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의 창조적 파괴 바람이 어떻게 불까가 관건

   
▲ 조우석 논설위원
‘성완종 쓰나미’로 세상 전체가 휩쓸려나갈 듯 요란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 하나에 새삼 주목을 해야 옳다. 16일 부로 공식선거전을 개시한 4· 29 재보궐 선거가 그것인데, 1년짜리 임기의 국회의원 4명과 지방의원 일부를 뽑는 작은 규모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이중 관심은 단연 관악을(乙)인데, 여론조사 수치만 쳐다보는 건 저류의 큰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다. 당장은 빅3의 구도다. 최근 여론조사는 새누리당 오신환(37.3%), 새민련 정태호(24.9%) 무소속 정동영(23.4%)의 순이다.

그럼 5% 미만인 군소후보인 공화당 신종열, 무소속의 변희재· 송광호ㆍ이상규 등 넷은 들러리일까? 앞으로 무려 13일의 선거전(이 기간이면 한국사회가 여러 차례 뒤집히기에 충분하다)에서 결정적 변수는 무소속 후보의 변희재와 정동영이라는 게 선거에 정통한 이들의 분석이다.

좌파와 우파의 정계개편 예고한 정동영-변희재

둘의 공통점은 생소한 지역구에 뛰어들어 당장은 고전하지만, 전국적 지명도를 가졌다는 점이다. 결정적으로 둘은 정계개편 카드를 쥐고 있다. 정동영의 경우 통진당 이상으로 좌파로 분류되는‘국민모임’의 얼굴마담 자격으로 이 판에 뛰어들었다.

지금 그는 입만 열면 “나의 당선은 정계개편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와 달리 변희재는 우파 애국진영 발(發) 정계개편의 핵이다. 이념지형의 왼쪽과 오른쪽에서 동시 추진되는 한국정치의 창조적 파괴 바람이 어떤 식으로 흐를까? 그게 답답한 국내의 현 정치지형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관악을은 그걸 내다볼 결정적 계기다.

우선 정동영. 그는 이번 출마가 신당 창당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국민모임 측이 그의 등을 떠밀어 재보선에 억지로 참여하게 한 것이다. 뒤늦게 재보선 참여를 선언했지만, 직후 20%대의 나름 높은 지지율을 마크한 건 그의 인지도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당선되리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지금 당장의 지지율이 거의 의미 없기 때문이다. 새민련 당내 경선에서 밀려 공천을 받는데 실패한 김희철, 그러나 여전히 관악을의 키맨인 그의 지지율이 정동영에게 옮겨붙은 것뿐이라는 게 관악을의 지역정서에 밝은 이들의 일치된 관측이다.

결정적으로 정동영의 실수는 따로 있다. 즉 정계개편 방향을 잘못 읽었다. 중도보수인 옛 민주당의 이념을 버리고 얼치기 급조 좌파로 돌아선 것은 정치적 자살골에 불과하다. 최선의 경우 그의 선택은 새민련 내 ‘정치적 폭도’인 친노(親盧)세력을 정리하는 쪽의 정계개편을 추진했어야 옳았다.

그럼에도 정동영은 정동영이다. 당초 그는 “관악을은 좌파정당 통합의 위한 전략무대”라고 말해왔는데, 이게 어찌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단 관악을 입성 실패 땐 그의 정치 생명 몰락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 동교동계 김희철의 지지철회가 이뤄질 경우 득표율은 10%를 밑돌고, 정동영은 국민모임 창당 준비의 일회용 불쏘시개로 끝난다. 우파의 정계개편을 들고 나온 변희재에 대한 관심은 그 때문인데, 이합집산의 실험을 거듭해온 좌파와 달리 우파 쪽의 정계개편 실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 무소속 변희재 후보가 4.29 재보궐선거 후보자 등록이 시작된 9일 오전 서울 관악구 청룡동 관악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악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자 등록을 한 뒤 접수자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류근일도 “친박(親朴)을 해체하고 범(汎) 애국세력 결집을!”

그의 선거벽보도 성완종 케이트 이후 민심을 반영하면서도, 정계개편을 노린다. “여야 썩은 정치 심판! 개헌음모 저지!” 유세용 차에 붙어있는 구호도 여야를 함께 조준했다. “무능한 웰빙귀족 새누리당 심판”,“종북 숙주 새민련 심판”, “종북세력 통진당 부활음모 심판”

당초 그가 출마 결심을 한 것은 새누리에 대한 환멸 때문이다. 통진당 해산 결정으로 이상규가 아웃되면서 만들어진 재보궐선거인데도 지역일꾼론을 내세워 전대협 출신의 오신환을 공천한 것 자체가 저들의 안이한 인식을 보여준다. 그리곤 이 지역에 예산 폭탄을 약속하며 유권자를 유혹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체성을 지켜야 할 새누리가 법치파괴 세력과 야합하고 있다는 게 지금 한국사회 혼란의 뿌리다. 새누리 지도부를 타고 앉은 K, Y 둘이야말로 당을 망치는 트로이의 목마다. 변희재의 당선은 이들을 정리할 계기가 될 것이다. 때문에 여권 분열이라는 일부 지적은 전혀 근거없다.”

변희재 캠프 스텝의 이 말은 충분히 경청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무소속의 변희재가 당선될 경우 기회주의적 새누리DNA와 전혀 다른 가치를 앞세운 애국보수세력이 여의도에 진입하는 첫 케이스다.

실제로 계급장 떼고 지명도-신뢰도로 승부할 경우 변희재는 어떤 새누리 소속 의원과 비교해도 손색없다. 그래서 일당백인데, 특히 젊은 층에 아이콘이다. 그는 아직도 2.7%대 지지율에 머물고 있지만, 20대 연령층에서만은 7.2%의 수치를 기록, 일찌감치 정동영(5.8%) 따위를 따돌렸다.

즉 변희재의 여의도 진입은 그 자체로 정계개편의 핵이지만, 변희재 지지세력은 올해 10월 창당을 목표로 중앙당과 5개 지역당(경기 서울 부산 충청)을 창당 준비에 이미 들어갔다. 쌍끌이 효과가 기대되는 건 그 때문이다.

물론 변희재의 선전 여부가 관건인데, 당장 다음 주 첫 TV토론이 펼쳐진다. 정동영을 포함한 지지율 5% 이상 후보끼리의 빅3 토론보다 지지율 5% 미만의 후보들과의 설전이 더 관심이다. 이때 변희재는 이상규를 만나는 데, 토론의 달인답게 통진당 작살내기의 화력시범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보게 될 것이다.(관악케이블과 인터넷으로 생중계된다)

여기에서 벌떡 일어선 변희재가 2차 TV토론에서 정동영을 포함한 빅3를 대적할 경우 지지율이 요동치면서 대반전의 계기를 잡을 가능성도 높다. 어떠신지. 변희재 발(發) 정계개편 움직임에 아직 감이 오지 않으신다고?

그렇다면 며칠 전 발표된 원로 언론인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의 의미심장한 칼럼을 환시시켜드리고 싶다. “‘박근혜 이후’를 맡을 ‘리더 그룹’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 친박(親朴)을 해체하고 범(汎) 애국세력을!”이 그것이다.

친박 중추가 휘청대는 지금 과감한 정치혁신과 함께 정계개편까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 판단에 나 역시 100% 지지한다. 그리고 관악을 재보선이 그 풍향을 가를 것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고대해온 한국정치의 창조적 파괴 바람이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 그게 관건이다. /조우석 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