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촌 잡동사니 시위 부채질할 것...파리 샹젤리제 봐라

   
▲ 이철영 이사
매일 아침 저녁으로 지나다니는 곳이지만 지날 때마다 짜증이 나는 곳이 벌거숭이 광화문광장이다. 말이 광장이지 난민촌 같은 꼬락서니에 온갖 잡동사니 행사와 시위들로 난장판이 벌어지는 황량한 콘크리트 벌판이다.

서울시의 역사를 상징하는 은행나무 고목이 우거졌던 중앙분리대를 밀어버리고 도로 중앙에 삭막한 콘크리트 광장을 만든 것부터가 납득이 안 가지만, 이제는 서울시장이 멀쩡한 대로를 막아가며 광장을 확장하겠다니 그런 발상의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이 “광복 70년 기념사업”을 공모·심사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서측 5차선 도로를 폐쇄하고 2017년까지 광장 확장 공사를 마치겠다는 '국가상징광장 조성안'을 “광복 7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제출했다. 광화문대로(세종대로의 일부) 한쪽을 막아 광장을 확장하여 “시민이 편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광화문광장을 보행 친화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는 게 서울시가 내세우는 명분이다.

현행 '광화문광장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는 광화문광장에서의 정치적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스스로 이런 원칙을 깨고 세월호 유족들의 농성 편의를 위해 이순신 동상 앞에 천막 13동을 설치했다. 이들 천막들은 세월호특별법이 통과된 후에는 ‘선체완전인양’ 등을 외치며 여전히 버티고 있다.

서울시가 내놓은 ‘광화문광장확장계획’에 대해 곳곳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우선 경찰이 “도심 교통 혼잡”과 “대규모 불법집회 발생 가능성” 등의 이유로 광장 확장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정하고 국무조정실에 공식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1년간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앞을 독점한 채 소란을 피워온 사람들이 누구인가? 생계형 노점상들에게는 시민의 불편과 교통체증을 유발한다는 등의 이유로 철퇴를 내리면서 이순신동상 앞에 좌판을 벌이고 시민의 불편뿐만 아니라 불만과 분노를 자아내고 있는 시위 텐트는 왜 걷어내지 않는가?

이런 판국이니 세종문화회관 앞에 광장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시위 텐트촌을 조성하려는 것이 박원순 시장의 속내가 아닌가 하고 의심할 만하지 않은가? 경찰에서도 기존의 “청계천광장·서울광장은 주말마다 시위대가 몰려와 시민들의 휴식 장소를 잠식하고 있다"며 "광화문광장이 확장되면 이 광장들처럼 대규모 집회·시위 장소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서울시장의 속내를 점치기 전에 우선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와 그 끝자락에 위치한 ‘콩코르드’ 광장의 예를 살펴보자. 프랑스의 상징적인 대로인 ‘샹젤리제’는 좌우에 명품 상가, 호텔, 식당, 노상 카페, 극장, 은행, 기념품점, 항공사 사무실 등 각종 상업시설들이 즐비하여 시민들과 세계 각국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그럼에도 10차선 대로에 중앙분리대도 없이 도로 중앙을 택시 정류장으로 활용하면서 차량과 행인들이 원활하게 소통하고 있으며, 국가행사 때는 이 도로 전체를 행사광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콩코르드’ 광장은 역사적 의미만 지닌 채 유명세만큼 크지도 않으며 광장 가운데의 분수대가 로터리 역할을 하는 정도의 기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프랑스혁명기념일’과 같은 국가적 행사는 ‘샹젤리제’ 대로를 막아 행사광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광화문광장 서측도로를 공원으로 확장시켔다는 방안을 밝혔다. 광화문광장을 시위텐트촌으로 만들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광화문광장은 이미 난민촌같다. 세월호 등 온갖 단체들이 몰려와 난장판을 만들었다. 박원순은 조례까지 어겨가며 정치적 시위를 방치하고 있다. 좌파 진보단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광화문광장을 시위와 반정부시위 마당으로 악용하고 있다. 이순신장군과 세종대왕이 통탄한 일이다.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대로인 광화문대로를 파리의 ‘샹젤리제’에 비견(比肩)한다면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은 ‘콩코르드’ 광장쯤에 해당할 것이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을 시민이 편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보행 친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지만, 파리의 ‘샹젤리제’와는 달리 광화문대로의 좌우에는 몇 개의 상업시설들을 제외하면 정부종합청사, 대사관, 대형 오피스 빌딩들 위주로 들어서 있어서 일반 행인들이 한가롭게 걸어 다니거나 앉아서 쉬는 공간이 전혀 아니다.

결국 경찰의 우려처럼 광화문 광장이 확장되면 집회나 시위자들이 몰려들어 통제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 뻔하다. 이점에 대해 서울시는 "집회는 더 엄격히 통제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 하지만 세월호사고 관련 시위자들에게 텐트까지 쳐주는 서울시를 누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면, 박원순 시장은 무슨 생각으로 ‘광화문광장 확장’ 문제를 꺼내는 것일까? '광화문광장 확장안'은 2006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광화문광장을 조성할 당시에도 이미 검토됐던 내용이다. 당시 교통대란 및 청와대, 미대사관 경비 문제 등을 고려해 세종대로 한가운데에만 광장을 조성하는 것으로 결정된 것이며 그 당시나 지금이나 상황이 크게 변한 게 없다.

