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운영위 동의율 요건 완화…서울시교육청 실패 자인한 셈

지난달 31일 서울시교육청이 20개교 내외의 예비혁신학교를 공모키로 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학교 구성원 동의율 요건이 교원과 학부모가 참여하는 학교운영위원회 위원 모두 50%에서 30%로 낮아졌다는 점이다. 1000만 원의 예산 지원과 강사 인력풀 제공을 내걸고도 동의율 50%로는 20개교를 채울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그동안 혁신학교의 문제로 학력저하와 예산 남용 등이 제기될 때마다 진보교육감들이 내세운 것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었다.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학교니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혁신학교 공모과정에서 학부모의 반대로 혁신학교 지정을 철회한 중산고 사례가 나오자 시교육청은 슬그머니 동의율 요건을 50%에서 30%로 낮췄다. 70%가 반대해도 진행할 수 있다는 논리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패권주의다. /사진=연합뉴스
문용린 전 교육감 당시 혁신학교 평가와 재지정을 둘러싸고 소위 진보진영에서는 이 논리를 줄기차게 들이댔다. 김형태 전 서울시의회 교육의원은 “혁신학교는 공교육의 대안을 넘어 표준으로 자기 매김하고 있다…학생들이 혁신학교로 몰리고 학부모들이 혁신학교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더는 뉴스거리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서울형 혁신학교 학부모 네트워크도 학부모 만족도가 96%라는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는 “학부모들 사이의 입소문도 좋다. 그 덕분(?)인지 심지어 혁신학교 주변 아파트 값이 들썩인다는 말까지 나온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심지어 일부 보수 언론에서도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일부 교사와 학부모들은 만족도가 높은 반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떨어지고 교사들이 예산을 방만하게 사용해 개선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조희연 교육감 본인도 “ 혁신학교가 확대되어 학생, 학부모, 교사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인터뷰를 했다.
선거가 끝나자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등은 보수 후보 분열이라는 명백한 요인은 애써 무시하면서 “학부모들은 혁신교육을 지지한다. 혁신학교를 없애려고 한 문용린 후보가 고전한 이유”라고 분석했다.

조 교육감이 혁신학교 확대 드라이브를 걸자 여기저기서 논란의 학력 문제 대신 학부모 만족도를 근거로 지원사격에 나섰다. 일례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김수영 양천구청장 “어머니들도 혁신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만 혁신중학교에는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며 신월동 지역에 혁신 중학교 유치하겠다고 했다.

진보언론도 “학교폭력은 크게 줄고, 학생·학부모 만족도는 꾸준히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시교육청은 혁신학교 교원들이 재지정을 희망하는 이유 1위가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아서’라는 설문결과를 발표했다.

심지어는 혁신학교가 공모 미달이 되고 나서도 학부모들은 원하는데 교장들의 반대와 무관심으로 미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애써 하는 홍보와는 달리 혁신학교 공모과정에서 학부모의 반대로 혁신학교 지정을 철회한 중산고 사례가 나오자 시교육청은 슬그머니 동의율 요건을 50%에서 30%로 낮췄다.

보통 예산을 특별히 지원하는 학교를 공모하고 지정할 때는 구성원의 의지를 중요한 요소로 본다. 물론 학교의 종류에 따라 그 구성원의 의지를 심사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일례로 현 정부가 추진해온 자유학기제를 비교해볼 수 있다. 자유학기제 연구학교의 경우 교원 90%, 학부모 83%의 찬성을 받아 지정했다. 30%의 동의율이 얼마나 낮은 동의율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른 형태의 공모 지정에 비해 낮다는 얘기도 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민주진보’라는 간판을 달고 당선된 교육감이라면 절차적 민주성은 확보해야 하는데 다수결의 원칙은 무시하고 ‘소수결’을 하겠다고 나선 모양새다. 교육감을 지지하는 30%가 원한다면 다수인 70%가 반대해도 진행할 수 있다는 말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패권주의다.

정말로 지금껏 소위 진보진영이 홍보해왔듯이 집값이 뛸 정도로 학부모에게 인기가 많다면, 학부모들이 혁신학교를 선호하는 게 뉴스거리도 아니라면, 시민들이 혁신학교를 원해서 조희연 교육감이 당선된 것이라면,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아서 교사들이 재지정을 희망한 것이라면 그동안 큰 덕을 보고 있던 ‘민주’의 가면을 벗어버리면서까지 동의율을 낮출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시교육청은 동의율을 낮췃다. 그동안 학부모들이 원하는 학교라는 것은 의제를 이끌어가기 위한 선동이었을 뿐,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예비혁신학교 20개교를 채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얘기다.
절차적 민주성을 훼손하면서까지 동의율 요건을 50%에서 30%로 낮춘 선택이 20개교라는 혁신학교 확대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는 공모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그 결과와 상관없이 서울시교육청은 스스로 대다수 학부모가 혁신학교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박남규 교육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