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를 달고 14년간 그라운드를 질주한 ‘차미네이터’ 차두리가 고별 무대를 앞두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1월 차두리의 은퇴를 기념해 수많은 경기 중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10경기를 추려 발표했다. 2002 한일월드컵의 오버헤드킥부터 2015년 아시안컵의 ‘폭풍질주’까지 참 오래, 그리고 참 열심히도 뛰었다. 이중 8경기를 골라 소개한다.

   
▲ 2002년 월드컵 당시 차두리 / 사진=대한축구협회

1. A매치 데뷔전(2001년 11월8일 친선경기 세네갈전 0-1 패 / 전주월드컵경기장)

히딩크 감독은 2001년 고려대와 대표팀 연습경기 도중 기가막힌 선수 하나를 발견했다. 육중한 체력은 물론 폭발적인 스피드로 상대팀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니는 그는 ‘차붐’ 차범근의 아들 차두리였다.
당시 대학무대에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차두리의 대표팀 발탁은 언론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히딩크 감독에게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무명’ 차두리의 발탁은 박지성 만큼이나 모험과도 같았다.
이윽고 11월 세네갈과의 친선경기에 김남일과 교체 투입돼 데뷔한 차두리는 이후 꾸준한 출장기회를 부여받지만 당시만 해도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줄곧 따라다녔다.

2. A매치 데뷔골(2002년 4월20일 친선경기 코스타리카전 2-0 승 / 대구월드컵경기장)

히딩크 감독은 차두리가 A매치 11경기까지 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전방 스트라이커, 윙포워드 및 측면 미드필더로 다양하게 실험했다.
데뷔골은 다소 민망했지만, 월드컵을 두 달 남겨놓은 시점에서 자신감을 살려주기에 제격이었다. 이 경기에서 차두리의 첫 골은 안정환이 띄워준 볼이 엉겹결에 몸에 맞고 들어갔다. 멋쩍은 표정이 인상적인 ‘첫 단독 샷’이었다.

3. 이탈리아가 깜놀 ‘오버헤드킥’ (2002년 6월18일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2-1 승 / 대전월드컵경기장)

한일 월드컵 16강전, 승리를 원했지만 확신은 없는 경기였다. 히딩크 감독은 스피드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차두리를 후반 중반에 투입해 승부수를 띄웠다. 그리고 계산은 적중했다.
후반들어 홍명보를 대신해 투입된 차두리는 설기현의 극적인 골로 1대1로 맞선 후반 막판 그림같은 오버헤트킥으로 이탈리아 선수들의 심장을 덜컹 내려앉게 만들었다. 절정의 기량을 자랑하던 부폰 골키퍼마저 움찔할 만큼 순식간의 일이었다.
덕분에 해설자인 아버지 차범근은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라며 처음으로 아들을 칭찬했다.

   
▲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전에서 패한 후 눈물짓는 차두리 / 사진=대한축구협회

4. 불명예스런 A매치 퇴장(2004년 9월8일 독일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베트남전 2-1 승 / 베트남 통낫 경기장)

이을용의 ‘을용타’ 못지 않았다. 차투리는 베트남과의 월드컵예선 전반 막판 상대 수비수를 팔꿈치로 가격했다. 당연히 레드카드를 받았다. 한국은 어렵사시 2대1로 승리는 거뒀으나 경기력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후 차두리는 A매치 4경기 출장정지와 함께 1만스위스프랑의 벌금 처분을 받았다.

5. 내가 ‘차붐’의 아들이다(2004년 12월19일 친선경기 독일전 3-1 승 /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차두리는 분데스리가에서 활동한 아버지 덕분에 유년시절을 독일에서 보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프로생활도 독일에서 하고 있던 차였다. 당연히 친선경기라도 독일전에는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물론 2002년 월드컵 4강전 복수의지로 불타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차두리는 이 경기에서 측면을 지배하다시피 했다. 후반 막판에는 조재진의 골을 돕기도 했다. 3개월전 폭행으로 A매치(월드컵예선) 4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으며 비판받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차미네이터’의 질주는 누구도 막지 못했다.

6. 남자의 눈물 (2010년 6월26일 남아공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 1-2 패 / 포트엘리자베스 넬슨만델라베이 스타디움)

2010년 월드컵에서 축구대표팀은 사상 최초로 원정 16강의 업적을 달성했다. 박지성의 탈춤 세리머니, 이정수의 동방예의지국 슛, 박주영의 프리킥 등이 깊은 인상을 남기며 조별예선을 통과했으나 16강 상대는 수아레즈가 버티고 있는 우루과이였다.
2010년을 기점으로 전성기에 다다른 수아레즈는 단숨에 두 골을 집어넣었다. 이청용이 한 골을 만회했지만, 더 이상은 역부족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차두리는 말 그대로 펑펑 울고 말았다. 안정환, 김남일 등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임을 직감한 베테랑 선수들이 그에게 다가와 꼭 안아줬지만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경기는 차두리의 월드컵 마지막 경기이기도 했다.

   
▲ 31일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대한축구협회가 차두리 고별전을 위해 만든 포스터

7. 봤냐 60m 폭풍 드리블? (2015년 1월22일 호주아시안컵 8강 우즈베키스탄전 2-0 승 / 멜버른 렉탱귤러 스타디움)

올해 열린 아시안컵의 주인공은 차두리였다. 대회 직전까지 컨디션이 정상에 다다르지 못했던 차두리는 1차전 선발을 김창수에게 양보해야 했다. 그러나 전반 초반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김창수가 실려나가자 어쩔 수 없이 차두리가 나서야 했다.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차두리는 펄펄 날았다. 특히 쿠웨이트와의 2차전에는 오른쪽 측면에서 폭풍같이 질주하다 간결한 크로스로 남태희의 헤딩골을 만들어냈다.
8강전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후반 교체투입된 차두리는 1대0으로 앞서던 연장 후반 14분 우리 진영부터 또다시 앞만보고 질주했다. 그렇게 무려 60m나 달린 그는 수비수 사이로 살짝 공을 흘렸고, 이를 이어받은 손흥민은 침착하게 오른쪽 윗 그물을 흔들었다. 쐐기골이자 아시안컵 경기 중 가장 ‘열광적으로 환호한 골’이었다.

8. 마지막 A매치(2015년 3월31일 친선경기 뉴질랜드전 /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14년간 태극마크를 달았던 차두리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기회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발 투입 후 전반 종료 직전 차두리를 교체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남은 시간은 40여분 남짓이 될 듯 하다. 상대가 피파랭킹 135위 약체이고, 지난해 8월 감독교체 후 승리가 없다는 점에서 대표팀 실험상대로는 딱이다.
차두리는 오랫동안 맡았던 풀백으로 출전한다. 팬들은 폭풍질주 후 한골 시원하게 넣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연 차미네이터가 마지막으로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온 국민이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