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자연, 프랑스 파리를 만나는 길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고층 아파트 숲과 으리으리한 관공서들, 대기업 고층 빌딩들이 밀집해 있어 '스카이 라인'을 이룬, 서울 강남의 한 복판 서초구(瑞草區).

이 서초구의 남북을 종단하는 아름다운 숲 길이 있다.

나지막한 산 줄기를 따라 나무들이 빽빽이 늘어서 하늘을 가리고, 그 나무들이 뿜어내는 상쾌한 숲 속 공기가 차도의 매연과 소음이 침범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걷는 이들마다 신기해 하고 감사해 하는, 보석 같은 숲 길.

바로 '서리풀 근린공원'이다.

서리풀 근린공원은 '서리골공원', '몽마르트공원'. 서리풀공원'으로 나뉜다.

이 공원들은 원래 하나의 산 줄기였다. 그러나 '서초 법조타운' 앞을 지나는 도로가 이 산 줄기를 갈라 놓았다.

그러다 2009년 도로를 가로질러 건널 수 있는 보행자 전용 다리들이 놓임으로써. 단절된 산 줄기가 다시 연결됐다. 덕분에 강남 한 복판에 놀라운 숲 길 트래킹 코스가 생겼다.

오늘은 반포(盤浦)에서 시작, '한강공원'을 거쳐 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 서리풀공원 산길을 지나, 사당역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지하철 9호선 구반포역을 출발, 반포 주공아파트, '세빛둥둥섬', 고속터미널역, 서리골공원, '누에다리', 몽마르트공원, 서리풀공원, 방배역을 거쳐 사당역으로 간다.

구반포역 2번 출구를 나와 도로를 따라 반포본동을 통과, 굴다리를 통해 올림픽대로를 밑으로 횡단, '반포한강공원'으로 나왔다.

누런 갈대 밭이 넓게 펼쳐지고, 그 너머로 한강이 도도히 흐른다.

한강공원길을 오른쪽으로 따라간다.

곧 한강의 작은 하중도(河中島)인 '서래섬'이 보인다.

   
▲ '서래섬' 샛강/사진=미디어펜


서래섬은 인근에 프랑스인들이 모여 사는 '서래(西來) 마을'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서쪽에서 온 사람들의 마을'이란 뜻이다.

육지와 섬 사이 샛강이 그림 같다.

작은 다리를 건너 섬 반대쪽으로 가니, 한강 풍경이 시원스럽다. 왼쪽에 동작대교, 오른쪽에 반포대교와 그 아래 잠수교가 보인다.

1985년 제작된 송영수 감독의 멜로 영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와, 박영민이 부른 동명의 주제가가 생각난다.

서래섬을 나오면, 곧 세빛둥둥섬이다.

세빛둥둥섬은 한강 수상에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된 인공섬이다. 공식 명칭은 '떠 있는 섬'이라는 뜻인 '플로팅 아일랜드'로, 서울시에서 추진한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계획돼, 2014년 10월 전면 개방됐다.

세빛둥둥섬은 '세빛섬'과 '가빛섬', '예빛섬'의 3개 섬으로 이뤄져있다.

한글 명칭 '세빛'은 그 빛을 겹칠 때 가장 많은 색깔을 만들어내는 빛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 노랑처럼, 3개의 섬이 조화를 이뤄 한강과 서울을 빛내라는 바람을 담고 있고, '둥둥'은 수상에 띄워진 섬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다.

이제 한강공원을 떠나, 신 잠원 나들목을 통해 다시 올림픽대교 밑을 지난다. '신반포 올레길'을 만났다.

신반포 2차 아파트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고속터미널 역으로 내려간다.

복잡한 지하상가와 3호선, 7호선, 9호선이 교차하는 지하철역을 가로질러 3번 출구로 나가, 사평대로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건너면, 카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과 반포 미도 2차 아파트단지 사이로, 좁은 산길이 있다.

이 서리풀길은 총 4km 거리다.

서리풀이란, '상서로운 풀'이란 의미다, 곧 벼를 뜻한다. 한자로 서초(瑞草)니, 곧 서초구 지명이 여기서 나왔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처럼, 겸손함을 가슴에 담아 봐야겠다.

서리골공원은 '미도산'이란 언덕이 중심이다.

옛날에는 이 곳 골짜기가 깊고 얼음이 늦 봄까지 녹지 않아 '빙고(氷庫) 골'로 불리다가, 여름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해서 '서리골'이라고 불렸다고 해서, 서리골공원이라고 명명됐다.

야트막한 좁은 산길이지만, 벌써 봄이 온 산에 가득하다. 개나리며 진달래, 생강나무 꽃이 활짝 피었다. 마침 내리는 가랑비를 맞아, 나뭇가지에 파릇파릇한 새 잎들이 잔뜩 돋아났다.

언덕을 내려가면, 바로 누에다리가 보인다.

   
▲ '누에다리'/사진=미디어펜


누에다리는 반포대로를 가로지르는 보행 전용 다리로, 누에 같이 새하얗고 둥근, 투명 원통 모양이다. 사람이 누에 뱃속을 걷는 모양새다.

