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과 자연, 역사와 함께 걷는 길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서울 마포구 망원동(望遠洞) 동명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9호인 망원정에서 유래됐다.

망원정은 1424(세종 7) 태종의 둘째아들이자, 세종의 친형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이 별장으로 처음 지은 정자다. 해마다 봄가을에 임금이 농사일을 살피고, 수군들의 군사훈련을 관람하기 위해 행차할 때 사용하던 곳이다.

세종(世宗)이 농사 형편을 살피기 위해 처음 거동, 새로 지은 정자에 올랐을 때 마침 비가 내려 온 들판을 흡족하게 적시므로, ‘기쁜 비를 만난 정자라는 뜻으로 희우정(喜雨亭)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1484년 성종의 친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소유로 바뀌고, 월산대군이 정자를 보수하며 먼 경치도 잘 볼 수 있다는 뜻으로 망원정으로 고쳤다고 한다.

1506년 연산군이 망원정을 확장하려 했으나,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공사가 중지됐다. ‘양화나루서쪽에 있는 망원정은 1925년 홍수로 유실됐으나, 1989년 복원돼 현재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마포구이름은 당연히, ‘마포(麻浦) 나루에서 따 온 것이다.

조선시대 마포나루의 본래 이름은 삼개나루였다.

인근 와우산, 노고산, 용산의 구릉이 한강으로 뻗어 내린 곳에 3곳의 포구가 있었다. 이를 용호’, ‘마호’, ‘서호라 불렀고 세 곳을 묶어서 삼개 포구(浦口)’라 했다

그런데 한자 표기를 위해 3개라는 뜻의 삼() 자를 베 짜는 삼을 의미하는 마() 자로 잘못쓰면서, 마포가 됐다고 한다.

마포나루는 지금의 마포대교 북단, 용강동 마포유수지(麻浦遊水池) 부근에 있었다.

이곳이 마포 새우젓장수’, ‘서울 깍쟁이등의 말이 생겨난 진원지였고, 조선시대 삼남의 물자가 모여드는, 한양의 관문나루였다. 여기서 선비들이 벌이는 한가한 뱃놀이를 마포범주(麻浦泛舟)라고 불렀다.

   
▲ 망원정(옛 이름은 희우정)/사진=미디어펜

오늘은 이 두 곳을 이어 걷는, ‘마포한강길트래킹에 나섰다.

지하철 2호선과 6호선이 교차하는 합정역(合井驛)에서 내려, 8번 출구로 나왔다. 한강 쪽으로 가다가 마지막 길에서 우회전한다. 이 길이 희우정로인데, 바로 망원정의 옛 이름이다. 3번째 사거리 마이바움 합정 아파트앞에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 직진하면, 정자가 보인다.

망원정(望遠亭)은 밖 현판은 망원정이지만, 안에 걸린 것에는 희우정이라고 돼 있다.

정자 치고는 매우 규모가 크다. 누각(樓閣) 수준이다. ‘솟을대문과 기와 담장도 둘렀다. 하긴 임금 친형의 별장이니, 이 정도는 돼야지.

망원정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한강변으로 나갈 수 있다. 강변북로(江邊北路)를 다리를 통해 건너고, 동산을 지나 망원한강공원(望遠漢江公園)으로 내려선다. 이 길은 마포 걷고 싶은 길 6코스이기도 하다.

오른쪽에 성산대교’, 왼편엔 양화대교가 한강을 가로지른다.

한강공원을 따라 동남쪽으로 걷는다. 자전거들을 피해, 흙길로 접어든다. 갈대와 억새가 무성하다. 한쪽엔 송전탑(送電塔)도 높아 솟았다.

양화대교 밑을 지나면, ‘잠두봉 선착장이 있고, ‘절두산 순교자박물관이 올려다 보인다.

잠두봉이 절두산의 옛 이름이다. 누에의 머리 같다고 해서 잠두봉으로 불리다가, 병인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도들의 머리가 여기서 잘렸다고 해서, 절두산(切頭山)으로 산 이름이 바뀌었다.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이자, 천주교 순교성지(殉敎聖地).

왼쪽 위 마포 새 빛 문화 숲앞에, 당인리(唐人里) 발전소가 있다.

당인리 발전소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화력발전소(火力發電所), 수도권 전력보급과 근대산업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발전소다. 그 보존가치가 있음을 인정받아, 2013서울 미래유산(未來遺産)’으로 등재됐다.

일제 때인 19296월 당시 경성전기에서 건설에 착수, 193011월 발전을 개시한 이래 증설을 거듭, 수도권 전력 공급의 일익을 담당했다. 또 한국 최초로 열병합발전(熱竝合發展)을 시작했고, 지금은 서울 도심의 매연 발생을 줄이기 위해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한다.

