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늄 저농축·사용후 재활용 협의 본격화될 듯

[미디어펜=김소정 기자]한미 양국의 원자력협정이 42년만에 전면 개정됐다. 지난 2010년 10월 개정 협상을 시작한 이후 4년6개월여 만에 타결된 것이다.

박노벽 외교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협상 전담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2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협정’에 가서명했다.

이번 협정은 그동안 미국의 사전 동의 규정에 묶여 있던 우라늄 저농축과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을 통한 사용 후 핵연료 재활용에 대한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장래에 필요할 경우 한미 간 합의를 통해 우리가 미국산 우라늄을 이용해 20% 미만의 저농축을 추진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한 것이다.

신 협정은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원전수출 등 3대 중점 추진 분야와 원자력 연구개발 자율성 보장 등을 핵심으로 한다.

특히 핵심 쟁점이었던 핵연료(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가 포함되지 않았다.

기존 협정에는 농축과 관련한 구체적 명시는 없었지만 특수 핵물질을 재처리하거나 연료성분의 형태나 내용을 변형할 경우 미국 측으로부터 건건이 또는 5년마다 사전 동의를 받아야 했다.

이 때문에 사용 후 핵연료 연구·개발에 사실상 족쇄로 작용해왔다는 평가와 함께 미국 측의 일방적 통제방식이 불평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에 ‘골드 스탠더드’가 명시적으로 규정되지 않음으로써 상대적으로 우리 측의 자율적 활용 가능성이 확대됐다는 평가다.

사용 후 핵연료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필요한 조사 후 시험과 전해환원과 같은 연구활동도 우리가 보유한 시설에서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한미 간 공동 연구하고 있는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에 대해서는 한미 양국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한 협의를 통해서 합의해 추진할 수 있는 경로도 포함됐다.

원전 수출 증진 차원에서 한미 양국과 원자력 협정을 체결한 제3국에 대해서는 우리 원자력 수출업계가 미국의 동의 없이 미국산 핵물질이나 원자력 장비, 물품 등을 자유롭게 재이전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수출입 인허가를 보다 신속하게 하도록 했으며, 핵물질이나 장비, 부품, 과학기술 정보를 서로 활발히 교류해 원전수출 투자나 합작회사 설립 등을 촉진하기로 했다.

이 밖에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던 암진단용 방사성동위원소를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수출할 수 있도록 미국산 핵물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장기동의도 확보했다.

아울러 한미 양국은 이번에 합의한 협력 방안의 이행을 위해 차관급을 공동의장으로 하는 상설 협의체를 신설하기로 했다. 고위급위원회로 명명된 한미 간 원자력 협의체를 통해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원전연료의 안정적 공급, 원전수출 증진, 핵안보 분야까지 다루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향후 파이로프로세싱이나 우라늄 저농축을 추진하는 것도 이 협의체를 통해 이뤄진다.

한편, 이번 개정 협정은 우리 원자력 활동의 자율성을 중첩적으로 보장하는 규정도 명시하고 있다. 협정 전문에 이례적으로 ‘NPT 당사국으로서의 평화적 원자력 이용 권리’와 ‘양국 간 원자력 협력을 확대함에 있어서 주권의 침해가 없어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또한 농축, 재처리 등을 포함한 ‘제반 원자력 활동에 있어서 상대방의 원자력 프로그램을 존중하고 부당한 방해나 간섭을 해서는 안된다’는 의무규정까지 포함했다.

신 협정은 한미 간 원자력 협력의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측면과 우리 원자력계의 발전 가능성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모두 감안해 유효기간을 20년으로 대폭 단축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41년 전에 체결된 협정과 신 협정을 비교해보니 동일한 규정이 거의 없었다. 이번에 원자력협정을 완전히 새로 썼다고 봐야 한다”면서 “전면 협정 개정과 신 협정 유효기간을 20년으로 단축시킨 것 모두 세계 5위의 원자력 선진국으로서의 우리나라 위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