다리 중간 쇠창살 사이로 반포대로가 내려다 보이고, 대법원과 대검찰청 등 권력 기관들이 보인다. '비 호감' 권력들이다. 반대편 국립중앙도서관은 호감 가는 곳이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몽마르트공원이다.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언덕을 본 딴 공원이다. 산 바로 아래 서래마을이 있어, 벽안(碧眼)의 백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공원 입구엔, 둥근 누에 조형물이 있다.

누에는 예로부터 신성시 돼 천충(天蟲), 즉 '하늘이 내린 벌레'로 불렸다고 한다. 오직 뽕 잎만 먹고, 4번의 허물을 벗으면서 25여 일 자라면, 1.2~1.5km의 실을 토해 고치를 짓고, 번데기가 된다. 이 고치에서 나온 명주실로 짠 비단이 인류의 최고급 옷감이다.

누에는 서초구와도 인연이 깊다.

조선 세종 때 설립한 국립양잠소 격인 잠실도회(蠶室都會)가 바로, 지금의 잠원동(蠶院洞)에 있었다. 잠실동이 아니다. 20세기 초까지 서초 지역에는 누에를 치고, 뽕나무 묘목과 종자를 생산, 보급하면서 양잠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강습소가 있었다.

신성한 누에의 기운을 받아 서초구민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자, 누에다리를 놓고, 두 마리 누에가 사랑을 나누는 모양의 조각 작품 잠몽(蠶夢)을 설치, 오가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도로 했다고 한다.

그 안쪽에는 중앙대 류근조 교수의 시 '몽마르트언덕'을 새긴 시비가 있는데, 2010년 11월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세워졌다.

그 맞은편에는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감각' 시비도 있다.

또 '몽마르트의 화가들' 조형물도 보인다. 파리 몽마르트언덕에서 활동하던 '거장' 고흐, 고갱, 피카소의 자화상이 있는 포토존이다.

몽마르트공원은 프랑스 유명 패선업체가 조경을 후원, 배수지 위에 정원과 잔디밭을 가꿔 놨다.

몽마르트공원은 곧 끝나고, 도로를 가로지르는 '서리풀다리'를 건넌다.

이제 서리풀공원이다. 앞의 두 공원보다 산이 훨씬 크고, 높이도 높다.

'서리풀터널' 위를 지나 완경사의 산길을 오리내리다 보면, '할아버지 쉼터' 표재판이 보인다. 그 위로 서리풀공원의 정상이 있다.

정자가 하나 있는 정상에선, 서초구 일대가 넓게 조망된다. 가까운 서달산(西達山)이 지척이다. 반대 쪽 나지막하고 완만한 언덕은 '매봉산'.

다시 산길을 따라간다. 잠시 내리막인가 싶더니,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이윽고 방배공원(方背公園)이다. 작은 사각형 정자가 있고, 운동 기구들이 즐비하다. 그 옆으로 하산길이 이어진다.

길 옆으로, 웅장한 한옥 담장이 길게 이어져 있다.

그 안에 조선 3대 태종 이방원의 둘째 왕자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의 묘와 사당이 있다.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2남으로 태어났는데, 세자인 양녕대군 '이제'가 태종의 사랑을 잃어 폐세자가 되자, 잠시 용상을 꿈꾸기도 했지만, 곧 포기하고 동생 충녕대군 '이도'에게 양보했다.

3남으로 왕위에 오른 분이, 바로 세종대왕(世宗大王)이시다.

효령대군은 그 공덕에서 인지, 자손이 번청했다. 전주이씨 중 가장 숫자가 많은 파가 '효령대군파'다. 국내 모든 성씨들 중, 거의 최다 파로 추정된다.

이 사당 명칭은 청권사(淸權祠)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됐다. 

'청권'은 '신중청(身中淸) 폐중권(廢中權)'에서 인용된 말로, 옛날 주나라 태왕이 셋째 아들 '주 문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첫째 아들 '태백'과 둘째 '우중'이 동생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강남땅에 숨어 산 것을 공자(孔子)가 칭송한 글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효령대군이 동생에게 왕위를 양보하려, 관악산 연주암에서 스님 노릇을 한 것이 주나라 우중과 같다고 하여, '영조'의 명으로 이름 붙여진 사당이 바로 청권사다.

언덕에 있는 효령대군의 묘는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으로, '자손 번창의 명당'으로 유명하다.

이제 산길이 끝아고, 방배역이다.

사거리에서 대각선으로 길을 건너면, 또 다른 언덕 수준의 산 줄기가 있다. '매봉재산'이다.

매봉재산은 서리풀공원과 '우면산' 사이에 있다. '방배근린공원'이라고도 한다.

정상의 전망대는 옛 군부대 벙커를 목재로 마감, 전망 데크로 만들었다. '사색의 공간, 당신의 마음이 쉬어가는 곳'이라고 쓰여 있다. 그만큼 꽤 호젓하다.

산을 내려와 사당역으로 향했다. 길 가 백목련(白木蓮)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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