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거부 대기업노조 연연말아야...정부가 개혁안 제시해야

   
▲ 이의춘 발행인
2003년 독일 사민당 슈뢰더 총리는 피터 하르츠 폭스바겐 인사담당 이사를 집무실로 불렀다. 노동시장 개혁안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노조와 오랫동안 임단협협상을 진행해온 경륜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저성장과 고실업에 시달리는 독일경제를 살리기위해선 특단의 노동개혁이 필요했다.

하르츠 개혁은 독일경제가 바닥에서 헤매는 상황에서 탄생했다.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던 독일을 다시금 유럽의 우등생으로 환골탈태시켰다. 비록 슈뢰더는 하르츠개혁으로 선거에서 패배했다. 노조의 불만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하르츠 개혁의 열매는 정작 앙겔라 메르켈 현총리가 따먹었다.

“정치인(politician)으로서 국민들에게 표를 얻는데는 실패했다. 국가를 생각하는 정치인(statesman)으로선 선거패배에 개의치 않는다.”
하르츠개혁은 선거를 의식하지 않은 지도자의 리더십에서 나왔다. ‘어젠더 2010’으로 불리는 하르츠개혁은 노동시장을 유연화시키는 게 핵심이다. 해고를 보다 쉽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규직 고용보호 장치를 완화한 것. 수습기간과 기간제 근로자 등 사용기간도 대폭 늘렸다. 시간제와 한시적 일자리도 확대했다.

죽어가던 독일경제는 하르츠개혁으로 꿈틀댔다. 투자와 일자리가 증가했다. 성장도 회복세로 돌아섰다. 유럽의 중심국가 위상을 회복했다. 실업률은 지난해 6.7%까지 하락했다. 2001~2011년 노동비용도 19.4%로 프랑스 등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가장 낮았다. 하르츠개혁은 고실업 고복지 저성장 독일병을 치유했다. 메르켈총리는 독일병을 고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전임 슈뢰더총리에게 감사한다는 말까지 했다.

독일이 재도약한데는 정치지도자들이 선거와 정권교체를 의식하지 않고 국가경쟁력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노조에 인기가 없는 노동개혁안을 관철시킨 슈뢰더의 확고한 리더십이 결정적이었다.

한국도 노사정대타협을 통해 노동개혁을 추진중이다. 난산이다. 합의시한을 넘겼다. 좀처럼 옥동자가 나오지 않는다. 합의가 불가능하다. 개혁대상인 노조가 기득권을 좀처럼 내려놓지 않는다. 통상임금 정년연장 등에서 챙길 것은 챙기면서 희생과 양보를 하지 않는다. 한국노총은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임금피크제, 비정규직 문제, 해고요건 완화 등 5개 현안에 대해 마이동풍이다. 노사정핵심 이슈에 대해 모조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왜 협상장에 나왔는지 의아스럽다. ‘기브앤 테이크’라는 협상의 기본이 안돼 있다. 사용자를 투쟁대상으로 간주하는 좌파노조의 벽창호성향이 강하다. 상생하려는 타협의 자세가 없다.

정부는 노사정대타협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촉진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개혁대상인 대기업노조가 지금처럼 기득권을 전혀 포기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 대기업노조가 통상임금 해고요건완화 등 핵심이슈에 대해 전혀 양보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노사정위에 연연하지 말고 노동시장유연성 개혁안을 제시해서 추진해야 한다. 전체 근로자의 10%에 불과한 대기업 기득권노조와의 협상보다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자 등의 고용안정과 일자리창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전화를 걸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는 한국노총은 대기업 노조다. 전체 근로자의 5%만 대변하고 있다. 연봉도 평균 1억가량 된다. 가장 특혜받은 정규직 노조원들이다. 노사정에 참여하지 않은 민노총도 가장 혜택받은 강성노조다. 민노총도 전체 근로자의 5%미만을 대변하고 있다. 전체 근로자의 10%인 대기업노조가 철밥통처럼 사수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노사정에서 배제된 나머지 90% 근로자들은 누가 대변할 것인가? 절대다수의 비정규직, 중소기업근로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없는 청년 실업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직장과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의 눈물은 누가 닦아줄 것인가?

국민들은 노사정에 참여하는 대기업노조의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노동시장 개혁을 거부하는 대기업노조야말로 투자와 일자리를 가로막는 세력이라는 것을...비정규직과 청년실업자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비정규직들은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려서라도 일자리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청년들은 비정규직이라도 출근하길 간절히 원한다. 문제는 대기업 노조가 정규직으로 온갖 특혜를 누리면서 이들의 일자리를 가로막고 있다. 청년 실업자들이 대기업노조를 찾아가 ‘항의’해야 한다. 특혜와 기득권에 안주하는 완생들이 장그래같은 미생들의 아픔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따져야 한다. 장그래는 기득권 완생들에게 양보를 요구해야 한다.

정부는 노사정협상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비정규직법을 개혁해야 한다. 정규직 과보호를 철폐해야 한다. 성과가 낮은 근로자들에 대한 해고보호 조항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시간제 일자리도 대폭 늘려야 한다. 노동관계법을 노동시장 유연화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정부는 노사정에 목매지 말고,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소수 대기업노조와 협상시한을 연장해야 별 효과가 없다. 노조가 양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노총도 문제지만, 민노총은 모든 개혁을 거부하고 있다. 벌써 4월 총파업을 선언하며 정부와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 국가경제와 청년실업 해소, 일자리나누기는 안중에도 없다.

정부는 중소기업근로자, 비정규직, 청년백수의 고통과 한을 어루만져야 한다. 한국판 ‘하르츠개혁’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

박근혜정부는 노동개혁을 흐지부지해선 안된다. 대기업노조의 총파업위협에 굴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은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기업이 살아나고, 일자리도 늘었다. 아베의 과감한 3가지 과녁정책이 적중하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해 무려 25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일본기업의 대졸채용도 지난해보다 15%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증시도 최고치를 경신했다.
일본 경제의 부활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에 힘입은 것이다. 엔화의 무한정 살포에 의해서만 일본경제가 살아난 것은 아니다. 정부와 노사가 합심해서 경쟁력강화에 주력한 것을 중시해야 한다.

노조가 지금처럼 개혁을 거부하면 국민적 분노를 초래할 것이다.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기득권 사수에 대해 거세게 반발할 것이다. 정부는 용기와 소신을 갖고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한국경제를 살리는 길은 노동시장 유연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것만 잘해도 박근혜대통령은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다. [미디어펜=이의춘 발행인 jungleel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