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협 친일 판관 빅브라더 군림, 한일관계 최악 부채질

   
▲ 조우석 문화평론가
반일(反日)이 애국이고, '반일 히스테리'만이 능사인가? 외곬로 달려온 한국사회가 진실의 순간을 앞두고 있다. 일본 아베 총리는 29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대에 오르며 미국-일본의 신 밀월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으르렁대던 중국-일본 관계도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인 대한민국만 반일 민족주의의 늪에 갇혀 산다. 반일 이데올로기는 한국외교 위기의 최대요인이자, 언론-학계-시민사회에 침묵을 강요하는 전체주의 공포의 주범이다. 그걸 보여준 사건이 박유하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판매금지시킨 법원의 결정인데도 사람들은 침묵하고 있다.

이에 평론가 조우석은 지금의 반일 히스테리란 지적(知的) 파산이자, 신 쇄국주의 이념을 앞세운 마녀사냥임을 보여주는 글을 차례대로 싣는다. ①누가 박유하 교수에게 돌을 던지나? ②위안부-정신대를 둘러싼 진실 ③친중 사대주의-반일 민족주의의 미망(迷妄)의 순서다.<편집자주>

   
▲ 박유하 세종대 교수
11년 전 한 TV토론회에 참석해 ‘무턱댄 반일정서’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교수 한 명이 심하게 사회적 공격의 표적이 됐다. 당시 반일 히스테리를 주도했던 정대협(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은 그의 TV토론 발언을 의도적으로 곡해한 뒤 “왜 위안부를 공창(公娼)이라고 하느냐?”며 규탄했다.

정대협은 그의 국립대 교수직 사퇴까지 요구했다. 여성 국회의원 다섯 명도 비난 성명서를 냈고, 그런 분위기에서 그 교수가 근무하는 대학연구실에 계란을 던진 뒤 냅다 도망을 친 대학생도 있었다. 당시 논란 속의 주인공이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64) 교수다.

반일 민족주의로 똘똘 뭉친 한국사회가 보기에 그는 영락없는 친일파였을까? 그는 당시 숱한 항의전화에 몸살을 앓아야 했는데, 시골의 한 학교 교장은 이 교수에게 “당신이 이완용의 손자라던데 사실이냐?”고 따져 물어왔다. 진상은 이렇다. 당시 TV토론의 주제는 과거사 청산문제였다.

그가 했던 발언이란 것도 100년도 더 된 과거사 문제를 법률로, 정치적으로 청산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발상 자체가 잘못이라는 냉정한 학문적 소신이었다. 그게 백 번 맞는 소리였는데, 곁들여 위안부 문제를 언급했던 게 전부였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는 무죄다. 누가 박교수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요즘 대한민국에선 반일 민족주의 히스테리가 극단적인 형태로 변질되고 있다. 과거 건국과 국부의 핵심이념인 민족주의가 반일 반미통일운동으로 심각하게 왜곡됐다. 정대협은 친일과 반일을 판별하는 빅브라더로 군림중이다.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들어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데는 정대협의 반일민족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반일히스테리를 걷어내야 한다. 박선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왼쪽)가 지난해 6월 '제국의 위안부' 책을 들고 소송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사람 잡는 반일 민족주의가 문창극 죽이고, 이영훈도 위협

그때 토론자 한 명이 다짜고짜 시비를 걸어왔고, 그게 발단이었다. “당신의 말은 일본 우익의 주장과 뭐가 다르냐?”는 마구잡이 식 공격의 첫 포문이었다. 놀랍게도 이후 온 나라가 이 교수를 비난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 <제국의 위안부>초판.
반일 히스테리가 광적인 징후로 치닫는 우여곡절 끝에 그가 위안부 할머니들이 기거하는 나눔의 집을 찾아가 사죄의 큰절을 하는 걸로 어렵게 일단락을 지을 수 있었다. 사람 잡는 반일 민족주의는 그때 벌써 두통거리였고, 세력화가 됐다. 이후 10여년, 점점 더 상황은 악화되는 구조다. 

