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개정 등 정치적 이슈 속셈 접근…뻔한 결말 만들어

   
▲ 김소정 기자
[미디어펜=김소정 기자]국제사회에서 한때 이목을 모았던 일본인 납북자 재조사와 관련해 북한이 결국 ‘납치 피해자’ 현황을 뺀 조사결과를 통보하기로 했다.

일본 언론이 1일 이런 내용을 보도하면서 ‘첫 통보’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당초 일본의 독자적 대북제재 해제로 북일 수교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급물살을 타던 북일 간 협상의 결과물은 뻔해진 듯하다.

작년 5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일 국장급회담 이후 납북자 협상이 급진전을 보이자 한국은 물론 주변국들이 촉각을 세우면서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양측이 합의사항으로 발표한 대로 일본인 납치자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가 이뤄지면서 일본의 독자적 대북제재가 해제되고 국교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성사될 경우 북핵 문제는 물론 동북아 정세와 남북관계에까지 미칠 여파가 컸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미국과 동등한 외교를 펼치면서 동북아 정세에 영향을 미치려는 속셈이라는 주장도 나왔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북한이 지금처럼 고립 상태에 있는 것이 더욱 위험하고, 무역을 통해서라도 국제사회로 나오게 하는 것은 나쁠 게 없다는 견해도 폈다.

납치 피해자 협상이 초기 급물살을 타자 일본은 작년 9월까지는 북한의 첫 보고서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북한은 작년 10월 말 일본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자료 공개를 거부하더니 해를 넘기고도 보고서를 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최근 일본 경찰이 허종만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의장 자택을 압수 수색하자 북한은 “중대한 정치적 도발”이라고 비난했으며, 결국 부실한 납치 피해자 조사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이나 일본 모두 정치적인 계산으로 납치 피해자 문제 해결에 나섰다가 실익이 없다 싶으니까 주춤거리며 다른 지렛대를 찾고 있는 형국이다.

   
▲ 아베 일본 총리가 북한과의 일본인 납치자 협상과 관련 헌법 개정 등 정치적 이슈화를 속셈으로 접근, 첫 단추부터 잘못 꿰 또 다른 악수를 부를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YTN 캡처
이번에 일본이 노린 것은 과거사 문제로 동북아에서 코너에 몰린 아베 총리가 납치자 문제를 들어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북일 정상회담까지 성사시켜 동북아 정세를 주도해보려고 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작년 말 총선을 치르느라 납북자 문제를 잠시 뒷전에 미루던 중 소니사 해킹 문제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맹비난하고 나서자 북일 정상회담 카드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북한 역시 지도자로 오른 김정은 제1비서에게 시진핑 중국 주석이 눈길 한 번 주지 않자 외교적 탈출구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게다가 북일수교가 체결되면 지난 1965년 한일수교 때처럼 북한은 거액의 배상금을 받게 되고, 세월이 많이 흐른 만큼 한국이 받았던 배상금보다 훨씬 더 많은 액수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이와 함께 북일 간 납치자 협상과 관련해 북한 당 중앙위원회 출신의 한 탈북자는 색다른 정보를 전했다. 북한이 일본인들에 대해 납치 행위를 일삼는 이유는 과거 일제 강점기에 대한 보복심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독립투사인 점을 내세워 정권을 잡은 김일성이 스스로를 선전하기 위해 내세울 수 있는 좋은 핑계로 보인다. 탈북자에 따르면, 실제로 김일성은 생전에 중앙당 간부 강연에서 “통일이 되면 일본을 무력으로 점령해 36년간을 통치함으로써 한을 풀겠다”는 말을 종종 했다는 것이다.

일본 징벌을 꿈꾸는 북한으로서는 납치한 일본인들을 추후 전쟁 때 길 안내자로 활용하려고 했다고 한다. 납치한 일본인들을 통해 일본 각 지방의 고유한 일본어와 풍습, 사투리까지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일본인으로 위장해 침투시킬 공작원도 양성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이번 북일 간 협상이 급진전하게 된 배경에는 당연히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을 초청하지 않으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먼저 정상회담을 연 것에 대한 반발이 크게 작용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이번에 아베 총리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김정은과 정상회담 개최를 계획했었다고 하니 이번 일본인 조사 보고서를 늦게 발표한 것도 추이를 지켜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탈북자의 전언대로라면 북한은 결코 일본인 납치 피해자 현황을 투명하게 밝히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공작원 양성에까지 관여했던 일본인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낼 리도 만무하다.

결국 앞으로 아베 총리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날지 여부는 과거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때와 같은 막후 접촉이 있느냐에 달려 있기도 하다. 고이즈미 정권 때 ‘친중파’로 구분되던 다나카 히토시 외무성 아시아 대양주 국장은 중국에서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과 비밀접촉이 잦았고, 이런 노력 끝에 북일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막후의 노력이 있었는가 하면, 당시 관방 부장관을 맡아서 고이즈미 총리를 평양까지 수행했던 아베 부장관은 ‘반중파’로 구분되던 인물이다. 북일 간 정상이 만났는데도 일본 정부가 인정한 13명의 납치 피해자 가운데 5명만 일시 귀국을 허락받게 되자 아베 부장관이 크게 반발했다는 일화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로 인기가 급상승한 아베 총리이지만 2006년 1기 정권 때 납치자 문제에서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따라서 2기 정권에서는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게다가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가 해결된다면 헌법 개정을 밀어붙일 동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의 헌법 개정은 전범 국가에서 탈피해 ‘보통 국가’로 탈바꿈하기 위한 것으로 전후 이후 꾸준히 추진되어 왔다. 1951년 1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과 평화조약과 안보조약을 동시에 체결한 이후 급속한 산업 성장에 주력할 수 있었던 일본이 초창기 거론조차하지 않았던 헌법 문제가 시간이 지날수록 주요 어젠다로 부상하고 있다.

‘일본의 전쟁이 정당했다’는 입장이 특히 강한 아베 총리가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정권 연장을 위한 지렛대로 삼으려 했다는 분석이 많다. 반면 북한은 이번에 조총련 중앙건물의 매각 중지, 조총련 간부들을 비롯한 재일동포들의 한 방문 승인, 만경봉 92호의 일본 입출항 승인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에 아베 총리가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정치 이슈화로 삼아서 접근한 것 자체가 잘못된 첫 단추인 셈이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또 다른 악수(惡手)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