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연차일수록 트라우마 빈도 높아
사건팀·법조 등 사회부 시절 트라우마 경험 가장 많아
[미디어펜=김태우 기자]현직 기자 10명 중 8명은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심리적 트라우마를 느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기자들의 트라우마 경험 빈도가 이처럼 높음에도 트라우마 관련 사전 교육이나 심리상담 등과 같은 후속 지원을 받아본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6일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여성기자협회는 지난해 11월 협회 소속 현직 기자를 상대로 트라우마 경험 관련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한 기자 544명 중 428명(78.7%)이 '기자로 근무하는 동안 심리적 트라우마를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트라우마를 느낀 빈도는 '가끔 있음'이 280명(51.5%)로 가장 많았지만, '자주 있음'(105명)과 '매우 빈번함'(43명)이라는 응답도 148명(27.2%)에 달했다. '전혀 또는 거의 없음'은116명(21.3%)이었다.

트라우마 빈도 못지 않게 트라우마가 지속되는 기간도 짧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세월호 사건 또는 아동학대·성폭력 등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다룰 때 심리적 트라우마가 얼마나 지속했느냐'는 질문에 '한 달 이상'이라고 답한 이가 188명(43.9%)에 달했다. 
기자협회 측은 "통상 트라우마 지속기간이 한 달을 넘을 때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받는 점을 고려하면 의학적으로도 경고등이 켜진 이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트라우마를 경험했던 부서로는 사건팀과 법조, 정부 부처를 포함하는 사회부를 꼽은 이가 206명(48.1%)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지방자치단체(지역) 44명(10.3%) 경제·산업·금융 등 경제부(9.3%) 청와대·정당·외교 및 안보 등 정치부 26명(6.1%) 탐사보도 기획취재 25명(5.8%) 순이었다.

트라우마를 느끼는 빈도는 근무 연차가 낮은 기자일수록 잦은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응답한 1~3년차 기자(74명) 중 '자주 있음' (13명,17.6%)과 '매우 빈번함' (12명, 16.2%)을 꼽은 응답은 33.8%에 달했다. 4~5년차 기자 61명 중에는 '자주 있음'(14명, 23.0%), '매우 빈번함'(8명, 13.1%)이 36.1%로 집계됐다.

성별로는 여성 기자 208명 중 168명(80.7%)이 트라우마 경험이 있다고 답해 336명 중 260명(77.3%)이 있다고 답한 남성 기자보다 높은 비율을 보였다. 성별에 따른 트라우마 경험 차이는 성범죄 사건 취재 관련 상황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성범죄 취재로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답한 344명 중 '자주 또는 매우 많이 겪었다'는 응답은 43.3%였는데, 그 중 여성 기자는 63.0%에 달한 반면 남성은 30.1%에 그쳤다.

트라우마를 느낀 상황이나 이유(복수응답)로는 '취재 과정'(61%)과 함께 '보도 이후 독자들의 반응'(58.4%)을 꼽은 이가 가장 많았다. 이어 '내근 데스크나 조직 내부에서 겪는 갈등' 47.9%, '취재나 보도 전후 취재원과 관계' 43.7% 등이었다.

취재 과정 못지 않게 보도 이후 기자를 향한 공격 등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실제 '기자라는 이유로, 특히 특정 기사로 인해 공격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중 424명(77.9%)가 '그렇다'고 답했다.

기자들이 이처럼 트라우마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으나 관련 교육이나 지원 프로그램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응답자의 81.8%는 취재나 보도를 하기 전 트라우마 예방교육을 받았느냐는 질의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한국에서 기자를 상대로 실시한 취재 관련 트라우마에 관한 첫 공식 조사다. 구글 뉴스 이니셔티브와 미국 컬럼비아대 부설 저널리즘 및 트라우마 관련 비영리기관 '다트센터' 아시아 태평양지부의 후원을 받아 여론조사 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해 지난해 11월 8일부터 18일까지 실시됐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544명의 기자 중 남성은 336명(61.8), 여성 208명(38.2%)이었다.

두 협회는 이번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취재 중 트라우마 사례 및 대응방안 등을 정리해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관련 교육프로그램과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별도 기구 구성 등도 검토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오는 11일 후속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간담회도 열린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사건사고 일선에서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는 환경에 너무도 쉽게 노출돼 있다. 뿐만 아니라 보도 이후 댓글 등에 기자와 언론의 인격을 모독하는 글로 2차 피해를 겪으며 기자들이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 방법 또한 다양화되고 강도도 심각해지고 있다"면서 "시급히 개선해야 할 취재 환경부터 하나씩 바꿔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경희 한국여성기자협회장은 "공감은 취재와 기사 작성의 시작점이지만, 기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며 "현장 기자들이 사회 구성원과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스스로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트라우마 예방과 치유 매뉴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