지난해 문창극 총리후보자 파문도 구조는 꼭 같았다. 친일 발언은 단 한마디도 없었고, 극일(克日)의 자랑스런 현대사를 말했던 그를 용서 못할 친일파로 몰아갔던 게 한국사회였다. 명색이 국가기간방송인 KBS가 그런 꼴의 멘탈리티로 왜곡과 선동방송의 나팔을 부는 데 앞장을 섰고, 온 나라는 ‘반일의 굿판’에 몰두했다.  

어떠신지? 반일 히스테리의 구조가 제대로 보이실 것이다. 사실 그 이후의 소식도 허탈했다. 저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왜곡된 선동 뉴스에 각종 특종상 퍼줬다. 문창극을 때린 KBS보도국이나, 상을 주고받은 쪽이나 자기 행위가 잘한 짓이라고 아직도 여기고 있다는 증거다.

그들에게 반일은 애국이다. 반일 히스테리도 매우 정상적 표현 활동일 뿐이다. 그게 심하게 균형을 잃은 우리네 언론과 지식사회의 현주소다. 문창극을 욕보이고, 이영훈을 위협했던 반일 이데올로기는 그만큼 맹목이다. 그렇게 눈먼 민족주의가 드디어 도그마로 변하고 걸핏하면 상대방을 자기검열에 빠트리는 전체주의로 변질돼 오늘에 이르렀다.

어찌된 영문일까?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을까? 민족주의는 비유컨대 양날의 칼이다.적절하게 활용될 경우 사회 통합의 구심점 역할을 해내겠지만, 너무 강세여서 콘트롤이 잘 안 될 경우 나치 독일의 파시즘처럼 파괴적인 맹목(盲目)의 힘으로 치닫는다. 그런 풍토에서 창조적 지성이 숨 쉴 수 없지만, 현실적 위협이기도 하다.

일테면 그렇게 오도된 민족주의는 좌파 민족주의 북한과 동질감을 갖고 있다. 그게 ‘우리민족끼리’의 정서이고, 해산된 통진당과 닮은꼴이다. 반일 민족주의를 외치는 자들은 거의 깡통 좌파라는 점도 상식에 속한다.

마크 리퍼트 미 대사를 향해 테러를 감행했던 김기종도 눈먼 민족주의의 맹목성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문제는 이영훈 교수의 지적처럼 198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의 민족주의는 성격이 한 차례 바뀌었다는 점이다.

본래는 건강했던 민족주의, 그걸 좌파가 변질시켜

당초 우리의 민족주의는 건국과 부국에 필요한 정치적 동원의 이데올로기였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의 일민주의(一民主義), 박정희 대통령의 민족중흥이란 구호가 나왔다. 안타깝게도 이후의 민족주의 변화는 좌파세력이 주도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그들은 민족주의 바탕에 깔려있는 애국주의를 제거해버렸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존중도 내던졌다. 변질된 민족주의는 이내 북한 옹호로 연결됐다. 이후 민족주의는 반일, 반미, 통일운동의 이데올로기 노릇을 한다. 이런 흐름을 염두에 둔 채 박유하 교수(세종대 일문학과)의 저술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 펴냄)를 읽어보자.

이 책은 지금 금서(禁書)가 됐다. 대명천지에 이 무슨 일일까? 꼭 2년 출간됐던 이 책을 놓고 문제적 부분을 삭제하지 않으면 판매· 배포를 할 수 없다고 법원이 얼마 전 결정했다. 글쎄다. 대중의 반일정서에 법원이 영합했다는 게 나의 판단인데, 그러저런 이유 때문에 현재 서점에서의 책 구입은 불가능하다.