박원순 시장이 ‘전시행정’이라고 평했듯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07년에 서울시가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로 결정된 이래 서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며 서울 성곽길 정비, 서울 야간경관 업그레이드, 광화문광장의 리모델링과 세종대왕 동상의 설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설, 한강에 인공섬 ‘세빛둥둥섬’ 설치 등 수많은 공사와 행사들을 벌였다.

오 전 시장은 졸속이란 비난을 받으면서도 내심 청계천 복원의 업적을 남기고 대통령이 된 이명박 대통령의 뒤를 이을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정치력 미숙으로 결국 도중하차했다. 오 전 시장의 도중하차와 안철수의 도중 철수(撤收) 덕에 어부지리로 서울시장이 된 박원순 시장이 이제 대선의 꿈을 키우면서 ‘전시행정’이라고 비난했던 전임시장들의 전철을 밟으려는 것인가? 상설 시위광장을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광화문광장 확장안은 결국 전임자들보다 더 심한 ‘전시행정’ 아닌가?

   
▲ 파리의 상징적 대로인 샹젤리제는 평소에는 도로로 이용하다가 국경일 행사 땐 차량통행을 금지하고, 행사를 벌인다. 샹젤리제 좌우엔 명품 상가, 호텔, 식당, 노상 카페, 극장, 은행, 기념품점, 항공사 사무실 등 각종 상업시설들이 즐비하다. 시민들과 세계 각국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을  확장할 것을 접어야 한다. 샹젤리제거리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사진 두산백과

‘세빛둥둥섬’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박원순 시장은 오 전 시장이 2011년 1,000억 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한강 상습홍수지역에 띄웠다가 수년간 애물단지 신세가 되었던 ‘세빛둥둥섬’을 작년에 ‘세빛섬’으로 개명하고 개장했다. 필자는 지난 2011년 칼럼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인 이 인공섬이 “부유층의 결혼식장이나 부유층 젊은이들의 호화판 파티장소로 전락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박원순 시장은 민간업자를 통해 ‘세빛(둥둥)섬”에 웨딩홀, 레스토랑, 뷔페식당, 카페, 펍(pub) 등을 개업하여 이런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박원순 시장은 오 전 시장이 지난 2009년부터 추진했던 ‘서울둘레길’ 개통에 대해 “2011년 이래 4년만이다”라면서 자신이 추진해온 업적인양 선전하고 있다.

도시에서 대표적인 시민친화적 공공공간이 ‘광장’과 ‘도심공원’이다. ‘광장’이나 ‘도심공원’은 사람들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산책, 휴식하는 장소이며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이나 연인들간의 친밀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광화문광장은 어떤가? 위압적인 관공서건물과 빌딩들로 둘러 쌓여 횡단보도 사이의 거대한 중앙분리대 이상의 기능이나 분위기를 찾아볼 수 있는가? 산책이나 휴식은커녕 2개의 거대한 동상을 위시한 눈요기 감조차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그러니 훤하게 노출된 그 넓은 공간이 시위장소로 제격이 아니겠는가?

도시 설계는 풍수지리 등 지형적 조건, 기하학적 균형과 조화, 도시의 기능적 측면 등을 고려하여 이루어지며, 도로설계의 핵심은 교통소통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로의 반쪽을 막아 교통혼란과 혼선을 자초하고, 이조 때부터 광화문을 기점으로 이어졌던 ‘육조(六曹) 거리’의 좌우대칭을 흔들어 도시의 균형과 위엄까지 훼손해 가면서 광화문광장을 확장하겠다는 명분이 고작 “시민이 편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보행 친화 공간으로 만든다”는 것인가?

광화문광장이 아니더라도 ‘안전하게 걸을 길’은 가깝게는 경복궁, 삼청동, 인사동, 사직공원 등도 있고 조금 멀리는 ‘서울 성곽길’과 ‘둘레길’도 있다. 굳이 광화문 한복판을 걷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확장 운운할 바에는 차라리 지금의 광장 자체를 아예 없애고 파리의 ‘샹젤리제’처럼 탁 트인 대로로 만들어 교통소통을 원활히 하고 국가적 행사 때는 도로를 막고 광장으로 활용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서울의 역사를 상징하던 은행나무 고목도 사라지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삭막한 돌 바닥에 (세종)대왕을 궁궐(경복궁)앞 대로 한 복판에 세워놓고 눈, 비, 땡볕, 소음과 매연에 시달리게 하는 것도 난센스 아닌가?

서울은 오랜 역사와 전통이 숨쉬고 도시 한복판에 산과 강이 어우러져 풍광이 수려하고 품위 있는 도시이다. 박원순 시장 스스로 전임시장이 벌인 일들을 ‘전시행정’이라고 비난하듯이 서울시는 시장이 정치적 업적을 쌓겠다고 멋대로 훼손할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다. 아무리 지방자치제의 민주국가라고 한들 정부가 서울시의 전횡(專橫)을 뒷짐지고 보고만 있을 것인가?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 전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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