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진행되는 인플레이션 대응이 시급"
[미디어펜=백지현 기자]글로벌 주요 경제분석 기관들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하향 조정하며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위험에 경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세계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커지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경우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은행(WB)은 7일(현지시간)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4.1%에서 2.9%로 전망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위험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WB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긴축정책 등이 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같은 날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4.5%에서 3.0%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내년 성장률도 2.8%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1월 올해 세계 성장률을 5.5%로 전망했지만, 4월 3.6%로 대폭 수정했다.

   
▲ 박종석 한국은행 부총재보가 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신용정책보고서(2022년 6월)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한국은행 제공.



글로벌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 휩싸인 가운데 한국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낮다는 진단이 나온다. 박종석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지난 9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 관련 설명회에서 "국내 경제 상황으로 봤을 때 기본 시나리오상 스태그플레이션의 확률은 낮다"며 "우리나라 경제가 잠재 성장률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박 부총재보는 "2분기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크게 완화되면서 대면 서비스 소비 등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며 "수출은 둔화하겠지만 민간소비는 예상보다 좀 더 견조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장민 선임 연구위원도 최근 '우리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진입 가능성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우리 경제에 경기 침체와 높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며 "4%가 넘는 높은 인플레이션은 내년까지만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 스태그플레이션이 극심했던 1970년대와 달리 현재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을 전망의 근거로 제시했다. 

또 현재의 유가 상승 폭이 단기간에 4배씩 올랐던 과거 석유파동기에 미치지 못하고, 원유 가격이 실질가격 기준으로 1980년이나 2008년의 3분의 2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물가 충격의 정도가 과거보다 크지 않다고 부연했다. 

장 연구위원은 "과거 경기둔화를 우려해 인플레이션 대응에 미흡했던 것이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했던 주요 원인"이라고 부연하며 "경기와 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 하기보다는 먼저 빠르게 진행되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은도 물가상승압력이 높을수록 금리인상 등 선제적인 통화정책이 중기적 시계에서의 거시경제 안정화 도모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 여건을 반영한 모형 구축 및 정책 모의실험을 통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대응 정도에 따른 거시경제 안정화 효과를 분석한 결과, 중앙은행이 물가상승에 적극 대응할수록 물가는 균형(목표) 수준으로 빠르게 수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화정책의 적극적인 긴축으로 인해 단기적 시계(0~5분기)에선 경기 둔화 압력이 일부 증대됐다. 하지만 중장기 시계(6~11분기)에서는 물가가 조기에 안정됨에 따라 경제주체들의 실질 구매력 약화가 완화되고 정책금리 인상 필요폭이 축소되면서 경기둔화 압력이 여타 시나리오에 비해 빠르게 약화됐다.

   
▲ 자료=한국은행 제공.


이는 과거 고(高)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1970년대 석유파동 발생시 주요국의 정책 운용 사례에서도 유사한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은 '인플레이션이 유가상승 등 주로 비용측 요인에 기인하다'는 인식하에 임금인상 억제 등 주로 가격통제정책으로 대응했으며, 경기부양을 위해 통화·재정정책을 모두 확장적으로 운영했다.

이 같은 정책은 통화팽창, 재정적자 누증 등으로 1977년 이후 물가상승압력이 크게 확대됐다. 이듬해엔 제2차 석유파동 발생으로 소비자물가는 1979년 말 13%를 넘어서는 상승률을 기록하는 등 높은 오름세가 장기간 지속됐다.

반면, 독일은 인플레이션 장기화는 통화적 현상이라는 인식하에 독일 연방은행이 1970년대 초반부터 금리인상 등 선제적 조치를 통해 물가 불안 심리를 조기에 차단했다.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안정을 적극 도모하고, 경기둔화에 대응해 재정지출을 확장적으로 운영한 결과 물가와 경기가 모두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했다.

주요국의 정책대응 사례는 유가상승 등 비용충격 발생시에도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안정을 도모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중장기적 시계에서 거시경제 안정에 긴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보고서는 "물가상승압력이 전방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기대인플레이션도 상승세를 지속하는 상황에선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하고 경제주체들의 물가 불안 심리를 완화는 것이 중기적 시계에서의 거시경제 안정화 도모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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