출판사는 정대협의 지적대로 30여 곳에 대한 수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독자들은 5월 이후 수정본을 구입할 수 있겠지만, 그건 벌써 ‘민족주의의 검열을 거친 책’이다. 필자는 수정 전 책을 구해 훑어봤다.
참담하다. 이런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이래도 될까? 멀쩡한 학문적 성격의 저술에 대해 이런 압박이 과연 정당할까? 정형화된 반일 민족주의 정서를 위반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응징을 가해도 될까? 점점 도를 더해가는 반일 히스테리를 어떻게 순치시킬 것인가?”

<제국의 위안부>를 판매금지 시킨 판결은 사법적 결정일뿐이며, 학문적 논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평균적 시민인 내가 본 <제국의 위안부>는 매우 정당한 학문적 활동의 결과물이다.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들은 소송을 내면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매춘부로 표현해 명예를 훼손했고, 따라서 공공선에 위반된 책”이라고 주장했다.

그건 턱없는 음해다. 이 책에 그런 내용은 한 줄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럼 왜 이 책과 저자가 표적이 됐을까? 간단하다. 정대협이 제시한 반일 이데올로기와 다른 목소리, 학문적 자유와 양심에서 우러난 목소리를 낸 죄 때문이다. 그게 전부다.

정대협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반일 외교를 부추기는 주범

종군 위안부를 동원한 일본 제국주의는 지탄받아야 할 국가범죄 집단이라는 우리의 완고한 인식을 심어준 정대협의 잣대가 최우선이고, 금과옥조로 군림하고 있다. 이 책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 죄로 찍힌 것인데, 실제로 이 책에는 “권력화된 정대협”의 위험성을 적시한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위안부 문제가 한국사회에서 커다란 관심과 함께, 그에 따른 힘을 얻으면서 정대협은 권력화되었다.… ‘정대협의 생각’과 다른 말을 하는 이들은 단순히 비판받는 정도를 넘어 위안부와 지원단체가 대표하는 ‘민족에 대한 사죄’를 해야 할 만큼 정대협은 어느새 민족을 대표하고 있었고, 그 힘은 절대적이었다.”(210쪽)
왜 정대협이 이토록 무시무시한 권력기관일까? 정대협은 1990년 발족됐다. 그 시민단체는 위안부를 억압 받았던 식민지 조선의 상징적 존재로 만드는데 열중했다. 얼핏 대견해 보인다. 한국인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활동에 박수를 보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정대협이 꼼짝 못할 권위의 반일 이데올로기를 심어주는 문화권력으로 이내 급부상했다. 시민단체를 넘어 반일이나 친일이냐를 판결하는 판관(判官)이 되었고, 친일적 발상이나 행동을 다스리는 빅 브라더로 군림 중이다.

즉 정대협의 압박에 등 떠밀린 이명박 정부가 임기 말에 반일 활동에 더 매진했고, 한일관계는 나빠지지 않았던가? 박근혜 정부 이후에 상황은 더 나빠졌고, 배경에는 위안부 문제에 사과하라는 정대협 식의 요구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정대협 식의 반일정서는 지금 온 나라의 맹목적 반일(反日) 민족주의, 친중(親中) 사대주의로 자리 잡았다. 걱정이다. 균형을 잃은 이런 인식이란 게 정말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는 점, 자칫 이 나라 안보환경까지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사이의 패권경쟁이 재현되는 이 비상한 와중에 한국사회가 큰 그림, 대전략을 구사하기는커녕 반일이 곧 애국이라고 외치는 수준에 머물 정도로 나태하고(지적으로), 무책임해도(정치적으로나, 전략으로)되는 걸까? 왜 누구 하나 나서 “이건 아니다!”라고 말을 못하는가?

단언하지만 <제국의 위안부>가 제기한 문제제기는 모두 정당하다. 그리고 모두는 반일 민족주의가 일부로 외면했거나 곡해시켜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금 밝히는 바이다. 당신 머리 속을 깨끗이 비운 채 반일 히스테리의 아찔한 위험성을 알아챌 때가 지금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