제재 발표
유라시아 패권 장악 위한 미·러 간 ‘신 냉전’ 가능성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추진을 러시아가 반대하면서 촉발된 미국과 러시아 간 갈등이 ‘강대강’ 대치로 치닫고 있다.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냉전 체제가 막을 내린 이후 우크라이나를 최전선으로 삼아 '신 냉전' 가능성까지 불러온 형국이다.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인 도네츠크 및 루간스크 공화국 독립을 승인하고 파병을 지시했다.  

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즉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규정, 러시아에 대한 제재 조치를 내놨다. 22일 현재 유럽연합(EU)과 캐나다, 일본이 동참했다. 

미국은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인 VEB와 방산지원특수은행인 PSB 2곳, 그리고 이들의 자회사 42곳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이들 기업의 미국 내 보유 자산이 동결됐고, 미국 기업과의 거래가 금지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5명의 최상류층과 신흥 재벌들에 대해서도 제재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미 보병 800명과 8대의 F-35 전투기, 32대의 AH-64 아파치 헬기 등이 동유럽에 배치된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2일 러시아와의 전면전에 대비해 예비군 소집령을 내린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같은 날 파병 지시와 관련해 “지금 당장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도네츠크 외곽에서 탱크가 포함된 긴 부대 행렬이 목격됐고, 우크라이나 인근에서 부대 마크나 휘장이 없는 러시아 특수부대가 목격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가 격돌하는 이유는 나토의 동진 팽창이 러시아를 압박하기 때문이다. 사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나토의 결속력을 약화시켰던 것에 비해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편입을 서둘렀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우크라이나 사태-미러 정상 (PG) 백수진 제작 일러스트./사진=연합뉴스

이 때문에 러시아가 지난해 12월 미국과 나토에 러시아의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낸 일이 있다.
 
러시아는 특히 백악관에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구소련 일원 6개국(벨라루스·몰도바·아르메니아·조지아·아제르바이잔)에 나토 회원국 자격을 부여하지 말 것, 러시아 인근 중동부 유럽 나토 회원국에 타격용 공격무기 배치를 중단하고 철수시킬 것, 러시아 근역에서 나토의 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할 것 등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미국 및 EU 사이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유럽 최대의 영토 규모와 4400만 인구, 철광석과 석탄 등 방대한 지하자원 등을 감안할 때 우크라이나의 대외적 선택이 유라시아 세력 판도에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인에게 동방 진출의 길목이자 러시아에게는 흑해와 지중해로 나가는 출구가 되는 지정학적 조건으로 끊임없이 열강들의 각축전에 신음해온 역사가 있다. 이런 우크라이나가 내부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자 미국의 ‘유럽 길들이기’와 러시아의 ‘재팽창 야욕’이 덮쳤다는 전문가의 시각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나토 결집력 복구 시도는 그동안 외교·안보적으로 자율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다 천연가스 등 러시아에 대한 자원 의존도가 너무 커진 EU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러시아와 EU 간 경제적 탈동조화(디커플링)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난 2000년대 이후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에 힙입어 군사·에너지 분야에서 영향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러시아가 미·중 전략적경쟁 심화 등 국제정세 변화를 적극 활용해 소련 해체 30주년을 맞아 더 늦기 전에 영향력 확대를 시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유라시아 패권 장악을 위한 미·러 간 세력 투쟁에서 최대 승부처로 떠오른 만큼 이번 사태가 당분간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2일 국무부에서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회담한 직후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했다는 판단에 따라 예정됐던 미러 외교장관 회담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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