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상대외교에 흔들릴 필요없어…국익 원칙따라 행동 필요

   
▲ 주재우 경희대 교수
최근 우리 외교 수장이 미국과 중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사드)와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AIIB)가입에 대한 동시 압력을 ‘러브콜’로 묘사해 논란이 있었다. 논란이 종결된 후 조선일보 4월 13일자 <글로벌 포커스> 기고란에는 우리 외교가 미국 국제정치학자에게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강대국들 상대의 외교에서 동요하는 국가)로 인식이 되어 우리 외교에 적지 않은 위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기고문의 요지는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중요시하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중국이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끌어당기면 넘어갈 것이라고 우리 외교의 주관 없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과거사와 영토분쟁으로 일본에 척을 지면서 일본이 우리를 친중국화되어 간다는 인식을 우려했다. 우리 외교의 입지만 축소시키는 불리한 양상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이런 발언의 문제는 잘못된 개념 해석으로 우리 외교의 입지만 스스로 축소하고 혼란만 유발하여 제대로 국익을 추구하지 못하는 저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한데 있다. 학자로서 개념을 잘 못 이해하는 것은 학문에 뿐 아니라 현상을 분석하는데 치명적인 오류로 작용하여 담론에 거대한 혼란은 물론 잘못된 결과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념을 잘 못 이해하고 대화나 협상에 임하면 결론은 당연히 예상치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학문적으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경우 왕왕 문맥상으로 대화를 이해할 수 있다. 개념 정의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모르는 이가 잘 못 이해하면 가르쳐 줄 수 있다. 그러나 서로가 정확하게 모를 경우 서로 우문우답을 하게 되나 자신들은 잘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상기한 조선일보의 저자는 미국 국제정치학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이 사용한 스윙 스테이트의 개념을 언어학적 의미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화 상대자였던 미국학자들도 아마 학문적 개념을 잘 모르고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가 스윙 스테이트로서 받을 위험 부담을 걱정했을 것이다. 개념을 명확하게 알았다면 그런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을 것이다.

   
▲ 새뮤얼 라클리어 미국 태평양 사령관이 한반도에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포대를 추가로 배치하는 문제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16일(현지시간) 라클리어 사령관은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우리는 괌이 아닌 한반도에 사드 포대를 잠정적으로 추가 배치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군에서 한반도를 특정해 사드 포대를 배치하는 문제를 논의 중이라는 사실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YTN 캡처
왜냐면 언어학적인 의미에서의 스윙 스테이트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박쥐’로 살아남는 개념이 정확하다. 펜듈럼(시계 추)과 같이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그러면서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외교는 그런 양상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런 위치에서 저자의 말대로 “솜씨 좋게 그네뛰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 국제정치학 개념에서의 스윙 스테이트가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국제정치학자들의 스윙 스테이트 개념은 그런 언어학적 의미의 개념이 아니다. 이들의 스윙 스테이트의 본래 개념은 미국 대선정치에서 기원한다. 미국의 대선 때 50개 주 중 몇 개의 스윙 스테이트가 있다. 즉 미대선의 격전지다. 이 주들은 전통적인 지지당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투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이들 주의 스윙 스테이트로서의 특징은 혼합적인 정치적 오리엔테이션 때문에 인구 크기나 경제 생산력이 허용하는 범위보다 대 결과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시할 수 없고 대선 후보들이 공을 들여야 하는 정치세력권이다.

일례로, 민주당의 텃밭이라는 미동북부 뉴잉글랜드 지역에는 5개주(매사추셋츠, 커네티컷, 로드아일랜드, 버몬트와 뉴햄프셔)가 있는데 뉴햄프셔주가 스윙 스테이트다. 공화당에게 미국 남부지역은 전통적인 지지 세력이나 플로리다와 노스 캐롤라이나가 왕왕 스윙 스테이트로 작용한다.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는 오하이오주가 스윙 스테이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 미대선 때 전세계 언론의 이목이 뉴햄프셔, 오하이오, 노스 캐롤라이나와 플로리다 주에 집중되는 이유다.

이 개념을 국제정치학에 접목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다. 이는 인도의 부상과 맞물려 담론화 되었다. 그리고 2012년 신미국안보센터에서 출간된 단행본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국제정치학 개념의 스윙 스테이트가 소개되었고, 2013년 학계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개념상 차이점은 ‘대선의 결과’ 대신 이런 국가들의 선택이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것이든, 자유방임하는 것이든, 훼방하려는 것이든 국제질서의 기조를 흔들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즉, 새로운 국제질서의 구축 방향을 선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국가들이다. 이런 능력이 축적된 힘에서 발휘되는 것이든 한 순간의 정책적 판단에 의해 발휘되는 것이든 상관없다. 이들이 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강대국들과 달리 유동적이고 유연하면서도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강대국들 상대 외교에서 동요 받는 국가들이 아니다. 그러면서 미국 국제정치학계에서는 이들 국가를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와 터키로 규정한다.

우리가 스윙 스테이트로서 위험성이 없는 것은 구조적 제약 때문이다. 한미동맹이 우리의 안보를 담보하고 중국에 대한 높은 상호의존도가 우리 경제의 발전을 지속 가능케한다. 비안보적인 분야에서는 우리가 유연하고 유동적일 수 있지만 안보분야에서만큼은 아직 북한의 위협요인이 존재해 그러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대국들 상대 외교에서 동요를 받을 필요가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 우리 외교의 현실이다. 미국 국제정치학 개념의 스윙 스테이트같이 국제질서의 기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을 갖춘 나라도 아니다.

우리는 대신 미국 국내정치의 스윙 스테이트와 같이 자신의 이익 판단에 따라만 움직이면 되는 스윙 스테이트이다. 아마 이런 맥락에서 우리 외교당국은 우리의 외교적 위상을 강대국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다고 자의적인 해석을 했을 것이다. 철저하게 우리의 국익을 확립하고 그 원칙에 따라 행동할 때 스윙 스테이트로서의 진정한 역량을 발휘할 것이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