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소 시 피고 소송비·회사가 입은 손해도 부담해야
[미디어펜=박규빈 기자]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대표소송권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로 이양하려는 관련 지침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재계는 노동계와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수탁위에 대표소송 결정 권한을 넘기려는 것이 기금과 기업, 주주가 피해를 보더라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또한 여타 주주권 행사와는 다른 국민연금 대표소송제는 법적 근거 마련부터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20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발언을하고 있다. 왼쪽부터 곽관훈 선문대학교법경찰학과 교수,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상근부회장, 조현덕 김앤장 법률 사무소 변호사,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실장. /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20일 재계 8개 단체는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공통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 관계자들이 자리했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현행 국민연금법에는 기금의 관리와 운용에 관한 구체적 규정이 명시돼 있다"며 "국민연금은 국내 증권 시장 시가총액 6%를 넘는 큰손인 만큼 절제된 원칙과 기준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설령 국민연금이 내부 지침만으로 수탁 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해도 상위법 위임 한계를 벗어나는데, 이는 또 다른 위법성을 내포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대표소송 추진과 관련,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24일과 올해 2월 25일 기금운용위원회를 개최했다. 대표소송 결정 주체는 수책위로 일원화하는 내용의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개정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현재 기금운용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추가 논의 중이다.

조현덕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2018년 7월 국민연금이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는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해 목표와 수단, 효과 인과성이 불분명하다"며 "영향력과 권한에 비례하는 제도적 평가·견·책임·통제 장치가 없는 실정"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공공 영역이 국민의 신탁재산으로 주식을 취득해 국내 기업 경영권 개입으로 이어진다"며 "헌법 제126조의 취지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는 보도자료 등을 통해 기금의 대표소송 진행 시 해당 회사의 기업 신뢰도와 가치가 제고되고 이것이 장기적 주주가치에 반영되어 가입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제시한 바 있다. 조 변호사는 "대표소송 제기를 통해 대상 기업의 기업가치가 제고된다는 주장은 실증적으로 검증된 바 없어 면밀한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우용 상장협 정책부회장은 “검토·심의 권한만 부여된 수책위에 대표소송과 주주제안 결정을 일임하는 건 국민연금이 책임과 부담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며 "수책위원들을 문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표소송과 주주제안이 정치적으로 남용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대표소송은 패소할 경우 피고의 소송비와 회사가 입은 손해마저도 국민연금이 배상해야 하는 위험 부담이 큰 소송"이라고 했다. 전 교수는 "대표소송에서 지면 국민연금이 배상한 손해액을 수책위원들에게 구상할 수 있다는 규정만이라도 도입돼야 국민연금이 정치적으로 부당하게 희생되는 위험을 막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실장은 "기금운용본부 대비 수탁위는 이해집단 영향력이 크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며 "2/3가 비상근으로 이루어져 개인적 판단에 좌우될 소지가 많고, 의사결정 결과와 기금의 수익성에 대해 책임 지지 않는 조직”이라고 힐난했다.

제계는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의 위법성을 검토하고 향후 지침 개정 논의 추이를 지켜보며 지침 전면 개정 요구와 공익 감사 청구를 비롯한 법적 대응에 착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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