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59)- 이상향 아틀란티스의 부활을 꿈꾸다
플라톤(BC 427~BC 347)의 <크리티아스>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나라와 시대를 불문하고 정치인들은 대중에게 끊임없이 복지국가의 꿈과 달콤한 약속을 쏟아 붓는다. 지상낙원을 그리는 인간 본연의 욕망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유토피아가 어딘가 존재하지 않을까? 현실이 고단할수록 이런 희망은 끊이지 않는다. 현실에서 유토피아를 발견할 수 없다면 내세(來世)를 기약하기도 한다. 인간이 종교에 의지하는 이유도 현실의 위안과 피안(彼岸)의 약속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기원전 4세기 전성기를 지나 쇠퇴기로 접어든 아테네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 플라톤은 아테네에 새로운 힘과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플라톤은 인생 말년에 이르자 인생 중반에 쓴 대작 <국가(Politeia)>에서 제시했던 이상국가론을 보다 현실적으로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게 된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나온 저작이 <크리티아스(kritias)>다.​

그는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헤르모크라테스>의 3부작의 구상했지만, 아쉽게도 두 번째 책인 <크리티아스>는 미완성에 그쳤다. <헤르모크라테스>는 전혀 쓰이지 못했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펼친 우주론을 통해, 현실 세계의 인간 국가 역시 하나의 생명체처럼 우주적 질서와 구조를 지닌 이상적 모습이 되길 희구했다. 이상국가의 이론적 근거를 우주론적 질서라는 튼튼한 토대에 두고자 했던 것이다. ​

플라톤은 현실세계에서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크리티아스>는 현실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아테네를 어떻게 질서 있고 아름다운 통치 체제와 법률에 기초한 국가로 만들 것인가를 예시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 방편으로 플라톤은 고대 아테네의 찬란했던 과거를 상기시킨다. 이와 연관되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아틀란티스’라는 이상국가였다. 아테네와 아틀란티스의 전쟁에서 아테네가 승리하고 나서 아틀란티스의 이상적 사회 체제와 덕목을 이식받았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 물론 아테네와 아틀란티스 전쟁이 역사속의 전쟁은 아니다.

<크리아티스>는 당시 지중해와 대서양의 길목이던 헤라클레스 기둥 바깥쪽에 위치했다는 ‘아틀란티스’의 지리적 특성과 자연환경, 생산물, 도시생활상, 신전과 각종 시설, 통치 체계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

‘아틀란티스’ 대륙은 현재의 대서양 한 가운데 쯤에 존재했었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기원적 9000년 전에 존재했었다는 이 ‘아틀란티스’에 대해 플라톤이 최초로 제기하는 방식을 취하진 않았다. 이전 시대의 정치지도자였던 솔론(Solon, BC 640~BC 560?)이 이집트 신관에게서 들을 이야기를 크리티아스의 조부 드로피데스(Dropides)에게 전해주었고, 손자인 크리티아스가 소크라테스, 티마이오스, 헤르모크라테스에게 다시 들려준 이야기를 기록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과연 아틀란티스는 어떤 나라였을까? 우선 규모가 대단하다. 섬 중앙에 있는 직사각형의 평야지대의 크기가 동서로 3000스타디온(약 532.8km), 남북으로 2000스타디온(약 355.2km)에 이를 만큼 광대하다. ​

게다가 평야 지대는 가로 세로 100스타디온의 정사각형 모양을 한 600개의 구역으로 구획되고, 각 구역은 모두 수로로 연결되어 편리하게 농업용수를 공급받고 수확물을 운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래 그림은 플라톤이 묘사한 아틀란티스의 형상을 상상하여 만든 지도이다. 바둑판 모양의 지형이 평야지대를 600개의 구역으로 나누고 수로로 연결 지은 모습이다. ​

   
▲ ​아틀란티스의 상상 지도, Karl Georg Zschaetzsch(1870-1937), 1922 이전 作

아틀란티스의 중앙부는 고리형 육지 띠와 해수 띠로 이루어져 있고, 중앙 섬으로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수로가 외해와 연결되어 있었다. 가운데 섬에 장대한 궁전과 성역이 황금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국가의 신성한 법을 새긴 오레이칼코스 비석이 안치되어 있었다.

아래 그림은 플라톤이 묘사한 아틀란티스의 도시 중심부의 모습을 평면도로 그린 것이다. 1번이 중앙 섬, 2번과 4번이 육지 띠를, 3번과 5번이 해수 띠를 나타낸다. 6번 지역은 외곽 도시 지역이다. 8번은 외해로 나가는 연결 운하다. 중앙 섬에는 신전과 왕궁, 온천과 냉천이 있었다. 4번 육지 띠에는 전차 경기장과 선박 계류장 등이 있었다.

