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장충기에 문자 보낸 이유로 해직된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지금은 단 한 명의 주장에 불과할지라도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제거당하지 않고 그 목소리가 들리도록 허용되면 언젠가는 진리로 드러날 수도 있다. 진실과 허위가 자유롭게 대결하고 충돌하면 진실은 스스로 그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연합뉴스 편집국장을 역임한 이창섭 서울시자원봉사센터 감사는 지난 2월 28일 서울 종로빌딩에서 미디어펜과 만나 “‘소수의 목소리를 존중하라’고 말해주고 싶다”며 이 같이 밝혔다.

또 ‘사실에 대한 존중’을 언론인의 덕목으로 강조했다. 그는 “언론은 수사권이 없다”면서 “강제로 사실 확인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정확한 사실을 보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창섭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이 2월 28일 서울 종로빌딩에서 미디어펜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이 전 국장은 대한민국이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갈라져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는 현 상황을 우려하며 “이렇게 된 데에는 정치인, 언론인의 잘못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상대방에 대한 인정을 바탕으로 대화와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성숙한 사회로 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설립된 단체 ‘앞서가는 시민들 모임(앞시모)’을 소개했다.

앞시모는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 언론인, 시민운동가들 중심으로 발족한 단체다. 중도 보수와 중도 진보 세력을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는 KBS, MBC 등 방송사의 중립적 노동조합이 주도해 만든 ‘공영언론 미래비전 100년 위원회’에도 참여 중이다. 이 전 국장은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는 공영언론사들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언론으로 거듭나도록 하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스스로를 ‘연합뉴스 해직자’라고 소개한 이 전 국장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에게 문자를 보냈다고 해고됐다”며 “해고를 정해 놓고 사유를 찾다 보니 억지로 벌어진 일”이라고 회고했다. 

한편, 한국외대 영어학과를 졸업한 그는 연합뉴스에 입사해 런던특파원, 연합뉴스TV 총괄부국장, 연합뉴스 편집국장, 연합뉴스 미래전략실 실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서울시자원봉사센터 감사를 지내며 언론 정상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다음은 이 전 국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미디어펜(이하 미펜): ‘앞서가는 시민들 모임’에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 활발한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하다. 

이창섭(이하 이):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진영으로 갈라져 서로를 적대시한 적이 있나 싶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정치인, 언론인의 잘못이 크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자기 이익을 위해 편 가르기를 했다. 

대한민국은 상대방에 대한 인정을 바탕으로 대화와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성숙한 사회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설립된 단체가 ‘앞서가는 시민들 모임(앞시모)’이다. 보수시민단체들과 언론인, 시민운동가들 중심으로 발족했지만 목표는 중도 보수, 중도 진보 세력을 통합하는 것이다. 

우선 진보진영과 대화에 힘쓰고 있다. 대표적인 문재인 대통령 지지 모임인 ‘깨어있는 시민연대당(깨시민당)’과 좌우 합작으로 “올바른 지도자 뽑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민구 대표를 만나 대화해 보니 지향하는 바가 같았다. “도덕성을 갖춘 유능한 지도자”를 뽑자는 것이다. 눈과 귀,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 이창섭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이 2월 28일 서울 종로빌딩에서 미디어펜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이밖에 ‘공영언론 미래비전 100년 위원회’에도 참여했다. 일부 오해가 있어 밝히는데, ‘공영언론 미래비전 100년 위원회’는 KBS, MBC 등 방송사의 중립적, 합리적 노동조합이 주도해 만든 단체다. 현직 언론인들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말석에 자리를 하나 놓았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소송을 해서 이긴 강규형 전 KBS 이사가 상임대표가 됐다. 

미펜: ‘연합뉴스 해직자’로 스스로를 소개하셨는데 사연이 있으신 것 같다.

