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펜= 김진호 부사장
그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루세'다. 모파상의 소설 '비계덩어리'에 나오는 주인공으로 수없이 인용되지만 소설에도 딱 두 번 등장하는 이름인 그 루세가 맞다. 루세는 패전으로 어수선하고 불안한 공기가 억누르던 프랑스 루앙을 떠났다. 

나폴레옹 황제의 이름에 기대 왕좌를 차지했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유럽의 떠오르는 신흥강자 프로이센과 전쟁을 벌였으나 참패했기 때문이다. 패전국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그 때나 오늘이나 척박하고 무력해서 불안하다. 루세는 이러한 불안에서 탈출하려고 동분서주했고 운 좋게 피난마차에 오를 수 있었다. 

10인승 마차에는 각종 편법을 동원해 프로이센 지역사령관의 여행허가증을 손에 쥔 다양한 인물들이 앉았다. 왕정체제 귀족 부부, 돈 많은 정치인 부부, 교활한 장사치 부부, 속물적 공화주의자, 두 명의 수녀 등으로 구성된 동승객들은 온 몸을 휘감는 전쟁의 공포와 신분 차이에서 오는 경계감으로 말이 없다. 

여섯 마리 말이 엉덩이에 땀이 차도록 힘을 쓰고 있지만 폭설로 인해 앞으로 나가지 못하자 침묵은 가중됐다. 매력적인 젊은 여성 루세의 직업은 매춘으로 마차 안의 공기마저 루세와 나머지 9명을 구분하는 듯 경계가 확실하다.

커다란 마차가 눈더미에 빠지기를 반복할수록 승객들의 불안감은 점증했고 언덕을 만나면 마차에서 내려 걸어서 넘느라 승객들은 탈진했다. 피난길의 선술집이나 음식점들은 전쟁통에 모두 문을 닫았고 마차의 더딘 속도를 예상치 못한 승객들에게 불안에 이어 배고픔이라는 본능이 엄습했다. 허기가 침묵을 깨트렸고 사건을 만들었다.

"햄 한 조각에 천 프랑을 내도 아깝지 않겠다"는 농담이 진담이 되어갈 즈음, 루세는 준비해 온 식량바구니를 꺼냈다. 양념을 해서 구운 통닭 두 마리, 빵, 파이, 과일, 과자, 4병의 술 등 먹음직한 음식들은 루세의 사흘치 양식이었다. 여기에 품위있는 은잔과 사기접시도 준비했다. 

주변의 눈치를 보던 루세가 빵을 꺼내 먹기 시작하자 교활한 장사치가 말을 걸어왔다. "부인은 누구보다 용의주도 하셨군요. 항상 모든 일에 사려가 깊은 분이 있지요". 매춘부라며 속삭이던 입술에서 '부인'이라는 존칭이 새어나오고 눈은 탐스런 닭고기로 향했다. 

이에 루세는 음식을 권할 수밖에 없었고 장사치는 곧바로 닭다리를 뜯어갔다. 이어 수녀들, 공화주의자, 정치인 부부, 귀족 부부가 성찬에 참여했고 마차 안 모두가 루세의 음식으로 행복해졌다. '상냥한 동행자'인 루세를 향한 감사인사는 "동기간이나 다름없다"는 최고의 찬사로 이어졌다. 

   
▲ "임대주택에 못 사는 사람이 많아 정신질환자 발생 빈도가 높다"는 전근대적 발언에 여론의 반발이 심각하다. 그것도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원장의 발언이어서 심각성을 더한다. 성 의원의 발언에 굴욕감을 느낀 임대주택 거주자들의 반발에 사과했지만 씁쓸함이 남는다. /사진=김상문 기자

천신만고 끝에 마차는 유숙할 여관에 당도했다. 물론 이 곳도 승전국인 프로이센의 군인들이 득실거렸고 모든 통제권은 프로이센 장교에게 일임된 상태다. 하지만 루앙에서 탈출한 이들 승객들은 내일 아침이면 프로이센 통치에서 벗어날 예정이다. 어쨌든 오늘 하루만 머물고 아침에 무사히 떠나면 지긋지긋한 프로이센 군복을 안볼 수 있어 안심이다. 

하지만 아침이 돼도 마차는 떠나지 못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프로이센 장교가 이들을 출발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지위가 높은 지역사령관이 발행한 여행허가서도 현장의 실권을 쥔 장교 앞에서 무용했다. 설득하려 했지만 무시와 무안을 당했고 이제 전쟁터에서 탈출이 무산될 위기다.

