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대외연락부 통전부 재편입...지난해 강관주 사망 이후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의 대남공작부서인 대외연락부(225국)가 통일전선부로 편입됐으며, 그 시점이 작년 강관주 대외연락부장이 사망한 이후인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정통한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강관주 대외연락부장이 사망한 이후 지금까지 신임 대외연락부장을 임명하지 않았으며, 현재 대외연락부는 통일전선부 산하 기관으로 편입됐다.

대외연락부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대외연락부 부부장들이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지도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양건 통전부장의 권한은 더욱 막강해졌고, 통전부에서 다시 대남공작사업을 적극 관할하게 된 것이다.

당초 통전부와 대외연락부, 작전부는 속칭 ‘3호청사’라고 불리면서 하나의 기관으로 존재했다. 과거 대외연락부에서 대남공작원을 양성하고, 작전부가 양성된 대남공작원의 임무 수행을 도왔다. 그리고 통전부는 남한은 물론 조선총련 등 전 세계의 조선인들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는 대표 부서였다.

지난해 일본 산케이신문이 처음으로 강관주의 사망 사실을 보도하면서 대외연락부가 조선총련을 관리하는 부서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대외연락부는 대남공작부서로 실제 남한에 파견할 간첩을 양성하고 파견하는 업무를 해왔다.

다만, 강관주가 대외연락부장을 맡기 전 통전부 부부장일 때 조선총련 담당을 오랫동안 했으며, 조선총련의 자금과 관련해 개인 비리가 적발되기도 했다. 통전부 부부장 해임설까지 돌던 중에 강관주는 대외연락부장으로 발탁됐고,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이 자리를 10여년간 지켰다.

   
▲ 강관주 사망 이후 김양건이 득세하면서 통전부가 실질적인 대외연락부 사업까지 주도할 정도로 대남사업을 시스템화시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강관주 대외연락부장과 김양건 통전부장은 ‘견원지간’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이니 대남사업에서 두 사람이 주도적인 역할을 펼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실제로 간첩 남파가 어려운 시절을 맞으면서 대외연락부가 3호청사에서 분리돼 내각 산하로 편입됐다. 이때 대남공작원 파견을 지원했던 작전부는 인민무력부 정찰국으로 편입됐으며, 정찰국은 지금 정찰총국으로 확대 개편됐다.

대북소식통은 “대외연락부를 내각으로 편입시킨 것은 위상 하락을 뜻하지만, 하루아침에 3호청사에서 방을 빼고 살던 집까지 내줘야 하는 처지에 몰리면서 이들이 보유한 각종 비밀을 관리하는 데 문제가 생겼고 원성도 터져나왔다”고 전했다.

결국 얼마 못가 대외연락부는 3호청사로 복귀했다고 한다. 이때가 일부 일본 매체에서 대외연락부가 통전부에 재편입됐다고 보도한 2013년 무렵인 듯하다.

하지만 대외연락부 사무실이 3호청사로 복귀된 것 이상으로 사실상 모든 업무가 통전부 산하로 정확하게 재편입된 시점은 작년 강관주가 사망한 이후라는 것이 대북소식통의 주장이다.

이렇게 과거 대남공작원을 파견하던 시절 강관주가 대남사업을 독식했다면 2010년 9월 김양건이 대남비서로 임명되면서 주도권이 넘어간 사실을 방증했다. 그리고 강관주가 사망하고 없는 지금 김양건이 대남비서이자 통전부장 겸 대외연락부장의 역할까지 맡아 최고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작년 10월 황병서, 최룡해와 함께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해 ‘북한 최고위 3인방’으로 꼽힌 김양건 비서가 2007년 통전부장을 맡은 이후 8년째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이유는 북한이 그만큼 대남사업에서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30대의 젊은 나이로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수령에 오른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집권하면서도 그 체제를 유지시킬 수 있는 배경에 김양건과 같은 인물이 있다.

김양건은 작년 12월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지목해 개성공단으로 불러들인 적이 있다. 비록 형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3주기를 맞아 이희호 여사와 현 회장이 보내준 조화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한 초청이었지만 남 측에 대한 모종의 메시지로 풀이됐다.

그리고 지금 일방적으로 개성공단 임금 인상을 결정하고 0.18% 인상분으로 남 측과 기싸움을 벌이면서 우리 기업에게 연체료 담보서를 요구해 협박하다가도 임금지급 마감 시한을 연장해달라는 우리 측 요청을 선뜻 수락하는 등 여유롭게 대처하는 것도 모두 통전부의 전략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관주 사망 이후 김양건이 득세하면서 통전부가 실질적인 대외연락부 사업까지 주도할 정도로 대남사업에 시스템화시키는 김정은 정권이 심상치 않은 이유이다.