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펜=김진호 부사장
장호원은 묘한 곳이다. 짧은 다리를 사이로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과 충북 음성군 장호원으로 나뉜다. 행정구역이 다르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자연스럽게 단일 생활권을 유지해 왔다. 헌데 도보로 5분정도 거리를 두고 개발환경은 천양지차다. 충북 장호원에 지을 수 있는 대학이나 대규모 공장이 경기도 장호원에서는 불가능하다.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의 규제 때문이다. 

수정법은 수도권에 집중되는 자산과 인구를 분산시켜 전국을 균형발전시키겠다는 취지로 1982년 입법됐다. 이후 수차례 개정됐지만 경기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을 규제해 기업과 인구를 지방으로 유도하겠다는 지방패권 논리만 강화됐다. 정권을 주고받으며 정치적 대척점에 서있는 영남과 호남 정치권이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희귀한 케이스다. 영호남 정치권이 뭉쳤으니 난공불락이다.

경기도 장호원의 경우 대학, 대규모 공장은 물론 낡은 건물의 개보수에도 각종 제약이 따른다. 꾸준히 민원이 제기됐지만 경기도민들의 아픔만 가중될 뿐이다. 이 같은 규제로 인한 고통은 경기도 전역에 미친다. 연천, 가평 등은 여느 지방보다 낙후됐지만 경기도라는 행정구역으로 인해 규제를 피해갈 수 없다. 벌써 40년이 넘었지만 영호남 정치권 세력의 강고한 스크럼 앞에 경기도민의 한숨이 깊다.

2016년 6월 국회에서 '수도권정비계획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청주 청원)이 발의한 법안은 수도권 규제 및 정비계획을 수립할 때 비(非)수도권 광역자치단체로 구성된 지역발전위원회(가칭) 심의를 강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 유승민 전 의원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소통관에서 경기도지사 출마 기자회견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경기도에서 대규모 개발사업을 하거나 규제를 완화하려면 대구시장, 광주시장, 부산시장 등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를 받고 있는 경기도는 당연히 반발했다. 

경기도 권역사업을 타 지방자치단체가 심의한다는 발상 자체가 정서적으로도 "경기도를 핫바지로 아냐"는 격앙된 여론이 들끓었다. 반발을 의식한 듯 법안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법안 통과와 상관없이 영남과 호남을 중심으로 한 국회의원들이 지역민 끌어안기 차원에서 돌을 던진 것으로 해석했다.

이 법안의 공동발의자가 유승민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다.

유 후보는 지난 지난달 31일 출마선언 이후 경마식 지지도 여론조사에 함몰돼 있는 듯하다. 대통령선거에 나섰던 거물 정치인의 힘으로 경기도를 발전시키겠다는 텍스트를 반복하면서 과거는 묻어둔 채 미래를 이야기한다. 상대당 후보를 공격하고 경기도민의 표심을 공략하는 정책만 쏟아낸다. 

경기도 여론은 갑작스런 영남권 거물정치인의 출현에 당황하다가 이제 묻기 시작했다. 뜨악하지만 대구출신 정치인이 왜 경기도지사를 하겠다고 하느냐고 묻지는 않는다. 다만 도지사를 하겠다고 결심했으면 경기도에 대한 자신의 정치행보에 대해 설득력있는 해명을 하는 것이 최소한의 정치도의가 아니냐고 묻고 있다. 어쩌면 경기도민의 눈물을 모르면서 어떻게 경기도민에게 웃음을 약속할 수 있냐고 묻는지도 모른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고향은 전남 고흥이다. 그러나 5선 국회의원으로 집권당 대표로 키워준 정치적 고향은 인천이다. 본인도 수십 년간 입에 달고 다닌 클리셰다. 

   
▲ 21대 총선에서 경기도지사에 도전장을 던진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김상문 기자

사실이 그렇다. 송 전 대표는 2000년부터 2020년까지 인천시 계양구에서만 다섯 번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중간에 인천시장까지 했으니 지역민들의 애정이 흘러넘친다. 2016년 20대 총선의 경우 두어해 전 인천시장 재선에 실패한 송 전 대표를 지역민들은 품어주었다. 

인천시장 재직 중 터진 북한의 연평도 포격당시 현장을 찾은 송 전 대표는 설화에 휘말려 정치적 미래가 불투명했다. 포격현장 속 소주병을 들곤 "이건 완전 폭탄주네"하는 설익은 발언이 인천을 넘어 전국으로 퍼지면서 정치적 위기에 몰려 인천시장 선거에서 낙마한 그의 재기를 도운 것도 계양주민들이었다. 

21대 총선에서는 타 지역으로 밀려나는 송 전 대표를 붙들어 큰 꿈을 꾸도록 기반을 제공했다. 정치권에서는 3선의 높은 장벽과 4선의 죽음의 골짜기를 건너 5선으로 신계(新界)에 이르렀다고 부러워했다. 이제 한치 앞의 경계만 넘어서면 대권으로 들어설 수도 있다는 기대감으로 그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차기를 내재화하며 민주당 대표로서 임한 건곤일척의 싸움에서 패했다. 모두가 싸움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하며 운기조식하고 있을 때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선언 후 당원들이 인천에서 서울로 이사가라며 2424원씩을 후원했다고 자위했다. 

이 같은 발언에 인천시민들은 크게 상처를 입었다. 하필이면 만우절인 4월 1일에 출마를 선언해 농담으로 알았다는 지역구민들은 실상을 알고 망연자실했다. 무엇보다 송영길이라는 배를 띄어준 지역민들은 20년 이상 동고동락한 배우자에게 이혼 통보도 하지 않고 재혼을 서두른다는 서운함이 숨기지 않는다. 서운함은 민주당내에서도 이어진다. 

송 전 대표의 서울시장 선거출마는 얄팍한 술수에 불과하다는 여론으로 싸늘하다. 송 전 대표는 지는 싸움에 나서는 결연한 웅지를 내세웠지만 정치적 탈출구는 찾는 치졸한 정치라는 해석이다. 

우선 송 전 대표는 대선과정에서 '단일 선거구 4선 이상 불가'의 쇄신책이 발목을 잡았다. 쇄신안에 따라 본인이 다음 총선 출마가 불가한데 무슨 희생이냐는 질책이다. 또 대선패배의 책임을 져야하는 송 전 대표가 잃을게 없는, 계산된 정치행위를 거룩한 희생으로 포장한다는 비아냥 소리도 넘실거린다. 

5선의 정치인생을 마무리하려는 김진표 의원(75)도 큰 충격을 받았다. 송 전 대표가 자신의 희생을 강조하며 "저는 국회의장이 될 수 있는 기회도 포기했다"는 발언 때문이다. 김 의원은 21대 국회 개원당시 현 박병석 국회의장과 함께 강력한 국회의장 후보였다. 

집권당내 논의과정에서 '전반기 2년은 박병석, 후반기 2년은 김진표'로 정리됐다는게 정설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양보 내지는 희생하듯 내뱉자 정치도의에 대한 깊은 회한에 잠겼다.

지방선거에서 지방은 사라지고 선거만 남았다지만 욕망의 저열함을 희생의 고결함으로 포장하는데 능숙한 정치는 이제 신물이 난다. 과일가게에 과일들과 함께 진열돼 있지만 토마토는 과일이 아니다. /미디어펜=김진호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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