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노트북 해킹해 메신저 기록 등 탈취 일부 무죄 확정
[미디어펜=박규빈 기자]타인의 컴퓨터에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해 그 내용을 알아냈다 하더라도 피해를 입은 컴퓨터에 비밀번호 설정 등 보안 조치가 없었다면 형법상 '전자 기록 등 내용탐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 대법원./사진=미디어펜 DB

연합뉴스는 26일 법조계를 인용해 대법원 2부가 전자기록 등 내용탐지와 정보통신망법 위반(정보통신망 침해 등) 혐의를 받은 A(35)씨의 상고심에서 일부 혐의를 무죄로 보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A씨는 2018년 8∼9월 회사 동료 B씨의 노트북에 해킹 프로그램을 몰래 설치했다. 이후 B씨의 인터넷 메신저와 검색 엔진 아이디(ID)·비밀번호를 탈취해 B씨의 계정에 접속했고, 다른 사람들 간의 대화 내용과 메시지, 사진 등을 내려받는 등 모두 40차례에 걸쳐 정당한 접근 권한 없이 정보통신망에 침입한 혐의를 받았다.

1심은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한편 2심의 판단은 달랐다. 해킹으로 알아낸 피해자의 아이디·비밀번호를 이용해 피해자 계정에 접속하고, 그 계정에서 대화 내용 등을 내려받은 혐의(전자기록 등 내용탐지·정보통신망법 위반)는 유죄가 맞다고 봤지만 애초에 피해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낸 혐의(전자기록 등 내용탐지) 자체는 유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자기록 등 내용탐지죄를 다루는 형법 316조 2항은 봉함(봉투 밀봉처럼 외포 훼손 없이는 내용을 알 수 없게 한 것)이나 비밀장치를 한 사람의 편지, 문서, 도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의 내용을 기술적 수단을 이용해 알아내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다.

이때 '특수매체기록'은 전기적·자기적 신호 등으로 기록된 것을 의미하고, 기본적으로 '문자 또는 가독적 기호로 특정인의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정의되는 '문서'에 준해 취급된다.

2심은 "공소사실은 A씨가 해킹 프로그램을 사용해 피해자의 메신저와 검색 엔진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냈다는 것인데, 아이디와 비밀번호 자체는 특정인의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보기 어려워 특수 매체 기록이라고 볼 수 없다"며 "기술적 수단을 사용해 그 내용을 알아냈더라도 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일부 혐의가 무죄라는 판단이 나오면서 A씨의 형량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줄었다.

대법원은 2심의 일부 무죄 판단이 결론은 옳지만 근거에는 문제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 아이디 등은 전자방식에 의해 피해자의 노트북 컴퓨터에 저장된 기록으로서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에 해당한다"고 판단, "특정인의 의사가 표시되지 않았다는 점만을 들어 전자기록 등에서 제외한 원심의 판단은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대법원은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에 해당하더라도 (형법 316조 2항이 규정한) 봉함 기타 비밀장치가 돼 있지 않은 것은 기술적 수단을 동원해 내용을 알아냈더라도 전자기록 등 내용탐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A씨의 일부 혐의가 무죄인 것은 맞는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노트북에 비밀번호나 화면보호기 등 별도의 보안장치를 설정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전자기록 등 내용탐지죄의 전제 조건은 비밀장치(피해자의 보안장치)와 기술적 수단(A씨의 해킹프로그램)인데, 비밀장치가 존재하지 않은 만큼 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머지 혐의들에 대해 2심이 내린 유죄 판결은 검찰과 A씨 측 모두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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