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펜=김진호 부사장
축구 종주국을 자처하는 영국의 프미미어리그(EPL)의 인기는 하늘을 찌릅니다. 영국민의 일상이자 삶의 루틴인 축구경기 관람을 위해 영국 정부가 일찍 방역해제에 나섰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최근 EPL에서도 명문으로 꼽히는 첼시FC가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잘나가는 구단을 매각하려는데 영국 정부가 24조 원에 달하는 매각을 중지시켰기 때문입니다. 아브라모비치는 한 푼의 돈도 챙기지 못할 뿐 아니라 영국으로 입국도 할 수 없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아브라모비치는 러시아 석유재벌이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유명합니다. 소위 올리가르히(Oligarchy)입니다. 당연히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로 인해 제재대상이 됐습니다. 알려진 대로 '올리가르히'는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각종 국영기업들을 헐값에 사들이거나 러시아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사유화해 엄청난 부(富)를 축적한 집단입니다. 당연히 이 같은 특혜는 권력의 비호와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요. 

이들은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특수계층을 생성했고 법을 무력화하는 귀족사회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해외로 빼돌린 재산을 안전망으로 러시아 국내에서는 초법적 지위를 누리며 러시아 국민의 증오 대상이 되었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푸틴의 지지는 확고하지만 올리가르히에 대한 반감이 푸틴으로 번지는 양상입니다. 자칫 권력에 기생하는 올리가르히로 인해 푸틴 마저 낙마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전쟁같은 선거를 치룬 우리사회의 헐떡이는 숨 가쁜 소리가 여전한 요즘입니다. SNS에는 마치 전쟁의 후폭풍인 양 아직까지 조롱과 분노가 맞걸이하고 있습니다. 승자는 승자 몫을 챙기기 위해 발길이 바빠졌습니다. 승자의 이야기는 실시간으로 전해지기에 줄이고 패자인 민주당 쪽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0.73% 포인트라는 미세한 차이는 오히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강한 욕망을 부추깁니다. 고개를 흔들고 흐린 눈을 껌뻑이지만 허망함은 가시지 않습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역사는 진전돼야 한다며 후일을 도모하는 손길들도 바빠졌습니다. 하지만 소주잔을 들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망치질을 하면서도, 전철 손잡이를 잡고도, 자판을 두드리면서도 승인과 패인을 분석하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은 왜 졌을까. 다시 정권을 탈환할 수 있을까.

   
▲ 지난 2002년 12월23일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청와대 현관에서 만나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은 지도부 전원이 사퇴하면서 민심을 몰랐다고 반성합니다. 반성한다면서 아쉬움을 뒤로 합니다. 차마 "유권자들이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했다"는 속내는 드러내지 못합니다. 속내가 복잡해서 인지 정작 국민들이 듣고 싶은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당이라면서 가난을 양산했고, 서민 정당이라면서 강고한 엘리트집단이었음을 고백하지 못합니다. 

국민의힘은 태생부터 한국적 보수정당임을 표방했고, 선거과정에서도 마초이즘에 찌든 모습으로 비난을 샀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진보적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위선을 떨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민주당은 태생부터 노동자, 서민을 위한 민주정당임을 자처했고 모든 정책이 함께 잘사는 민주적인 사회에 있음을 공언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민주당은 철저한 엘리트 정당이고 화석화된 계급으로 인해 서민들이 다가설 수 없는 정당이었습니다. 올리가르히처럼 군집해 권력을 향유하면서 서민과 노동자의 아픔은 절차적 정치적 시스템에 방생한 태만함이 문제였습니다. 학생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 시민운동의 해묵은 레토릭에 머물러 진보하지 못한 무지가 문제였습니다. 

또 지난 5년간 민주당은 늘 국민을 가르치려 했고,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았던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아니 지난 30년간 국민을 정치공학의 대상으로 보았던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입으로는 노무현을 되뇌면서 상록수를 열창했지만 진정성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5년 내내 반복된 민주당 올리가르히들의 부패는 보수당의 그것보다 깊고 넓었습니다. 그들이 쌓아올린 기득권의 성벽은 높고 넓었습니다. 

이제 김대중·노무현의 깊게 배인 땀 냄새가 살아나길 기대하며 투쟁시인 송경동의 외침을 덧붙여봅니다.  /미디어펜=김진호 부사장 김진호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송경동

어느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는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미디어펜=김진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