각고의 노력 끝에 이유를 알아냈다. 여관 주인을 통해 알아 낸 프로이센 장교의 거절 이유는 루세다. 루세와 잠자리를 하고픈 욕망을 거절당했기에 죽음의 공기가 그득한 이곳에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다. 허기를 구해 준 상량한 동행자는 이제 없다.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희생양만 존재한다. 문제는 루세의 고결한 애국심과 자존심이다. 

루세는 거듭되는 프로이센 장교의 요구를 진심으로 온 몸으로 거부 중이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동승자들은 프로이센 장교의 저열한 욕망에 격분했다. 공화주의자는 맥주잔을 깼고 나머지도 분기탱천해 프로이센 장교를 비난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시간이 흐르자 분위기가 서서히 반전했다. "매춘부가 몸파는 것을 거절하다니, 그것도 존귀한 이들의 생명이 걸렸는데"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원망의 대상은 프로이센 장교에서 루세로 돌변했다. 그들이 보기에 하찮은 이의 고결한 고집은 쓰레기통속 장미에 불과했다. 루세만 남기고 자신들은 떠나겠다는 뒷거래는 프로이센 장교의 거절로 끝장났다. 이제 루세를 설득해야만 자신들이 살 수 있다. 방향이 설정되자 모두가 한마음으로 진력했다. 

수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는 루세에게 나이 많은 수녀는 "많은 성자들이 우리 눈에는 죄악으로 보이는 행위를 했으나 그들이 신의 영광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서 그러한 일을 범했기 때문에 교회는 이러한 대죄를 당연히 용서했다"고 말했다. 루세가 흔들리는 기미를 보이자 귀족 부인은 "동기만 순수하다면 하나님이 그 행위를 용납해 주시나?"라고 물었고 수녀는 "누가 그것을 의심할 수 있겠느냐"며 못을 박았다.

그 일이 있는지 밤이 새고 아침을 맞자 마차는 떠날 준비를 마쳤다. 승객들이 전쟁터를 탈출한다는 설렘으로 분주할 때 마지막 손님인 루세도 탑승했다. 공기의 흐름은 어제와 완연히 달라졌다. 모두가 루세가 유령인 듯 접촉을 피했고 "치마 속에 전염병이나 담고 온 것처럼" 멀리했다. 

루세를 희생시킨 이들은 마차에서 음식 파티를 열었다. 송아지 고기와 소시지, 토끼고기 파이, 돼지고기, 빵 등이 등장했으나 루세 몫은 없었다. 부산한 아침을 맞느라 식사거리를 챙기지 못한 루세에게 음식을 권하는 이도 없었다. "희생시키고 나서, 이젠 더럽고 쓸모없는 물건처럼 내던져 버린 이 점잖은 무리들의 멸시 속에 자기 자신이 빠져있음을 루세는 알았다"

"임대주택에 못 사는 사람이 많아 정신질환자 발생 빈도가 높다"는 전근대적 발언에 여론의 반발이 심각하다. 그것도 집권 여당 정책위원장의 발언이어서 심각성을 더한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장은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임대주택 관련 워크숍에서 이 같은 취지의 발언 후 "문제가 있는 사람 상담도 하고, 그 분들을 격리하든지..."라고 말을 이었다고 한다. 

'격리'라는 발언이 문제가 있다고 느꼈던지 강연이 끝난 후 다시 연단에 올라 '격리'를 '격려'로 수정했지만 문맥에 맞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여당 정책책임자가 '임대주택 거주자'에 갖는 편향된 시각과 몰상식한 좌표찍기는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어 우려된다. 

특히 성 의원의 문제는 임대주택 거주자를 사회적 패자와 동일시하고 부동산을 매개로 계급화하는 의식이 전재돼 있다는 점이다. 성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임대주택 거주자 분들이 느끼셨을 상심과 불편함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입장문을 냈다. 하지만 상심과 불편함은 약자를 향한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성 의원의 발언에 굴욕감을 느낀 임대주택 거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이라는 자긍심을 공격한 사과다.

루세가 직업이 아닌 고결한 애국심과 소신으로 존중되듯 우리도 재산세의 유무로 인간등급을 낙인 받아선 안된다. /미디어펜= 김진호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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