   
▲ Lencer, 2008 作

​아틀란티스는 포세이돈과 클레이토가 낳은 다섯 쌍둥이, 즉 10명의 아들들이 성장하여 나누어 지배했고, 장자인 아틀라스가 왕 중의 왕으로 최고 권력을 가졌다. 공고한 동맹으로 맺어진 국가들은 5년 간격으로 포세이돈 성역에 모여 국사를 협의하고, 제례와 재판을 행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틀란티스가 광대한 영토와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도시 구조를 갖추었으며, 농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고, 세계 각지의 산물이 집산되던 풍요로운 국가였다는 점이다. 특히 이들은 “진실하고도 아주 고매한 정신을 소유”하고 있었고, “법에 귀를 기울였고 또 동족신들에 대해 정중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꿈에나 그릴 수 있는 ‘이상향’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들이 넘치던 부를 감당해 내지 못하고 신성의 고매한 정신을 잃어버리고, “사악한 탐욕과 권력”을 꾀하는 인간적 성정이 지배하기 시작하자, 제우스가 이들을 징벌했다는 것이다. 결국 훌륭한 문물과 제도, 행복한 삶을 누리던 아틀란티스가 멸망하고 그들이 과거에 가졌던 바람직한 덕목을 아테네가 이어받게 되었다는 점이 강조된다.

   
▲ 아틀란티스 대륙의 상상 지도, 독일의 수학자, 고고학자이자 자연과학자인 아타나시우스 키르허(Athanasius Kircher, 1601~1680)가 그렸다. 지도의 하단에 방향이 그려져 있는 데 아래 쪽이 북쪽 방향이다. 1669년 作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크리티아스>의 이야기가 미완성됨으로써 아틀란티스에서 계승받은 아테네가 어떤 이상국가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기술하지 못하고 말았다. 플라톤이 <크리티아스>를 쓰고자 했던 의도는 고대 아테네가 아주 오래전에 이미 아틀란티스에 못지않은 훌륭한 국가를 이루었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플라톤은 암울한 아테네를 다시 부흥시켜 보고자 했다. 27년 동안 계속되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굴욕적으로 패해 항복하게 되자(BC 404), 아테네인들은 실의와 좌절에 빠진다. 또 BC 399년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할 정도로 아테네 시민들의 분별력과 자유정신은 급격하게 붕괴되고 있었다. ​

이런 현실에 절망한 플라톤은 새로운 이상국가를 만들기 위해 과거 선조들이 찬란하게 구현했던 ‘이상향’을 아테네인들이 재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크리티아스>를 쓴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를 역사적 사실로 볼 수는 없다.

그가 기술한 아틀란티스가 구현했던 도시 계획과 제도, 생활상은 사실 당대 그리스인들이 경험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당시 플라톤이 외부 세계 특히 지중해를 넘어 해양과 지리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국 <크리티아스>는 플라톤의 창작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틀란티스의 존재 여부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구현하려 했던 것인가이다. 그런 점에서 미완성으로 끝난 점이 아쉽지만, 아테네인들에게 아테네의 부활을 위해 과거의 탁월한 국가모델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

하지만 플라톤의 희구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전에는 아틀란티스에 대한 관심이 저조했다. 플라톤 사후 300년 정도까지 이 책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문헌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을 정도였다. 지리학자이자 자연철학이던 스트라본(Strabon, BC 64?∼23?)이 자신의 책에서 최초로 아틀란티스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 역시 아틀란티스에 관련해 ‘스스로 그것을 만들었다가 또 파괴하고 있다.’”고 언급한 대목을 소개했던 것이다.

아틀란티스에 대한 플라톤의 기술이 완전한 허구이고, 무언가 자신의 정치철학을 구현해 보이기 위한 우화일 수도 있다. 그러면 플라톤이 이를 통해 상징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가 궁금하다. 이상향을 기대하는 인간의 호기심과 희구는 플라톤이 제기한 아틀란티스의 실재 여부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신비한 관점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

‘잃어버린 대륙 아틀란티스’에 대해 실재했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고, 이와 유사한 이상향을 그린 작품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기원전 1세기 지리학자 마르켈루스(Macellus)는 아틀란티스 제국의 전설을 전하고 있고, 6세기 무렵 이집트의 기독교 수도사 코스마스(Kosmas)는 아틀란티스의 실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아틀란티스는 이상 사회를 꿈꾸는 세상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숱한 문학작품으로 되살아나기도 했다.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7~1535)가 1516년에 쓴 <유토피아>,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쓴 <새로운 아틀란티스>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후에도 현재까지 아틀란티스에 관해 전 세계에서 쏟아진 책이 무려 5천 권이 넘는다고 하니 아틀란티스가 만들어 낸 이상향을 그리는 마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상향 아틀란티스와 같은 유토피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 인간 세상은 이미 순결한 신성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온갖 탐욕과 이기심이 판을 치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현실에 대한 고통과 불만이 크면 클수록 욕망을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는 행복한 지상낙원을 그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신비로운 이상국가를 그리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플라톤이 <크리티아스>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 합리적 제도와 법률이 작동하고, 고매한 인간성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왜 세상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그리는 지 그 깊은 비원(悲願)을 읽어내는 책무가 정치인, 학자, 관료, 건강한 시민들 모두에게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 추천도서: <크리티아스(Kritias), 플라톤 지음, 이정호 이제이북스(2010, 3쇄), 1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