그래서 한쪽 건물엔 한국중부발전(韓國中部發電), 다른 쪽 건물에는 한국지역난방공사(韓國地域煖房公司)라고 돼 있다. 다른 두 공기업이 한 자리에 공존한다.

곧 한강 내 무인도 밤섬이 보인다.

밤섬은 서강대교(西江大橋)가 관통하는 지점 밑에 있다. 밤섬(栗島)이라는 이름은 섬 모양이 밤처럼 생겨서 붙은 것이다.

원래는 고립된 하중도(河中島)였으나, 여의도가 점점 넓은 섬으로 발달함에 따라, 물이 줄면 여의도에 이어진다. 기반암은 단단한 바위 층이고, 섬의 동부와 서부의 하식애(河蝕崖)작은 해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경관이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강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어, 이를 율도명사(栗島明沙)로 부르며, ‘서호팔경의 하나로 꼽았다.

1968년 여의도 제방을 쌓기 위한 돌을 조달하기 위해 섬을 폭파하기 전에는 어업, 도선업, 조선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살았다. 이후 토사가 쌓이면서 섬의 면적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또 나무와 풀이 우거지고 새들이 모이면서, 도심 속의 철새 도래지(到來地)로 널리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자연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섬 출입이 전면 통제됐고, ‘여의도 순복음교회앞 한강변에 철새를 조망하기 위한 조망대가 조성됐다.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인 원앙 1종과 밤섬 번식조류인 흰빰검둥오리, 개개비, 해오라기, 꼬마물떼새 등이 살고 있으며, 철새 5000여 마리가 찾아온다.

2012년에는 람사르 습지(濕地)’로도 지정됐다.

왼쪽 언덕 위로, 유명한 음식점 서강8신구 강변(江邊) 연가 아파트가 보인다. 이 곳은 조선시대 때 서강 나루터였다.

잠시 후 신수 나들목이 나온다. 계속 강을 따라 걷는다. 강변북로 고가도로가 함께 간다.

강 건너 여의도(汝矣島)에는 파크원 타워가 높이 솟았다. 그 뒤 콘래드 호텔도 꽤 높다. 전엔 인근에서 가장 높았던 ‘LG 쌍둥이 빌딩, 이젠 초라하다.

이제 마포대교(麻浦大橋)가 지척이다. 걷기의 종점이다. 마포종점(麻浦終點) 노래가 생각난다.

마포종점은 1968은방울자매가 처음 발표한 가요고, 1996년 문희옥이 리바이벌 곡을 발표했다. ‘국민애창곡이라 할 만하다. 일제 때부터 1968년까지, 청량리를 오가는 서울시내 전차(電車) 노선의 종점이 마포였다.

길 오른편에, ‘삼개포구표지석과 마포나루에 대한 안내판이 보인다.

   
▲ 마포나루 터/사진=미디어펜

그 오른편 도로 콘크리트 벽에, ‘마포나루터를 형상화한 철판 조형물이 붙었다. 돛단배와 버드나무, , 태양 등을 표현했다.

한쪽 구석에는, 토정 이지함(李之菡) 선생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선생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호는 수산또는 토정(土亭), 시호는 문강이다. 마포 강변에 흙으로 언덕을 쌓고, 굴을 파서 거처로 삼고, 위에는 정사를 지어 토정이라고 하면서, 평생을 청빈(淸貧)하게 살았다.

신년 초, 사람들이 재미 삼아 보는 토정비결(土亭秘訣)을 지은 이가 바로 선생이다.

마포대교 북단 용강동 마포유수지 부근이 토정선생의 집터였는데, 지금은 주차장이 됐다. 대신 인근 한강삼성아파트내에 토정 이지함 선생 영모비(永慕碑)’가 있다고 한다.

마포 나들목을 통해, 한강공원을 빠져나왔다.

골목사거리 2곳을 지나면, 토정로(土亭路)가 나온다. 이 길은 마포음식문화거리이기도 하다. 특히 돼지갈비가 유명한 곳이다.

길 양쪽에 즐비한 식당들 중 마포옥(麻浦屋)2018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유명한 노포(老鋪).

이 곳 용강동지명은 마을의 지형이 용의 머리에 해당된다고 해서 용머리로 불리던 곳이 있고, 마을 앞에 한강이 있는 관계로 용강(龍江)이라고 한 데서 비롯됐다. 용산의 자와 서강의 자를 합성한 동명이다.

지하철 5호선 마포역 1번 출구 앞에, ‘마포 용강 맛깨비 길안내판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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