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에게 문자를 보냈다고 해고됐다. 해고를 정해 놓고 사유를 찾다 보니 억지로 벌어진 일이다. 중요 취재원과 기자는 수시로 문자를 한다. 언론계에서는 통상 있는 일이다. ‘라포(친근한 관계)’를 형성하는 취재 기법이기도 하다. “돕는다”는 단어가 문제가 된다고 하는데 언론이 기업을 돕는다는 진짜 의미가 무엇인가? 잘한 일은 널리 알리고 못한 일은 준엄하게 비판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다.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 구글, 론스타, 엘리엇 등 해외 대기업이나 펀드에게도 항상 동등한 잣대를 들이댔다. 공정하게 대하는 것 그게 기업을 돕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도 조국 전 장관을 엄하게 수사하고 난 뒤 이게 문재인 정부를 돕는 것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 시국에 바이오 기업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해서 신약개발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했다. 이것도 언론노조의 시선으로 보면 정경유착인가? 언론노조는 느닷없이 나를 부역자로 지목했다. 언론인을 부역자로 몬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를 오보라고 가장 먼저 지적한 나를 정권이 바뀌자마자 공격한 것이라고 인정하는 게 더 명쾌한 해명이 될 것이다.

내가 편집국장 재임 시절 연합뉴스 영향력은 KBS, 조선일보 수준이었다. 지금 각종 지표에서 연합뉴스의 위상이 어떤지 되묻고 싶다. 백번 양보해 문자 보낸 게 부주의했다면 진보 진영 인사와 한 문자들도 모두 공개할 수 있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였던 시절에도 “좋은 나라 만들어 달라. 열심히 돕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나는 당시 누구보다도 공정하게 일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계적 중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편집국장 이전에 한 명의 언론인으로서 헌법의 틀 안에서라면 기자 누구나 각자의 의견을 펼칠 수 있도록 독려했다. 때로는 이들과 수평적 관계에서 논쟁했다.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아니 더 본질적으로는 내가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집권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현직 언론인을 조직적이고 불법적으로 징계하거나 해직한 행위는 헌법의 기본 가치인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 심각한 야만행위이다.

미펜: 언론사에 재직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가 무엇인지?

이: 연합뉴스 런던특파원 시절,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주창한 “제3의 길”이란 실용주의 노선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세계적 석학 앤서니 기든스 박사를 런던정경대 교수실에서 인터뷰했다. 제3의 길을 “현실과 야합”이라고 매섭게 공격했더니, 자존심이 상한 대석학이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든스 교수는 “미국의 사회모델은 실패했다. 약자에게 너무 가혹하다. 유럽의 사회모델도 실패했다. 사회주의 과잉으로 역동성이 사라졌다. 한국이 미국식도 유럽식도 아닌 새로운 사회모델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인류에게 주는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든스는 한국이 민주적이면서도 합리적이고, 성장과 복지를 포함하면서 경쟁과 배려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든다면 그것은 중국에게도 큰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당시에는 기사에 한 줄 담고 말았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더 새록새록 떠오른다. 기든스의 충고처럼 대한민국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매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미펜: 후배 언론인들에게 하고픈 말씀이 있으시다면?

이: 첫째 “소수의 목소리를 존중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단 한 명이 반대하고 아홉 명이 찬성한다고 해서 그 한 명의 목소리를 억압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로 흔히 ‘사상의 자유시장(marketplace of ideas)’ 이론이 거론된다. 지금은 단 한 명의 주장에 불과할지라도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제거당하지 않고 그 목소리가 들리도록 허용되면 언젠가는 진리로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진실과 허위가 자유롭게 대결하고 충돌하면 진실은 스스로 그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언론계에는 동시다발적으로 혁신위원회, 정상화위원회, 진실과미래위원회, 미래발전위원회 같은 전체주의적 기구들이 탄생했고, 완장 찬 이들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기자들을 숙청했다. 현대 문명국가에서는 일어나서도 안 되고 일어날 수도 없는 부끄러운 일이 일어났다. 대다수의 언론인들은 침묵했다. 소수 의견 말살에 항거하기 바란다. “나에게 어떤 자유보다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는 존 밀턴의 말을 기억하기 바란다.

두 번째는 사실에 대한 존중이다. 사실을 차근차근 쌓아 나가면 진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언론은 수사권이 없다. 강제로 사실 확인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정확한 사실을 보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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