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공약이 발목...희생자명단 반란군주모자 포함 문제

   
▲ 조우석 논설위원
“올해도 대통령 참석이 없이 국가추념식이 진행된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배 이후) 9년째 대통령 없는 제주4.3희생자 추념식이다. 3일 치러지는 추념식에 이완구 총리가 참석한다. 대통령이 약속한 4.3의 완전해결은 반쪽짜리에 그치게 됐다. 대통령 스스로 대통령령(令)으로 정한 추념식에 참석치 않으면서 도민의 염원은 묵살됐다.”
 

제주에서 발행되는 한 일간지 기사의 일부다. 글 곳곳에 중앙정부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하고, 대통령이 현지 행사에 참석하기만하면 지역의 숙원이 모두 해결될 것 같은 톤이다. 문제는 이 기사가 지적한“대통령의 4.3의 완전해결 약속” 대목이다.
 

유감이다. 3년 전 대선 유세 당시 제시됐던 잘못된 공약 하나가 지금 어떤 부작용을 낳고 있는지를 새삼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제주 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때 벌써 추념일 지정이 반 대한민국 폭동의 주모자까지 추모하는 결과라는 우려가 일부 있었다.

   
제주4.3사건을 기념하기위해 조성한 평화공원./제주평화공원 사이트

반 대한민국 폭동의 주모자까지 추모하는 결과

그럼에도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은 지난해 처음으로 국가 행사로 격상됐다. 그동안 제주도와 제주 4.3평화재단이 주관하던 위령제는 지난해부터 정부가 주관했다. 이때 대한민국 건국의 정신과 국가 정체성은 실종됐고, 혼란이 거듭됐지만, 정치권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당시 우근민 제주지사가 “4.3 추념일 지정은 지난 2000년 4.3특별법 제정과 2003년 고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더불어 제주 4.3의 해결에 한 획을 긋는 역사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거창하게 말했던 게 증거다.
 

그런 원칙없는 정치 논리 때문에 진통은 거듭된다. 아니 더 악화되는 분위기다. 현지 언론과 정치인들은 대통령의 추념식 참석이 “화해와 상생의 정신”의 구현이라고 무원칙하게 주장하는 형편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우파단체는 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소에 남로당 간부들의 위패가 있다며 희생자 재심의를 촉구했다. 그 전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도 “4·3희생자로 지정된 일부 인사가 무장대의 수괴급이라는 논란이 해소되지 않으면 대통령의 위패 참배가 어렵다”고 했다. 희생자 재심의를 요구한 것이다.

   
▲ 제주4.3사건 희생자명단에는 5.10선거를 방해하려는 남로당 반란군 주모자들도 포함돼 있다. 정부가 추모식을 주관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참석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평화공원내 희생자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 제주평화공원 사이트

건국 67년인 올해까지 이런 진통은 너무도 한국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소모적이다. 결국 4. 3 문제는 사회통합과 국가정체성의 원칙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빚어진 혼선이다.
지난해 문화일보는 사설에서 4· 3의 국가추념일 지정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흔들고 국가 정체성을 그늘지게 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는데, 그게 정확하다.
 

1948년 당시 38선 이북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제헌국회 구성을 위한 5ㆍ10 총선 일정이 공표되자 남로당이 ‘2ㆍ7 대구폭동’에 이어 4월 3일 제주 관내 경찰관서를 습격했던‘준(準) 전시상황’발생이 4· 3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저지하려 했던 제주 4ㆍ3을 국가가 앞장서 기념하는 것은 모순 중의 모순이다. 그건 국가적 자해(自害)일 뿐이다. 문제는 정치권이다. 그들의 이른바 여론에 대한 무조건 영합과 지역주의 영합의 태도는 비판 받아야 한다.

잘못된 여론에 대한 무조건적 영합 태도 비판 받아야

2년 전 안전행정부의 국가추념일 예고안에 대해 “도민 화합의 첫 발”(새누리당 제주도당), “도민의 60년 숙원”(민주당 제주도당)이라며 여야는 환영 일색이었다. 무조건적 통합이란 원칙 없는 논리에 매달린 것이다.
제주4.3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하는 정치논리에 경계를 한 분은 한둘이 아니다. 정경균(81) 서울대 명예교수가 그 중의 한 명이다. 6.25 때 제주도 피난시절 4.3사건을 접했던 그는 4.3사건의 국가추념일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을 지난해 안전행정부에 보내 주의를 환기시켰다.
 

“4.3사건을 정부가 주동해서 기념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을 김정은에게 바치는 것과 손톱만큼도 차이가 없습니다. 정치논리로 국가가 기념하는 것은 호국영령을 모독하는 국가적 자해(自害)행위가 될 것이라는 한 일간자의 용기 있는 사설에 저는 공감을 합니다. 일부 한국사 교과서가 4.3사건 주모 세력과 의도는 외면한 채 진압만 부각시키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위령의 선을 넘어서는 국가추념일 지정은 재고돼야 합니다.”
 

물론 그는 아무런 답장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진실은 외롭지 않다.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길언(75) 전 한양대 교수도 “4.3 희생자 추념식은 형식적으로는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행사지만, 실제론 남로당 무장봉기인 4.3사건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행사로 방향이 맞춰져 있다.”는 입장이다.
 

4.3사건이 마무리된 1954년 9월 21일을 추도일로 잡는 게 설득력이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희생자들 대부분도 이념 때문이 아니라 유격대와 진압군 사이에서 쫓겨 다니다 희생된 피해자들인데, 이들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투쟁에 나선 전사(戰士)처럼 묘사한 것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안타깝게도 ‘임을 위한 행진곡’ 국가 공식기념곡 지정 논란에서 보듯 논란은 거듭된다. 원칙 없이 하나를 양보할 경우 둘 셋으로 이지는 도미노 현상이 우려되고, 그 경우 기왕에 훼손됐던 대한민국 정체성은 더 흔들릴 것이다. 우리는 그걸 경계한다. /조우석 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